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단청장 권현규

불교미술의 진수 '단청' 외길 30년

  • 웹출고시간2009.08.20 16:20:59
  • 최종수정2014.07.20 13:28:44
◇ 음양오행 바탕의 전통 채색

사찰이나 궁궐을 보면 목재 위에 여러 가지 색깔과 무늬로 채색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단청이라 한다.

단청은 본래 고대에 지배세력의 건물이나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 또는 신앙적인 의례를 행하는 건물과 의기 등을 엄숙하게 꾸며서 일반 기물과 구분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다.

단청은 궁궐이나 사찰의 권위를 상징하고 목재 부식 방지 등을 위해 그려져 왔다.

그래서 탑, 신상, 비석 또는 고분이나 무덤의 벽화, 출토된 부장품에 그려진 모든 문양과 채색을 단청의 시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대의 이런 단순 단청이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청, 적, 황, 백, 흑 오채(五彩)의 조화를 추구하며 시대와 사회의 미의식에 맞춰 오늘날의 단청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즉 청색-동쪽-木-봄, 적색-남쪽-火-여름, 황색-중앙-土-토용, 백색-서쪽-金-가을, 흑색-북쪽-水-겨울을 뜻하며 우주 만물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청을 하는 이유는 첫째 위풍과 장엄을 위한 것으로 궁궐과 관아에도 단청을 하여 엄숙한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그것이다.

둘째 건조물이나 기물을 비바람이나 기후의 변화에 대한 내구성과 방풍, 방부, 건습 효과를 높여 장기 보존하기 위해서도 단청을 한다.

셋째 채색을 함으로써 목재 등 재질의 표면에 나타난 흠집 등을 감출 수 있고, 넷째는 일반적인 사물과 구별되게 하여 특수기념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도 있다.

다섯째로는 원시사회부터 내려오는 주술적인 관념과 또는 고대 종교적 의식 관념에 의한 색체 이미지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 단청이다.

단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청을 올릴 바탕을 닦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교를 넣고 묽게 끓인 물을 바탕에 바르고 거기에 가칠을 다섯 번 반복하여 초지(초안도)를 마련한다.

초안도(草案圖)를 그릴 때는 각각 부재의 모양과 크기, 길이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문양초를 그려야 한다.

이 초안도를 건물에 올리기 위해서 전체 면에 청녹색 흙을 바르는 청토바르기를 한다.

그리고 초안도를 해당 면에 대고 분주머니를 두드리면 본의 무늬에 있는 송곳구멍으로 가루가 나와 바탕에 무늬가 박히게 된다.

이렇게 타분작업(打粉作業)이 끝나면 그 본에 따라 광물성 안료로 청·적·황·백·흑의 오색을 입히는 것으로 단청이 완성된다.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청, 적, 황, 백, 흑 5가지 색으로 채색되는 단청은 불교미술의 진수이자 동양에서 우리나라만이 전승하고 있는 전통 예술이다.

단청은 불교미술과 동양미술의 중요 부분이기 때문에 근래들어 서양 예술가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있으나 중국, 일본, 한국 가운데 지금까지 단청 문화가 비교적 잘 계승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뿐이다.

이런 단청의 권위자이자 전국 지방무형문화재 가운데 가장 먼저 단청장이 된 사람이 충북 청주의 권현규씨(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57)이다.

◇ 영봉 스님의 엄격한 도제식 교육

충북 단양이 고향인 권씨는 철들기 전부터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미술을 가까이 하게 됐다.

11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천애고아가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체득한 전통불교미술에 대한 매력 때문에 권씨는 20대 중반에 전통 단청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당시 불교미술의 거목인 영봉 남인식스님 문하에 정식으로 입문하여 본격적인 수업을 받게 된다.

이 때의 수업방식은 그야말로 모든 잡일까지 하면서 단청에 대한 기초부터 몸으로 익혀나가는 도제식 교육이었다.

무던히도 혼나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권씨는 눈과 손으로는 단청 기법을 익히고 주경야독으로 문헌을 공부하며 단청과 탱화 등 불교미술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을 계속했다.

