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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금속활자장 임인호

최연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갑인자 등 조선 활자 40종 복원

  • 웹출고시간2010.01.21 18:28:13
  • 최종수정2014.07.20 13:29:25
◇ 세계 最古 인쇄물-청주의 '직지'

주물사주조법으로 옛 활자를 복원해 인출한 '동국정운'의 한 페이지.

인류역사에서 인쇄술은 지식과 정보를 보급하여 문명의 깊이를 더하고, 빈부와 귀천의 차이를 좁히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해 왔다.

인쇄술 가운데 특히 금속활자는 내구성과 대량생산 측면에서 혁명적 전기를 마련한 눈부신 발명품임은 두 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 전 세계는 독일 출생으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전한 구텐베르크가 1455년에 인쇄한 '42줄 성서'가 인류가 금속활자로 처음 인쇄한 책으로 보고 지난 5백여 년 동안 이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972년 프랑스에 있던 한국인 학자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던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찾아냈다.

구한말에 프랑스인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이 책에는 "선광7년(宣光七年) 정사7월(丁巳七月 日)에 청주목 외 흥덕사(淸州牧 外 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인쇄((鑄字印施)했다"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또 1986년에는 청주대박물관이 청주시 운천동 택지개발지역에서 한 절터를 발굴했는데 거기서 서원부 흥덕사(西原府 興德寺)라고 씌인 금구(쇠북)와 황통십년···흥덕사(皇統十年···興德寺)라고 적힌 청동 불발(절 그릇)이 출토돼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의 실체와 그 터가 증명되었다.

'직지'에 있는 선광7년은 고려 우왕 3년으로 서기로는 1377년이므로, 이로써 세계 학계는 금속활자의 첫 발명국으로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우리 나라를 인정하게 됐고,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런 자랑스런 우리의 전통 금속활자를 복원하고 연구하는데 전념하고 있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산골에 있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인 문경새재의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문 아래 신혜원마을에 있는 무설조각실의 주인인 임인호씨(46)다.

◇ 구텐베르크 고장서 활자주조 시연 성황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인호씨가 복원한 금속활자와 목활자가 섞인 조판을 살피고 있다.

임씨는 2000년 금속활자장 이수자, 2004년 금속활자장 전수교육조교 지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국가(문화재청)로부터 역대 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13년 동안 금속활자에 매달려 계미자, 갑인자 등 40여종의 조선시대 활자를 복원한 것이 그의 경력이고 공로이다.

2005년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초청돼 그곳에서 금속활자 주조를 시연하기도 했다.

유럽인들이 그의 시연에 열화와 같은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본래 하루 5차례 정도 시연하도록 돼 있던 것을 그는 신바람나서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 15차례나 시연하며 금속활자 원조 국가의 기술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조령 아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생업에 힘써야 했다.

20세이던 1984년부터 나무에 글씨 새기는 것이 좋아 서각에 입문, 1987년부터는 고(故) 신영창 선생에게서 체계적으로 서각을 배운 뒤 1992년 고향으로 돌아와 스승이 지어준 호를 딴 '무설조각실'을 차리고 둥지를 틀었다.

그러던 중 1997년 임씨는 금속활자의 대가 오국진 선생(2008년 별세)과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임씨의 조각실 앞을 지나던 오 선생이 잠시 조각실에 들렀던 것이다.

임 금속활자장은 계미자, 갑인자 등 조선시대 활자 40여종을 복원했다

◇ 금속활자 대가 오국진과 운명적 만남

오 선생은 당시에 서예, 조각에 조예가 깊었던 것은 물론 1996년부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된 금속활자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었다.

이때부터 임씨는 매일같이 왕복 4시간 거리인 청주를 오가며 오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금속활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활자를 조판할 때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스승에게서 엄격한 자세로 활자를 배웠고, 한자도 그동안 안진경체를 공부했던 임씨에게 스승은 금속활자의 기본인 구양순체를 배우도록 인도했다.

스승과 함께 고려시대 금속활자 주조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밀랍 주조법(蜜蠟鑄造法)으로 '직지'활자를 복원하고, 주물사 주조법(鑄物砂鑄造法)으로 계미자, 갑인자 등 조선시대의 각종 활자도 복원했다.

