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살다보니 어려서부터 개헤엄과 자맥질을 익혔고, 강변의 모래사장과 나루터가 놀이터였다. 행인을 건네주는 작은 나룻배 대신 평평하고 널찍한 차량용 나룻배에 버스를 싣고 서너 명의 사공이 노를 젓고 줄을 당겨 강을 건너는 광경은 언제나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강변의'진사래밭'(긴 사래 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어른들이 큰소리로 부를 때까지 아이들은 하루종일 소를 뜯기거나 다슬기를 잡거나 물수제비를 뜨고 놀았다.누구나 회상하는 유년시절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기억속에서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보은군 회남면 어부동은 원래 사음리를 칭하지만 사음리, 법수1, 2리, 산수리를 통칭해 어부동이라 부른다. 대청호 담수와 함께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면서 평생 농사만 짓던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남겨진 사람들조차 농사대신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강변의 농촌마을이 바다처럼 드넓은 호숫가의 어촌마을이 된 것이다. 호수가 생기고 고기잡는 동네가 되리라 어찌 알고 그옛날 지명을 어부동이라 지었는지...지금도 도로변에 어부동 간판 서있는 법수1리 마을내에는 횟집과 민박집등의 간판이 보이지
# 금요일△청주우정산악회(011-464-1434)* 3일 : 강진 덕룡산* 10일 : 평창 오대산 * 17일 : 홍천 팔봉산* 24일 : 정읍 갓바위봉△청주무궁화산악회(010-3423-2783)* 3일 : 횡성 운무산* 10일 : 남해 호구산 * 17일 : 양주 불곡산* 24일 : 홍천 공작산△청주2030산악회(010-2466-3822)* 3일 : 소백산철쭉제* 10일 : 한라산, 올레길 * 17일 : 금산사 모악산* 24일 : 호명호수 호명산△청주에이스 금요산악회(011-487-5556)* 10일 : 포천 백운산 * 24일 : 진도군 접도 남망산# 토요일 △해맑은산꾼들(010-6473-4488)* 4~5일 : 올레10코스, 한라산 돈내코* 11일 : 화순 백아산 * 18일 : 청도 문복산* 25일 : 오대산 노인동 소금강△백두오름산악회(010-6486-1055)* 4일 : 소매물도 망태봉* 11일 : 치악산 종주 * 18일 : 춘천 오봉산* 25일 : 관악산~삼성산△청주산사랑 산악회(010-3423-8505)* 4~6일 : 소매물도 망태봉* 11일 : 석룡산 조무락골 * 18일 : 검룡소 금대봉* 25일 : 해산 비수구미 트레킹△사람과산(011-9573-3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을사사화는 윤형원의 소윤이 윤임의 대윤을 공격, 이로 인해 사림이 크게 화를 당한 사건을 말한다. 노수신(盧守愼·1515∼1590)도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유배를 가야 했다. '노수신과 정황은 본래 못나고 망령된 사람인데 헛된 칭예(稱譽)를 내세우며, 부박한 무리를 고무 선동하여, (…)사습의 궤격함을 빚어내어서 시사(時事)를 분란하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멀리 유배시키소서" 하니…'- 그가 유배생활을 하던 1546년 이른바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났다. 벽에는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 이기 등이 권세를 농락하여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벽서의 내용은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당시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는 명종에게 지시하여 잔여 윤임 일파를 완전 숙청했다. 이 사건 역시 소윤이 잔여 대윤을 공격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노수신은 여기에도 연루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송인수·이약빙은 사사하고, 이언적·정자는 극변안치 하고, 노수신·정황·유희춘·김난상은 절도안치 하고 (…) 윤강원·조박·안세형·윤충원·안함은 부처하고자 한다.'- 인용문 중 극변안치는
1589년 정여립(鄭汝立·1546 ~ 1589)이 모반을 꾀했다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이었던 정여립은 표변했다. 율곡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인을 비판했다. 이후 전북으로 귀향,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그해 황해도 관찰사, 안악 군수 등이 정여립이 대동계 사병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 선조 임금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 한다고 고변했다. 체포령이 내려지자 정여립은 진안 죽도(竹島)의 토굴에서 자결했다. 혐의자에 대한 국문에 2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때 형관을 맡은 사람은 정철이었다. 기축옥사로 동인 1천여명이 희생됐고, 한때 전라도는 반역지향(叛逆之鄕)이라 하여 인재 등용이 제한됐다. 기축옥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여립의 반란으로 규정됐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서인의 책사였던 송익필이 조작했다는 설, 서인의 집단 조작설, 정여립의 혁명적인 주장이 옥사를 초래했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기축옥사 때 자살한 정여립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레 염(殮)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한백겸(韓百謙·1552~1615)이다. 또한 그는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기도 했다. 한백겸도 체포
