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가득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용평들을 지나 마주한 무심천. 왼쪽으로는 방서교 오른쪽으로는 관평교가 먼발치로 바라다 보인다. 어느쪽이든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살펴보니 방서교와 관평교 중간쯤 물길에 닿을듯 내려앉은 앉음뱅이 다리가 눈에 띤다. 폴짝폴짝 앉음뱅이 다리를 건너 둘레길은 시작된다. '하늘은 파랗고 강물도 푸르고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마음...' 흥얼흥얼 콧노래와 함께 걸음들이 가볍다. 달뿌리풀과 억새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고 겨울 첫손님인 흰뺨검둥오리 가족들 물위를 노니는 무심천변을 따라 걷던 길은 평촌과 운동동으로 이어진다. 잠시 월운천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은 운동2교를 건너 원봉공원으로 접어든다. 정갈한 숲속 세상이 반긴다. 인근 주민들이 산책겸 운동 삼아 찾는 휴식처로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소미재에서 용암동쪽으로 빠진뒤 보살사 방향으로 난 길을 따른다. 도심에서 한발짝 물러났을뿐인데도 한적한 시골의 정취가 묻어난다. 길가로 즐비한 포도 과수단지에선 포도 수확이 한창이다. 때마침 체험학습 온 유치원생들의 재잘거림이 병아리 같다. 낙가동 소류지에서 둘레길은 왼쪽으로 길을 달리한다. 계속 직진하다보면 막
복정(卜定)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먼저 점(卜)을 쳐서 길지를 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밖에 조선시대 그 지방의 토산물을 강제로 바치게 하던 것을 복정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남에게 억지로 부담지우는 것을 '복정씌운다'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유래했다. 복정은 궁궐의 부족한 물품을 채우는 것이 1차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중국사신 접대용으로도 복정이 자주 하명됐다. '간원이 아뢰기를,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은 사체가 중대하니, 유사(有司)로서는 마땅히 마음을 다해 조처하여 사대하는 성상의 지극한 정성을 우러러 몸받아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신들이 해조(該曹)에서 각도에 분정한 물목을 가져다 보건대…"'- 복정은 강제성을 띄었다. 이는 하명된 양을 채우지 못할 경우 벌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직이라는 중징계도 내려졌다. 그와 같은 일이 우리고장 충청도의 한 병영에서도 일어났다. '간원이 아뢰기를, "충청 병사 김거병은 연소한 무부로서 부임한 뒤로 방비에는 뜻이 없고 오직 군졸을 침어(侵漁)하는 것으로 일을 삼는 데다가 법금(法禁)을 무시하고 가족을 많이 거느리고 가 있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이번에 조사가 왔을 때 각도에 복정
충북도내 시군 중 한시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최북단 단양이다. 단양문화원이 조사를 한 결과, 무려 130여수에 달하고 있다. 이들 한시의 대부분은 단양팔경 등 명승을 노래했다. 퇴계 이황, 추사 김정희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흔치 않게 유배시를 남긴 인물도 있다. 정철(鄭澈·1536∼1593)과 더불어 조선 시가(詩歌)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다. 그는 85살 생애를 살면서 14년은 유배지, 19년은 은거지, 나머지 8년은 관직에 몸을 담았다. 윤선도는 이 기간중 세 차례의 유배와 두 차례의 이배(유배지를 옮김)를 당해야 했다. 고산은 이때 우리고장 단양을 지나며 '歇馬孔巖'(헐마공암)과 '죽령도중'(竹嶺道中) 등 두 편의 한시를 남겼다. ◇14년을 유배지에서 살다 윤선도는 1616년(광해군 8) 일개 성균관유생 신분으로 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또한 감히 변명을 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 이이첨은 일인지상의 최고 권력자였다
조선시대 어사(御史)는 암행어사와 일반어사로 구분됐다. 암행어사는 글자 그대로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살피던 특명 관직을 말한다. 이들의 임명과 임무는 일체 비밀에 붙여졌다. 암행어사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세조 때였다. 성종실록에 '암행어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나, 세조 때 이미 도입됐던 정황이 나타난다. '옛날에 세조(世祖)께서 신에게 분부하기를, '지금 그대들을 보내는 것은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옛날 사람의 말에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서는 쥐가 함부로 다니지 못한다' 고 했으니, 암행어사(暗行御史)가 한 번 나간다면 탐관(貪官)이 저절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암행어사 제도는 조선 전기에는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신간의 신뢰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안 좋게 여겼다. 대신 공개리에 활동하는 일반어사 제도가 더 많이 활성화됐다. 종류도 파견 목적에 따라 순무, 균전(均田), 독운(督運) 등 매우 다양했다. 순무는 순찰, 균전은 형평 과세, 독운은 조운을 살피는 것을 일컫고 있다. 이밖에 호패(號牌), 구황(救荒), 재해 점검을 위해서도 일반어사가 자주 파견됐다. 암행어