1999년과 2000년 연속으로 충북 공예대전에 입선했고, 2001년에는 '직지' 복원에 참여했고, 2005년에는 노무현대통령 영부인 추대패와 유네스코 직지상 직지활자판 부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작업과 수련은 힘들고, 스승이 어려워 항상 몸가짐을 삼갔지만, 그는 스승을 전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부친과 같이 의존했기에 어려운 과정들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주로 조선시대 관주활자(官鑄活字)와 왕실활자(王室活字)를 주조하던 방법으로 성현(成俔)의 '용재총화(傭齋叢話)'에 자세히 소개된 주물사주조법으로 조선시대 활자를 만들어 옛 책을 인출(인쇄)해 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나무에 어미자를 새긴 뒤 암틀에 넣고 2차, 3차 교정을 보고 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일은 글자를 나무에 새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나무로 어미자를 만들어 쇳물을 부을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월인천강지곡이나 동국정운 등 조선시대에 간행된 책들은 갑인자 등 금속활자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목활자도 중간 중간 섞어서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목활자도 만들어야 한다.

어미자나 목활자를 새기는 나무는 주로 벚나무를 사용하는데, 이 벚나무는 팔만대장경 재료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쉽게 닳거나 뒤틀리지 않고, 해충, 습기, 열기 등에게 강하기 때문이다.

◇ 어미자 서각, 쇳물 주입 등 손길 30번 필요

그래서 그의 조각실 마당 이곳저곳에 20~50년생 벚나무 통나무들이 쌓인 체 10년 이상씩 자연 건조되고 있고, 나무의 상태에 따라서는 뜨거운 물에 찌기도 한다.

그는 1993년부터 전국 어디에서 벚나무를 벌채한다면 찾아가 적당한 나무를 구입, 지금은 평생 쓰고도 남을 벚나무를 확보해 놓고 있다.

어미자를 새긴 뒤에는 일일이 먹물을 문질러 글씨를 찍어본 뒤 다시 세밀하게 깎아내는 교정 작업을 두 세 차례 더 거쳐야 완벽한 글자틀을 얻을 수 있다.

활자 거푸집에 1,200℃의 청동 쇳물을 부어 활자를 얻는다

완성된 어미자는 암·수 두 개의 주형틀 가운데 암틀 안쪽 바닥에 배열하고 나중에 거푸집과 잘 떨어지도록 이형제로 돌가루를 뿌린다.

이형제로 예전에는 숯가루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실험할 때만 숯가루를 사용하고, 실제 작업할 때는 편리성과 신속성을 위해 돌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는 어미자 위와 옆 공간에 전북 익산에서 가져온 고운 뻘흙인 주물사를 꼭꼭 채워 넣는다.

같은 방식으로 수틀에도 주물사를 채운 뒤 암틀과 결합했다 다시 암·수틀을 분리해 어미자를 제거하고, 쇳물이 들어가는 길인 탕도(가지쇄)를 낸다.

그리고는 암·수틀을 다시 결합하고 탕도를 통해 온도 1천200℃의 청동 쇳물을 부어 금속활자를 만든다.

금속활자의 목적과 끝은 '종이에 인쇄가 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활자만 잘 만들었다고 작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인출 작업에 최고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조판된 활자판에 먹물을 칠하고, 한지를 얹은 뒤 사람 머리털로 된 인체를 문질러 인출해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먹물 농도, 문지르는 힘과 방향, 불필요한 부분에 먹물이 묻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활자 작업의 최종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맨 처음 어미자를 새길 나무를 다듬고, 한 자(字) 한 자(字) 나무에 새기고, 3차례 교정을 하고, 거푸집 외벽인 번기새틀과 암·수틀을 만들고, 쇳물을 붓는 등 30번 이상의 손길이 가는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할 경우 금속활자 60자를 만드는 데 1주일 정도나 걸릴 정도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 활자 대량생산법 연구 과제

여기서 임씨는 조선시대 책자 한 페이지에 300~500자 정도의 활자가 들어가고, 당시 3개월에 10만자를 만들었다는 기록 등 활자의 대량생산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승님은 옛 활자를 전통방식으로 복원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는 더 나아가 옛 활자와 책을 빠르고 쉽게 만드는 방법,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방법 등을 연구하며 금속활자 기술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 같은 활자를 썼더라도 시대에 따라, 책에 따라 각각 그 크기와 조판 등이 달라져 복원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새로 금속활자와 목활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일은끝이 없다.

이제는 스승도 돌아가시고 임씨가 전국 유일의 금속활자장이어서 그는 큰 부담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옛 금속활자와 책자의 복원이 그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의 관련 분야 교수들과 함께 연구도 하고, 올해에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서지학과 금속공예 등 두 분야에서 이수하며 공부를 더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박종천 프리랜서

주소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327-3

전화 : (043)-833-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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