구질구질하던 날씨가 활짝 갠 지난 28일.38차 충북일보 클린마운틴이 실시된 보은군 회남면에는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넘쳐났다.대청호반에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 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린 연둣빛 새순을 부끄럽게 내밀던 풀과 나무는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여름을 맞고 있었다.대청호 둘레길 4구간 출발지인 남대문공원에서 중간 지점인 판장대교까지는 아스팔트길이다.'둘레길에 왠 아스팔트길인가'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지만 비록 아스팔트 길이지만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호반을 끼고 한적한 길을 전세낸 양 흐느적 거리고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대부분 50~60대인 탐사대원들도 마치 소풍나온 어린아이처럼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는다5㎞ 넘게 이어지던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둘레길은 임도를 타고 숲속으로 이어졌다. 졸졸졸 흐르는 계류만이 산중의 적막함을 깨울 정도로 숲은 깊고 고요했다.완만한 오름을 이어가던 산길은 어느덧 고갯마루인 늘치에 이르렀고, 이곳부터 옥천 땅 '운은리'까지는 논과 밭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휘파람을 불며 갈 수 있는 길이었다.대청호 둘레길 4구간은 남대문공원에서 운은리까지 11㎞지만 대부분 임도와 아스팔트길로 별 부담이 없는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61번지에 자풍서당(資風書堂)이라는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대청이 자리잡고 있어 시원스러움이 느껴지는 18세기 건물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교건축물 내에 불탑이 자리하고 있는 점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8호로, 공식 명칭은 '두평리 5층석탑'이다. 1989년 지하에서 발굴된 이 석탑은 신라말~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풍곡사(風谷寺)라는 사찰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에 따라 사찰이 폐지되고 유교 건축물이 세워졌다. 종교간에도 역전과 반전이 있었던 셈이다. 자풍서당의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닭까지 잡아 주고 또 건물 아궁이 주변이 불에 끄슬려 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자풍서당할 때의 '자풍'은 자법정풍(資法正風)에서 딴온 말로, 광해군 65년(1614) 정구(鄭逑)라는 인물이 작명했다. '資'는 명사로 쓰이면 재물을 뜻하지만, 술어로 사용되면 '헤아리다', '바탕으로 하다'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자법정풍은 '법을 바탕으로 해서 풍속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 예학을 논할 때 좌우에 나란히 위치하는 인물이 김장생과 정구다.
첩첩산중의 연봉으로 둘러싸인 충북 옥천군 안내면 은운리와 대청호에 마을을 묻고 뒤로 물러 앉으면서 뒤로는 첩첩산중이 앞으로는 물이 길을 막아버린 옥천군 군북면 용호리 그리고 겨우 차 한 대 다닐 비좁은 구절양장의 험한 산길을 따라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막지리가 대청호 인근의 대표적인 오지마을이다. 다리를 건너면 옥천읍이 지척이어서 근동의 길목이 되었던 마을이 불어나는 물에 쫓겨 마을 뒷산 중턱에 까지 올라 자리를 잡으니 길은 물에 잠겨 없어지고 읍내를 가자면 40여리를 돌아 나가야 하는 '육지속의 섬'이 되어버린 마을들이다. 대청호를 가운데 두고 5분여 시간이면 건너갈 수 있는 배가 운행되고는 있지만 그또한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운영상의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는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마을 이장님들이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를 이용하려면 미리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 후 방문 해야 한다. 대청호 둘레길 5-1구간은 대청호 인근 대표적인 오지마을중 하나인 옥천군 안내면 운운리를 시작으로 답양리 소재 가산사를 들목으로 산을 오른뒤 아기자기한 산능을 타고 막다름에서 만나게 되는 용호리 화일마을로 연결되는 산길투어코스이다. 가산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는 혼동되는 면이 있다. 한자가 둘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누각 할 때의 '다락樓' 자는 마치 이층집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누각은 1층은 기둥만 세운 채 벽을 비우고 2층에는 마루를 깐 건축물로, 관아에서 부속 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는 규모가 누각보다 작으면서 1층으로만 지어지면서, 과거 선비 개인의 피서나 음풍농월 장소로 주로 이용됐다. 누각과 정자의 공통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누허즉능납만경'(樓虛則能納萬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의역하면 '누각이 비어 있어야 주변의 많은 경치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취경 즉, 경치를 불러들이기 위해 누정에 벽과 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선사상은 '마음을 비워야 선행을 쌓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둘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충북에도 유명한 누정이 적지 않다. 지명도가 높은 누정으로 제천 청풍의 한벽루(보물 제528호)와 영동 황간의 가학루(도유형문화재 제 22호) 등이 있다. 청풍 한벽루는 물가, 가학루는 추풍령 바로 밑의 영로(嶺路) 변에 위치하고 있다. 가학루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당시 황간현감 하담