이 때부터 계속된 불교미술에 대한 공부는 그의 학문적 토대가 되어 후에 충청대 박물관과 제천시가 공동으로 추진한 국내 최초의 전통 단청 및 벽화에 대한 조사에 책임조사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또 공주 마곡사 금강역사 복원사업을 통해 전통의 소소입상을 복원 완성 시켰으며, 제천 신륵사 극락전 벽화 및 단청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조선 후기불화 및 단청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지난 2005년 제천시 덕산면 신륵사 극락전 외벽의 벽화가 사명대사의 일본행을 그린 그림인 '사명대사행일본지도'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사명대사의 일본행을 묘사한 그림은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에 있는 8폭 병풍 형태의 '사명대사일본상륙행렬도팔곡병(四溟大師 日本上陸行列圖八曲屛)'과 신륵사 벽화 단 2점뿐으로 그 문화·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청을 하기 위한 초안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초안으로 '연등초'라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단청하는 사람들이 이 연등초를 그대로 답습하고 베꼈지만 그 각각의 구성요소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잘 몰랐는데 권씨가 연구 끝에 연꽃, 석류동, 주화, 항아리(보주), 골팽이, 휘(광명·밝음)라는 것을 불경 대장경의 '적연보주'라는 말 등을 근거로 하여 밝혀내 단청의 체계화, 이론화에도 앞장 서고 있다.

권씨는 또 옛 문헌과 그림을 공부하면서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용주사의 후불탱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확실하다는 신념을 갖고 지금껏 주장하고 있다.

권현규씨는 법주사 사천왕상과 마곡사 금강역사 등을 복원한 것은 물론 많은 '명작' 탱화를 그려왔다.

그는 "당시 국가 공식문서인 수원지령등록이나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 등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 그림은 1790년 용주사 창건 당시 김홍도와 이명기, 김득신 등 궁중 화원과 상겸(尙謙) 같은 화승(畵僧)들이 서양화법을 창의적으로 원용해 그린 기념비적인 걸작임이 확실하다"며 "현재 지방문화재로 돼 있는 것을 하루빨리 국가지정문화재로 상향해서 보존에 힘써야 한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권씨는 단청하는 사람을 예전에는 속칭 '환쟁이'라고 불렀는데, 그 환쟁이들은 궁중 화가 양성소인 도화원, 사찰의 화승(畵僧), 각 지역의 향공(동네에서 상여 단청하는 사람) 등 세 갈래로 전승돼왔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단청 등 불교미술에 있어 가장 역사가 깊고 실력이 좋았던 것은 화승인데 충북 속리산 법주사의 박삼천 스님 등 유명한 화승들이 이미 많이 입적하고 전국에 1~2명 밖에 남지 않아 그 전통이 끊길 우려가 깊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여년 전부터 마곡사의 주지이자 화승으로서 1인자였던 금호스님(1928년 입적)의 제사를 매년 음력 7월23일에 주관하여 지낼 정도로 화승과 그들의 예술세계를 흠모하고 있다.

◇ 보살사 월리사 등에 명작 남겨

그는 "최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전통 건축물의 신축과 보수가 증가하며, 단청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단청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단청 채색하는 기술을 약간만 익히고는 급하게 현장에서 돈벌이로 써먹으려는 사람이 많고, 불교미술에 대해 기초부터, 학문적으로 깊이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전통의 맥이 사라질 처지에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단청은 전통 문양과 예술이기 때문에 몇 백년 전의 단청을 원형대로 계승하고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현대인의 감각으로 창작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 어느 유명 사찰에서 일부 건물을 해체 복원하면서 단청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깊이 있게 자문을 구하지 않고 처리해 이것 저것 혼합된 국적 불명의 단청이 되는 우를 범했다"고 한탄했다.

청주 명장사 신중탱화

불교의 교리까지 담고 있는 탱화 역시 단청의 한 분야로서 전통적 기법을 그대로 전승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30여년간 단청과 불화를 그려오면서 무엇보다도 옛 단청의 원형을 되살리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청주 인근의 용화사, 명장사, 보살사, 월리사 등 사찰과 보은 속리산 법주사 및 주변 암자 등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 사찰 등에 있는 그의 작품들이 단청과 불화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권씨는 "단청 작업은 당연한 내 평생의 업이라 여기고, 탱화 작업을 비롯한 벽화 등에 대한 연구 역시 전통을 잇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공주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단청교실'이나 도내 사찰과 학교 등지에서 교육을 하는 등 단청에 대한 홍보와 이해를 넓히는 데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자신의 작업실인 '금강불교미술원'을 찾아오는 스님, 일반인, 미술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단청과 탱화를 가르치는 동시에 우리나라 고단청 및 벽화의 유적을 조사, 연구하는게 삶이자 즐거움이다. /박종천 프리랜서

주소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 255-15 금강불교미술원

문의전화 : (043) 263-7246, 011-443-7246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