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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예인과 장인들 - 중원 마수리 농요 박재석

절우자~절우자~ 이모자리를 절우자~
교민화식한 연후에~ 농사밖에 더 있는가~

  • 웹출고시간2009.10.22 19:52:02
  • 최종수정2014.07.20 13:29:01
"절우자 절우자~이모자리를 절우자~"
"교민화식한 연후에~농사밖에 더있는가~"

주민들이 논에 잡초를 뽑으며 '이듬매기'란 전통 농요를 박재석씨의 선소리에 맞춰 흥겹게 부르고 있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의 가섭산 끝 자락에 500년 전부터 형성된 마제(馬蹄)마을에서는 벼농사에서 모를 찧을 때 이런 노래를 부르며 힘든 노동을 이겨내고 있다.

이 마을 이름은 뒷산의 모양이 말발굽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인재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다 이 마을에 잠시 들러 말에게 물을 먹이고 쉬어간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는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중원 마수리 농요(中原 馬水里農謠)'의 보유자 박재석(53)씨를 중심으로 '중원마수리농요보존회'를 만들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요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 중원마수리농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2년 대전에서 열렸던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탄금대 방아타령'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충주 지방에서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이 노래 가락이 일제 말기부터 희미하게 잊혀져 가던 것을 이 때 지남기옹(마을에선 지기선이라 부름) 등 마을 주민들이 다시 재현해냈고, 1994년에는 지남기옹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수리농요전수관과 대통령상 수상 기념비를 세울 정도로 전통 농요 전승자로서의 자부심이 높다.

주민들은 지난 2005년에 마을 마수리농요전수관 앞에 대통령상 수상 기념비를 세우며 전통 농요 전승자로서의 자부심을 키웠다.

또 보존회는 형체가 없는 무형문화재의 특성 상 원형이 변질될 우려가 높다고 판단 하여 지난 2007년에 총 5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마을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직접 마수리 농요를 하나하나 재현하며 음원과 영상을 원형대로 담아내는 정성을 쏟았다.

탄금대 방아타령은 신라 자비왕 때 경주의 한산 기슭에 살던 악성 백결선생이 "우리는 가난하여 무엇으로 설을 쇠야하나·"하고 탄식하는 부인을 위하여 "무른 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렸고 재물과 명예는 하늘에 있는 것이니 구태여 상심해서 무엇하리요"하며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음률을 연주해 주었다는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

◇ 충북 고유의 음률 담은 농요

하지만 탄금대 방아타령 곡조는 인근의 같은 충북지방이라도 강원도 색조가 섞인 제천·단양 지역의 것과 다르고, 경기지방 색조가 섞인 음성·진천 지역의 것과 다른, 충북지역의 독특한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부활된 중원마수리농요는 모찌기노래(절우자), 모심기노래(아라성), 김매기노래(긴방아,중거리방아,자진방아), 두벌 논매기, 여성 노작요인 방아타령, 방아찧기, 한마당 놀이 등 일년 농사의 전 과정이 흥겨운 가락에 맞춰 총 12꼭지로 나눠져 있다.

중원마수리농요를 지키고 있는 충주 신니면 마제마을 주민이자 보존회 회원들.

모찌기 노래(절우자)의 경우 선소리인 박씨가 "춘하추동 사시순환~우리농부를 위함일세~"라고 먼저 소리를 메기면 마을 사람들은 날라리(태평소)의 선율과 꽹과리, 북, 징 등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절우자~절우자~이모자리를~절우자"하는 후렴을 제창하는 식으로 어우러진다.

모심기 노래인 아라성은 "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아라성아"로 시작되는 선소리가 아리랑 곡조로 애잔하게 늘어지며 농부들의 애환을 토해낸다.

김매기 노래는 방아타령으로 구성되어 처음에는 "에히이 에라 방아호오~선천수~후천수는~ 억만세계 무궁인데~건곤이 개벽 후에~만물이 성장할 제~"라는 긴 방아타령으로 시작하지만, 중거리에서 "예히 여러 방아호~천왕씨 탄생하고~지왕씨 탄생하고~인왕씨 탄생후에~"등으로 곡조가 점차 빨라지다가 마지막 잦은 방아타령에서는 "에헤이 여라 방아호~이 방아는 뉘 방아냐~경신년 경신월에~경신일 경신시에~"식으로 빠르고 흥겹게 돌아간다.

