• 흐림동두천 17.5℃
  • 흐림강릉 18.8℃
  • 흐림서울 18.1℃
  • 흐림충주 14.7℃
  • 흐림서산 16.5℃
  • 흐림청주 15.6℃
  • 흐림대전 14.3℃
  • 흐림추풍령 12.5℃
  • 흐림대구 14.8℃
  • 울산 14.5℃
  • 광주 14.3℃
  • 부산 14.4℃
  • 흐림고창 13.4℃
  • 흐림홍성(예) 15.6℃
  • 제주 18.3℃
  • 흐림고산 18.6℃
  • 흐림강화 17.5℃
  • 흐림제천 13.6℃
  • 흐림보은 13.9℃
  • 흐림천안 15.3℃
  • 흐림보령 15.6℃
  • 흐림부여 15.2℃
  • 흐림금산 13.9℃
  • 흐림강진군 14.9℃
  • 흐림경주시 15.2℃
  • 흐림거제 13.8℃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청주읍성, '설계도 같은 사료' 존재한다

'일성록' 사료에 문루 칸수 등 상세 수록
읍성 안팎, 보초소 존재 사실도 새로 밝혀져
실록보다 훨씬 세밀… 성복원 획기적인 도움

  • 웹출고시간2013.03.31 19:01: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일성록에 등장하는 '淸州城畢役' 내용이다. 세로선이 표에 등장하는 한역 내용이다.

조선후기 청주읍성을 마지막으로 수축(보수)한 내용이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사료에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청주읍성은 각 문루(門樓)의 칸 수, 여장 높이, 보초소 수 등 기존에 알져지지 않았던 여러 제원을 마치 '설계도'를 보듯 정확히 아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난주 청주 성안동주민센터에서 열린 청주읍성 복원과 관련된 세미나에는 '일성록'이라는 1쪽도 안 되는 짧은 원문사료가 공개됐으나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본보가 이를 분석한 결과, 사료 '일성록'에는 청주읍성 마지막 수축에 대한 내용이 매우 상세하면서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림·한역원문 동시 참조>

그 동안 청주읍성에 대한 마지막 수축 내용은 '정조실록 10년 6월 3일 5번째 기사'에 등장하면서 지역 학계가 이 부분을 많이 인용해 왔다.

그러나 그 내용이 '청주성을 수축하였다. 전 병사 김영수가 시작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사 구세적이 모두 수축하였다. 둘레가 1천 4백여 보(步)였다'가 전부여서 읍성 어느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 수축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일성록 상의 청주읍성 마지막 수축 사업은 당시 충청병사를 차례로 역임한 김영수와 구세적의 근무기간을 추적한 결과, 정조 때인 1785~1786년 사이에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성록은 그 수축 내용으로 △남쪽 성벽 130보 개수 △북쪽 성벽 20보 개수 △북문 밖 축대 벌어진 곳 개수 △문루 3칸을 새로 세웠다라고 기록했다.

이밖에 △남문루 6칸, 서문루 3칸, 포루 8좌를 기와로 덮음 △3문 문루에 단확을 칠함 △4개 문에 군포(보초소)를 각 2칸씩 새로 세우고 기와를 얹음 △여첩(여장)을 완축한 후 벽돌로 덮고 안팎에 회를 바름 등의 내용도 적혀 있다.

특히 기술된 것들은 당시의 보수 내용 외에 △청주읍성 남문의 문루는 6칸, 서문루는 그 절반인 3칸 규모였고 △여첩의 높이는 4척5촌(약 95㎝)이었으며 △성 안팎에 보초소(포루, 군포)가 다수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청주읍성과 관련해서는 '청주읍성도'(1794년 이전·전남구례 운조루 소장)가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이같은 내용은 그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에 새롭게 분석된 일성록 사료는 기존 시각자료 외에, 설계도 격의 수치화된 문헌사료를 찾은 격이어서 청주읍성 복원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일성록' 한역

충청병사 구세적(具世勣)이 장계하기를, "남쪽 옛 성의 벽면이 가지런하지 않은 곳 130보(步), 북쪽 체성(성벽)의 무너져 내린 두 곳을 합해서 20보 및 북문의 홍예문 밖 좌우 축대의 연결 부분이 벌어져 물러난 곳을 모두 개수하였습니다. 이어 문루(門樓) 3칸을 세우고, 남문루 6칸, 서문루 3칸 및 포루(鋪樓) 8좌까지도 기와를 덮었습니다. 3문 문루에는 단확을 칠하고, 4문 수직군포(守直軍鋪) 각 2칸을 새로 세워서 기와를 덮었습니다. 여첩(女堞)은 591타이니, 타마다 너비는 2보 반이고 높이는 주척(周尺)으로 4척 5촌인데 완축하고 벽돌을 덮었으며 안팎에는 회를 발랐습니다. 체성의 높이는 지면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데, 가장 높은 곳은 주척으로 23척이고 가장 낮은 곳 또한 18척을 밑돌지 않으며, 둘레는 1489보입니다. 이번 5월 8일에 역사가 끝났는데, 체성의 역사는 모두 전 병사 김영수(金永綬)가 있을 때 진행한 것이고 신은 모두 예전의 규례에 따른 것일 뿐이니, 이어 완성한 것은 여첩ㆍ문루ㆍ군포 및 완축하고 벽돌을 덮고 회를 바른 것에 불과합니다. 신이 감독하는 방도에 어두워 역사를 마치는 것이 넉 달이나 지체되었으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연유로 치계합니다." 하였다.

용어설명

*일성록: 1760년(영조 36) 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의 입장에서 신하와의 만남 등을 기록한 일기다.

*문루: 성 위의 누각을 말한다

*단확: 붉은 빛깔의 흙칠감을 뜻한다.

*포루·군포 : 모두 보초소를 뜻하는 용어다.

* 여첩: 성 위의 낮은 담장으로, 달리 여장이라고 한다. '타'는 여첩과 여첩 사이를 의미한다.

* 주척: 대략 20㎝이고, 1촌은 3㎝ 정도이다.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