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충주 23.8℃
  • 구름조금서산 26.0℃
  • 구름조금청주 25.2℃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추풍령 23.4℃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홍성(예) 26.0℃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많음고산 25.8℃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제천 22.2℃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천안 24.0℃
  • 구름조금보령 26.1℃
  • 흐림부여 22.9℃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충북인의 삶과 이야기 - '그땐 그랬지'

생활 속에서 사라진 그리운 추억들

  • 웹출고시간2012.05.30 20:11: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제천의 한 오지마을 노부부가 이제는 농촌에서도 자취를 감춘 맷돌을 돌려 두부를 만들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사라져간 맷돌

"드르럭 드르럭…."

우리나라 여성들의 전용물이라 할 만큼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던 생활도구였다. 곡식의 탈곡이나 가루를 내는 일, 또는 옷에 풀을 먹이던 역할까지 담당했던 것이 맷돌이다.

기원은 BC 3000~BC 2000년 경 한국의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이후 석기인들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부간에 바쁜 일손을 마무리하고 식구들이 잠든 틈이나 새벽 일찍 마주 앉아 하던 맷돌질은 고단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동 아닌 노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맷돌은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서서히 우리 곁에서 사라져 이제는 어머니와 정(情)을 감았던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에서 3대째 농군으로 살고 있는 이재철씨가 들판에서 써레질을 하고 있다.

◇골동품으로 전락한 소달구지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 소는 가정마다 소중한 재산목록 1호였다. 비좁고 비틀린 길들이 고단한 농부의 손금처럼 나있던 시절, 소달구지는 농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넓고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시골장에서 벼 몇 가마, 녹두·참깨, 말린 고추, 장작다발 등 온 동네 짐을 모두 싣고 다니는 짐차 역할을 대신한 것이 소 달구지다. 산간벽지에서는 달구지 위에 연장자 한 두 명을 태우고 장에 나오기도 했다. 여러 종류의 짐을 운반하는데 이용했으나 1970년대 근대화 바람으로 서서히 리어카와 경운기에 밀리면서 골동품 신세로 전락했다.

◇신세대 농기구 트랙터에 밀린 써레질

모내기 준비 마지막 과정인 써레질. 써레는 축력의 힘을 이용해 갈아 놓은 논이나 밭의 흙덩이를 부수거나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사용했던 농기구다.

무게는 보통 10㎏내외로 소와 남자 한 명이 하루에 논 2천여 평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다. 써레질이 끝나는 것은 논농사의 중요한 고비 하나를 넘긴 셈이므로 '써레시침'이라고 해 음식과 술을 장만해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신세대 농기구 트랙터가 등장해 군데군데 모를 던져 놓고 못줄을 띄워가며 여러 명이 엎드려 모를 심는 풍경은 이젠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다랑이 논과 함께 했던 써레질의 멋과 맛이 없는 농촌풍경에 아쉬운 마음이다.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의 한 농가가 아직까지 아궁이를 고수하며 이른 새벽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개량식 부엌으로 사라진 아궁이

"타닥 타닥…."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아궁이에서는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위에 오른 가마솥이 따뜻한 온기로 이내 생기를 되찾고 생명을 얻은 아궁이속 불씨는 온 집안을 훈훈한 온기로 가득 메운다.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가 모여 서방 흉보며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갓 시집온 며느리가 부모 그리워 눈물을 훔치고, 시부모의 시집살이가 원망스러워 한을 삭이던 공간. 1970년대 농가들이 개량식 부엌을 선호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췄지만 유일한 금남의 구역이자 여자들만의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