이와 별도로 두벌 김매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대허리'로 어깨춤이 들썩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맛이 일품이어서 농사일의 힘든 것을 훨훨 날려보내 준다.

이런 남자 중심의 노작요 뒤에 여성들이 하는 노작요가 긴 방아타령, 잦은 방아타령이 있다.

그러나 이 여성노작요는 본래부터 전해오는 중원 지방의 농요에는 없었던 것을 1972년 탄금대 방아타령으로 참가할 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 예술계의 한 분이 만들어 붙인 것이라는 설이 있어 원형 보존의 차원에서 심각하게 재검토돼야 하는 대목으로 보여진다.

◇ 박재석 보유자 "테잎 들으며 노래 익혀"

이런 중원마수리농요의 중심에는 보유자 박재석씨가 있다.

어려서부터 이 마을에서 자라고 농사를 지으며 어른들이 하는 농요를 듣고 자랐던 박씨는 1996년 후반에 이 노래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당시 보유자였던 지남기옹이 중풍에 걸려 노래는 물론 말도 못하게 되자 마을 어른들이 지남기옹의 노래가 담긴 테잎을 주며 "이제는 자네가 익혀서 해 봐라"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전수자 없이 지남기옹이 갑자기 노래를 못하게 되자 마수리농요의 맥이 끊어지게 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박재석씨는 마을 어른의 노래 테잎을 들으며 익혀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인 중원마수리농요 보유자가 됐다.

그래서 박씨는 테잎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노랫말과 가락을 익혔고, 좀 더 확실한 원형을 익히고자 1972년 공연 당시 노래가 담긴 KBS방송의 녹화테잎을 구해 노래를 익히고 또 익혔다.

박씨는 "농요를 들으면 농사일의 힘든 것도 다 잊혀지고, 구성진 그 가락이 너무 좋았다"며 "당시 노래를 배울 때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생각에서 사생결단으로 연습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렇게 2년 동안 독학으로 연습을 한 결과 1998년에는 충청북도로부터 무형문화재 전수자로 인정을 받았고, 지남기옹이 지난 2005년 79세로 작고하자, 박씨가 2007년부터 새로운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한편 이 중원마수리농요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박씨와 보존회 소속 마을사람들은 1999년 충주무술축제, 2000년 전국팔도민속축제, 2003년 두렛소리 전국 총회, 2005년 KBS국악한마당, 2006년 청남대 가을축제 개막식, 올해 우륵문화재 등 각종 행사에 초청돼 해마다 적게는 5번, 많게는 11번까지 출장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에도 부천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 요청이 있었으나 유행 전염병인 신종플루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지 못한 것도 많았지만 내년에도 벌써 무형문화재축제 등 여러 곳의 공연이 예약돼 있다.

그러나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이 겨우 교통비 정도되는 공연료를 받고 숙박, 식사, 장비운반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공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전통 농요를 널리 보급하고 계승하기 위한 외부 공연을 위해 지자체나 외부 단체의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또 농요(민요)의 경우 옹기, 한지, 활 등 다른 무형문화재들과 달리 박씨처럼 선소리를 하는 보유자 한 사람만으로는 전통계승이나 공연 등 그 활동이 이뤄질 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 다수가 함께 참여하여 후렴을 넣는 등 공연을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마을 중심으로 공연단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꾸려질 경우 함께 연습을 못해서 작품 완성도가 떨어지는 등 많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노령화되는 마을 주민 중심에서 탈피해 농요에 관심과 열의가 있는 인근 지역의 젊은 층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공연 참가자들이 들쑥날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연단을 상설 단원제로 운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전국 각지에 있는 농요(민요) 무형문화재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박종천 프리랜서

주소 : 충북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11

문의전화 : (043) 852-3084, 018-410-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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