충북일보가 주최한 '42차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행사가 지난 24일 청원군 대청호 둘레길 9구간에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에는 충북일보 직원과 시민 등 28명이 참가했다.오전 8시 청주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전 9시30분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참가자들은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김웅식 교수에게 산행에 알맞은 걷기 요령, 산행 시 마음가짐 등에 대해 배웠다.김 교수는 "비가 내릴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산이며 산은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필터역할을 하는 만큼 굉장히 소중한 존재"라며 "단순히 관광을 왔다는 생각보다는 산의 중요성과 감사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은 예정된 코스(동이면 석탄리 안터선사공원-수북리-며느리재-군북면 국원리-돌거리고개-청풍정-도호리)로 가지 않고 배를 타고 도호리에 도착, 역주행하는 코스로 진행됐다.배를 타고 건너는 대청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으로 가는 내내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햇빛에 반사된 호수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뿌려놓은 것처럼 화사했다.도호리에서 시작되는 강변로를 따라 걸으며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김옥균을 사랑한 기생 명월이의 설화를 지닌 청풍정과 명월
얼마전 우리고장 음성 인물 채수(蔡壽·1449~1515)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연산군 시절을 산 인물이다. 연산군이 보위에 오른지 5년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채수는 이때 정희대비(세조의 비)가 폐비윤씨에 대해 적은 글을 사관에게 넘겨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극형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나 그는 곤장 70대만 맞고 풀려난다. 이때 실록에 우리고장 지명이 어느 때보다 많이 등장한다. 누가 "기생을 데려다 잔치를 했다"고 고변을 한 모양이다. '신이 먼저 충주에 가서 기다리자 아비가 또한 뒤따라 왔었습니다. 단지 하룻밤을 자고서 이튿날 신이 먼저 떠나 안부역(安富驛)에 이르고 아비가 뒤에 왔는데, 충주의 수령이 잠시 전별만 했을 뿐이고 기생을 데리고 잔치를 하느라 오래 머무르며 폐단을 만든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안부역은 지금의 수안보 일대를 말한다. 그의 손자가 채무일(蔡無逸·1496∼1556)이다. 조선시대 화가는 이른바 문인화가와 화원으로 대별된다. 문인화가는 사대부를, 화원은 속칭 환쟁이를 일컫고 있다. 문인화가도 조선시대 미감(美感)을 일정 부분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화가로 이름이 남는 것을 꺼려했다. 따라서 자식들에게
재실(齋室)은 묘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을 말한다. 재실과 같이 죽음에 관련된 문화는 엄숙한 편이다. 따라서 일반 주택과 차이가 많다. 재실의 누(樓)는 묘제를 지낼 때 주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문중회의와 묘제 후 음복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전사청(典祀廳)은 제사에 필요한 기구 및 제수를 보관하는 곳으로 유사실(有司室)로 연결된다. 유사실은 제수 점검, 제사절차 협의, 문중회의 주관 등을 담당하는 유사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재실도 엄연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묘지기, 산지기 등 관리인이 필요했다. 조선시대 묘·산지기는 상민이나 천민 신분으로, 재실의 문중에 신분·경제적으로 종속됐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경주 부윤(慶州府尹) 전동생은 그 첩(妾)이 죽으니, 치내(治內)에 장사하고, 또 관노(官奴)를 묘지기(墓直)로 정하였으며, 품관(品官)이 있는 인리(人吏)로 하여금 재(齋)를 베풀게 하여…'- 그러나 재실문화는 근래들어 거의 붕괴됐다. 묘직이나 산직은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 또 조상숭배와 동족 관념이 희박해 지면서 제사 참가율이 하락, 폐허로 변하는 재실이 크게 많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속에 우리고장 영동 용산면 율리에 송담재(松潭齋·충북문화재
단양 도담삼봉(국가명승 제 44호)은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절경이다. 주변의 석회암지대는 하천과 지하수 등에 의해 모두 깎여나갔다. 지질학 용어로 용식(溶蝕) 현상이다. 반면 도담의 세 봉우리는 석회암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원추 모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강 안에 '바위섬'(巖島)이 존재하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도담삼봉의 이같은 명승성은 역사적으로 '에피소드 공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단색이 아닌 다원색이었다. ◇택리지도 장문으로 언급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숙종~영조 연간을 산 인물이다. 그는 택리지에서 단양을 '들판은 없지만, 강과 시내, 바위와 골의 홀륭한 경치가 있다'(無十里野有江溪巖洞之勝世)라고 적었다. 또 '이담삼암'(二潭三巖)이라는 표현으로 단양 전체의 명승성을 함축했다. 이담은 2개의 못이라는 뜻으로 구담과 도담을, 3개의 바위를 의미하는 삼암은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을 의미한다. 그는 도담삼봉에 대해 돌로 인위적으로 쌓았다는 뜻인 '석가산 같다'고 표현했다. '강물이 휘돌아 가면서 모여 깊고 넓다. 물 가운데 세 개의 돌봉우리가 각각 떨어져 한 줄로 선 것이 활줄같이 곧으며 쪼아서 새긴 것이 기이하
