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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스타 열전 - 각설이 명인 남팔도씨

80년대 각설이 타령에 사물놀이 최초 접목
품바엔 서민들의 애환과 해악이 담겨 있어
지난해부터 부인 서미성씨와 트로트 듀엣 병행

  • 웹출고시간2014.02.06 18:51:50
  • 최종수정2014.02.06 18:51:48

남팔도씨의 각설이 공연 모습.

각설이. 장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장타령을 부르던 동냥아치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나마 세련되게 부르는 게 '장타령꾼'이지,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밥 빌어먹고 다니는 거지'나 다름없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하는 각설이 타령은 예로부터 거지들이 흥얼거리는 동냥 노랫말이었다.

이 장터, 저 장터 떠돌며 우스꽝스러운 춤이나 추며 가끔 나랏님 욕을 해주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신분은 거지였지만 때론 광대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정부나 탐관오리를 헐뜯는 사회풍자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민주화운동으로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가 각설이를 무대로 올리는 매개체가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시라씨가 '품바'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하면서 각설이와 품바는 한 뜻이 됐다.

남팔도씨도 이 때 각설이 공연을 시작했다. 원래 주특기였던 사물놀이를 각설이 타령에 접목했다. 깡통이나 바가지를 뚜드리던 각설이에 이른바 '북 치고 장구 치고'하는 기술을 도입한 최초의 공연자다.

각설이계의 조상님이라 불리는 남팔도씨를 청주에서 만났다. 최근 앨범을 낸 그는 가수 활동을 위해 나이를 비밀로 해 달라 청했다. 헤어 제품으로 한껏 멋을 낸 그는 노랑머리를 한 미모의 여인과 동행했다.

각설이 배우이자 트로트 혼성듀엣 '미스미스터'로 활동 중인 남팔도씨와 서미성씨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본명인가요?

"예명이죠. 본명은 남기돈입니다. 1980년대부터 각설이 공연을 하며 전국을 떠돌게 됐는데, 팔도를 유람한다는 뜻에서 남팔도란 이름을 쓰게 됐어요."

- 같이 오신 분은 누구죠?

"부인이에요. 나이차가 좀 나죠. '서미성'이라고 저와 작년부터 '미스미스터'란 혼성 듀엣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르는 트로트인데, 각설이 공연도 하고 트로트도 부르고 그래요."

둘 다 청주 출신이 아님에도 청주를 주 무대로 활동한다고 했다. 남편은 서울, 부인은 전북 장수 출신이라고 했다. 그들이 청주 예찬론을 펼쳤다.

"한 10년 전 쯤에 청주에 정착하게 됐어요. 이 때 서로를 만났죠. 청주로 오게 된 이유도 공연 때문이에요. 서울에서 활동하다보니 지방을 내려가기가 너무 멀더라고요. 근데 청주는 딱 중간 아닙니까? 전국 어디든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이죠. 길어야 2시간. 전국 행사를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딱이에요. 다른 가수들에게도 항상 추천해요. 살기 좋고 교통 편리한 청주로 이사 오라고."

- 왜 각설이 공연을 하게 됐습니까?

"얘기하면 길죠(웃음). 저는 원래 밤무대에서 사회도 보고, 노래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1980년대 운동권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 때 우리 문화인 사물놀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노동조합 같은데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왜색 문화가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우리 문화가 많이 퇴색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문화를 되찾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시작한 게 사물놀이 보급이에요."

- 각설이와는 장르가 다른 것 같은데.

"그렇죠. 한참 사물놀이, 즉 풍물에 빠져 있을 때 거리로 나갔어요. 우리 가락이 미국의 그룹사운드 공연보다 더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한참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고 있는데 각설이패가 지나가는 거예요. 사람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몰리더라고요. 각설이 타령이 아무리 형편없는 것 같아도 대중들은 그걸 좋아하는 거예요. 그 때 생각했죠. '아 이거다!' 하고."

남씨는 각설이 타령에 사물놀이를 도입했다. 국악과 만담, 풍자를 접목했다. 전국에서 콧노래처럼 불리던 '얼씨구 절씨구 들어간다~'를 공연이란 문화 장르로 성장시킨 건 누구보다 남씨의 역할이 컸다. 몇 해 전엔 한 대학 강의를 맡으면서 '품바과'를 신설했고, 30년 각설이 공연 인생을 담은 '품바와 난장타악'이란 교재도 냈다.

- 대표곡이 있습니까?

"'방구타령'이에요. 멜로디는 일반 각설이 타령과 똑같죠. '따리라리라리 따라리라~. 할아버지 방구는 망령방구, 할머니 방구는 주책방구~. 시아버지 방구는 호령방구, 시어머니 방구는 잔소리 방구~. 뭐 이런 식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재인 방구(방귀)에 해악을 섞은 거죠."

- 보통 한 번 공연하면 얼마나 받나요?

"한 50만원에서 70~80만원을 받아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 공연하죠. 가수들이 3~4곡 정도 부르는 거에 비하면 '중노동'이죠."

- 트로트 가수들은 많이 받습니까?

"노래 한 곡 떴다 하면 200만원 정도 받아요. 2곡 뜨면 300~400만원. 히트곡이 10개 이상이면 'A급'인데, 거의 천 단위죠."

- 트로트 가수로도 활동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희 부부가 '미스미스터'란 그룹으로 출연하면 50~100만원 정도 받아요. 품바와 비슷하죠. 요즘엔 트로트와 품바를 같이 하면서 좀 바빠졌어요. 품바 하다 옷 훌렁 갈아입고 트로트하면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죠. 그래도 씻겨놓으니깐 멋있다면서(웃음)."

- 각설이 하다 멸시 받은 적도 있습니까?

"아, 많죠. 야, 일루와. 여기서 한 번 해봐. 한 잔해라, 한 잔해야 (노래가)잘 나오지. 이런 식이죠."

- 그러면요?

"술 잔을 내밀어도 안 먹죠. 술은 마시는데 그렇게 먹는 술은 진짜 거지가 받아먹는 술 같아서 싫거든요."

- 회의감도 들겠어요.

"춤추다가 엉덩이까지 발로 차였어요. 야, 이 ××야. 똑바로 못해?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고요. 처음에는 많이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진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몇 년 지나고 보니, '아 한국 사람들 정서가 원래 이렇구나. 이것도 다 그 사람의 애증표현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터 관람 문화를 조금 이해하게 된 거죠."

- 부인도 각설이 공연을 합니까?

"지난해 여름부터 같이 해요. 공연 무대가 좀 크면 부인에게도 각설이 옷을 입혀 긴급 투입하죠. 난타와 품바, 요즘 가요가 접목된 퓨전 공연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 동생도 각설이 공연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전 솔직히 부인이 각설이 공연을 안 했으면 해요. 가수로 성공하길 바라죠. 각설이란 참 배고픈 직업이거든요. 가수는 열심히 하면 스타가 될 수 있는 거고요."

부인 서미성씨가 말했다. 남편 남팔도씨는 각설이 공연을 30년이나 한 '명인'인데, 겨우 한 곡 뜬 트로트 가수보다 대접을 못 받는다고. 막상 행사장에 가보면 대중이 제일 좋아하는 서민 공연인데, 연예계에선 밑바닥 대접을 받는 게 각설이라고.

원래 각설이가 그렇다. 장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장타령을 부르던 동냥아치가 아니던가.

품바를 어엿한 공연문화로 자리 잡게 하고 관객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각설이 명인, 남팔도씨의 숙명인 듯싶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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