기수학(氣數學)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인들은 점술학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기수학자로는 명종 때 인물인 박지화(朴枝華·1513∼1592)가 꼽히고 있다. 그는 벼슬이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이르렀다. 이문학관은 승정원 소속으로, 중국 외교문서와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그는 서자 출신으로, 승진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명산을 유람했고, 특히 금강산에 들어가 7년간 수도했다. 이수광은 이런 그를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그는 밥을 먹지 않고 솔잎과 소나무 껍질만 먹었으며, 엄동설한에도 무명옷을 입고 지냈다'고 적었다. 그렇다고 그가 도인의 모습으로만 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실력을 보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다음은 문신 신흠(申欽·1566∼1628)이 지인 박인수(朴仁壽·1521∼1592)가 박지화에 감화되는 모습을 적어 놓은 내용이다. '그러다가 수암 박지화를 만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들었고(…). 이로부터 도의 진수에 깊이 맛들여서 평소에 방 하나를 말끔히 정돈하여 왼편에는 거문고, 오른편에 책을 놓아두고 거처하였으며 세간의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본문중 '위기지학'은 타
전회에 세종대왕과 불교정책을 언급했다. 이때 '태종에 이어 조선 초기의 가장 강력한 억불책의 하나였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태종은 종교정책에도 과단성을 발휘했다. 그는 사원 혁파를 단행해 사찰의 노비와 전답을 국고에 환수했다. 그는 이같은 연장선에서 유교적 사회질서의 정착을 위해 가정에는 가례(家禮), 그리고 향리에는 이사법(里社法)을 보급했다. 가례는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말한다. 그러나 이사법은 자주 접하던 용어는 아니다. 이사법은 조선시대 각 향리에서 토신(土神)을 모시는 것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풍년을 빌었고, 또 마을 인심(人心)을 밝게 하기 위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넓은 의미의 현대판 반상회로 볼 수 있다. 이를 처음 건의한 인물이 허지(許遲·1372∼1422)다. '무릇 우리 동리(同里)의 사람은 각각 예법(禮法)을 존중하고, 힘을 믿고 남을 능욕(凌辱)하지 않는다. 위반하는 자는 먼저 함께 다스린 뒤에 관(官)에 넘긴다. 혹은 가난하여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그 집을 두루 도와주되, 3년에 자립하지 않으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다.'- 손으로 출처를 가리고 보면 "어느 동네 반상회 때 나온 얘기인가" 할 정도로 현실적
대청호 담수가 시작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던 마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수몰선을 벗어난 사람들도 물길에 의해 나뉘어진 땅뙈기를 거머쥔채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했지만 그또한 녹녹치 않았다. 강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고립감으로 사람이 살지않거나 1~2가구 정도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마을 또한 부지기수다. 석탄리 안터선사마을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2시간여 걸어 막다름의 끝에 위치한 곳이 옥천군 석탄리 피실이다. 마을앞을 흐르는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둘로 나뉘어져 버린 마을중의 한곳이다. 안남면에 인접해 있는 마을이 안피실이고 석탄리에 인접해 있는 마을이 바깥피실이다. 그곳이 탑산을 가기 위한 들목중 하나인 석탄리 피실이다. 봄이오는가 싶더니 들녘은 경운기 소리 요란하다.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꽃들의 잔투정에 초록의 잎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 흙냄새 풀냄새...바람결에 전해져오는 봄내음에 움직임들이 흥겹다. 산그림자 드리운 강물을 뒤로하고 산길은 시작된다. 수북수북 쌓인 낙엽으로 희미하던 산길은 파고들수록 뚜렷해진다. 당차게 오르던 오름길은 가다 쉬었다를 반복하고
음성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실했고 남을 배려 할 줄 알았다.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과목에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영어를 잘했다. 1962년 미국 정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고등학생 전국 영어 웅변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해 미국 여행 기회를 갖는다.그곳에서 존 F.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을 접견한 이 고등학생은 가슴속에 원대한 꿈을 담는다. 이때부터 더욱 성실히 공부해 국내 최고 대학의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그가 원하는 외교관이 된다.이 외교관은 지난 2007년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8번째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다.그가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음성군민에게 감사반기문 사무총장 예방은 방미 3일차인 12일 오후 4시 30분으로(현지시각) 계획됐다.세계의 대통령을 만난다는 설렘보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달 12일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반 총장 예방이 불발될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만남이 이뤄졌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보다 수월하게 검색을 마쳤고 곧장 접견장으로 향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접견장 복도에는 각국의 외교관들이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