연산군은 폭정 만큼이나 식탐이 강했다. 맛이 있거나 몸에 좋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즉시 진상을 명령했다. 그 대상도 짐승, 해물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경기감사에게 하서(下書)하기를, "해별(海鱉)·강돈(江豚)·옥복(玉腹) 각두 마리씩을 산 채로 잡아 봉진하라" 하였다.'- 인용문 중 해별은 바다자라, 강돈은 돌고래를 말한다. 옥복은 지금의 사문화돼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다만 옥돔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군의 식탐은 외국 것도 가리자 않았다. 당시 부산 등 남해안 지역에 일본 전복이 유입된던 모양이다. '전교하기를, "왜전복(倭全鰒)이 있다 하니, 사서 바치도록 하라. 이 물건 뿐 아니라 모든 특이하게 맛난 것은 널리 구해서 바치라" 하였다.'- 호색한이었던 연산군은 보양식에도 당연히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는 백마(白馬)가 정력에 좋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역시 진상을 명령한다. '전교하기를, "백마(白馬) 가운데 늙고 병들지 않은 것을 찾아서 내수사(內需司)로 보내라" 하였으니, 흰 말의 고기는 양기(陽氣)를 돕기 때문이었다'- 연산군 식탐을 길게 이야기한 것은 왕의 밥상에도 정치적인 색채가 상당 부분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사람에게는 인명(人名)이 있고, 땅에는 지명(地名)이 있다. 한반도 지명 분류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아쉽게도 일본인 젠쇼에이스케(善生永助)였다. 그는 1935년 발간한 '조선의 취락'이라는 책에서 한반도 취락과 지명을 학문적으로 처음 분류했다. 지명은 땅에 대한 단순한 호칭같지만 그 이상의 문화·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명은 토지에 고착된 것이기 때문에 보수성이 매우 강한 편이다. 경기도 수원의 지명에서 이같은 현상을 발견된다. 수원(水原)은 상고시대에는 매홀(買忽)로 불렸다. '매'는 '물', '홀'은 '성'을 의미한다. 지금의 수원은 고대 후기에는 수성(水城), 고려 시대에는 수주(水州)라는 지명을 갖고 있었다. 근원인 '물 水' 자는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명의 보수성은 역으로 그것이 바뀔 경우 종종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고장 보은군에서 그같은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신라는 470년(자비마립간 13) 3년의 공사 끝에 보은에 산성을 쌓았다. 바로 삼년산성으로, 보은군의 최초 이름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후 삼년군으로 첫 개명을 하게 된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년산군을 '보령'(保齡)으로
경부고속도로 금산 나들목에서 68번 지방도를 따라 영동방면으로 가다보면 제원대교를 건너 우측도로변 원골 쉼터가든 입간판과 함께 서있는 월영봉 표지석과 산행안내도를 만날 수 있다. 투명한 햇살, 살가운 바람 가을이 성큼 다가섰음을 체감한다. 소풍길 나선 아이들처럼 와글와글 사진 찍고 산행안내도를 뒤로 산행은 시작된다. 오름길은 시작부터 급하다. 홀치기 하듯 감아올린 뻑뻑한 걸음만큼 숲속세상은 깊어지고 아랫세상은 멀어진다. 가뭄 끝에 놓인 산길은 푸석푸석 날먼지 날리는데다 너덜길이다. 가쁜 숨 삭히는 시간 속에 주어진 상은 언제나 후하다. 발길이 멎는 곳이 전망대요 눈길이 가는 곳이 천국이다. 가을 햇살의 야무진 손끝에 길들여진 산하는 찬란하다. 산자락을 휘감아도는 금강의 물곡선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천연의 캔버스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평온하다. 더디다. 머물다 가는 시간들이 잦다보니 더디다. 1시간 10분 만에 월영산이다. 제원면에서 세운 정상석이 서있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과 영동군 양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월영산(月影山)은 달맞이 산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정월 대보름에 월영봉의 달그림자가 금강에 맑게 비치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는 인근 주민들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의약서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있다. 세종의 명에 의해 1433년 노중례, 유효통, 박윤덕 등이 편찬했다. 내과·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치과 등 각종 임상을 망라적으로 다루고 있어 종합 의약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향약집성방의 모든 내용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에 앞서 편찬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跋)이라는 의약서를 꽤 많이 인용했다. 향약제생집성방은 권중화, 김사형, 김희선, 조준 등이 지은 것을 제생원(濟生院)에서 편찬했다. 당시 실력자인 권근(權近)이 이 의서의 발문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생원의 향약집성방은 이 백성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예천백 권상(權相) 중화仲和)와 더불어 그가 일찍이 저술한 향약방을 가지고 다시 수집을 더하여 전서의 판각을 완성하니, 장차 중외에 반포하고 영원히 전하여, 보는 자로 하여금 모두 그 거주하는 곳에 따라 약을 구할 수 있고, 병중에 따라 치료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찬자 4명중 한 명인 권중화(權仲和·1322∼1408)는 개인적으로 황당한 경험을 한다. 그는 고려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들어갔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