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원자폭탄과 히로시마성의 5사단 ■ 원폭 맞은 지하통신실 히로시마성 안에 일본군이 작전사령실과 지하통신실로 사용하던 벙커 잔해가 그대로 있다. 대본영 터 정면 아래의 낮은 지대이다. 원폭 투하 직후에 찍은 사진 안내판이 처절했던 말로를 보여준다. 주변 위장숲의 나무들은 폭풍의 열기가 지나가 타버린 숯처럼 변했고 앙상하게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시멘트 벙커 위에 올라가자 환기구와 함께 벙커 속의 방과 방을 막은 구조물이 나온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울컥해진다. 이 아래서 근무하던 통신실 장병들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동시에 몰살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동안 풀밭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패전할 때 히로시마성은 유수5사단사령부를 겸한 쥬고쿠군관구(中國軍管區) 사령부였다. 시고쿠(四國) 지역은 빠져나가 별도의 군관구가 설치되어 히로시마, 야마구치, 오카야마 등지를 관할했다. 1945년 2월 본토결전을 결정하고 작전부대와 관구부대를 나누어 방면군사령부 예하에 두고 지휘했는데 쥬고쿠군관구는 15방면군에 속했다. 관내 각 부대에 모르스부호로 명령을 내려 보내던 무전기는 어디에 있었을까. 벙커에서 전선이 빠져나올 곳은 여러 군데 보인다.
국립청주박물관이 '돌에 염원을 새기다'를 주제로 한 '백제 불비상' 특별전을 갖고 있다. 이름이 다소 독특한 불비상은 한자로는 '佛碑像'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비석 모양의 석부재 전후좌우 4개 면에 부처상을 조각했다는 뜻이다. 불비상은 조각이 미려할 뿐만 아니라 명문, 즉 글자가 새겨져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 그런 불비상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불비상은 언제, 어떤 사연이 계기로 발견됐을까. 지난 2011년에 작고한 황수영 박사는 생전에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의 최고 권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지난 1960년 자신이 가르치던 동국대학 제자들에게 "아무거나 좋으니까 탁본을 떠오라"는 학기말 숙제를 낸다. 그러자 당시 충남 연기가 고향이던 이재옥이라는 학생이 전의면 비암사의 불교조각 작품을 탁본을 제출했다. 사료적 가치가 엄청난 것을 직감한 황 교수는 곧바로 비암사로 내려와 불비상 조각품 2점을 더 발견하게 된다. 국보 제 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이런 사연 끝에 발견됐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에는 앞서 언급한 3점 외에 연기지역 또 다른 사찰인 연화사와 서광암에서 발견된 4개의 불비상도
보은 장내리 동학집회를 기념하는 국제 학술회의가 '보은 장내리 동학집회의 종합연구과 전망'을 주제로 지난 26일 보은문화원 시청각실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날 학술회의는 보은 장내리 집회가 발생한지 '二甲'(120주년)이 되는 해여서 어느 해보다 규모가 있으면서 내실있게 진행됐다. 국제학술회의답게 중국 학자도 2명이나 참가한 이날 학술대회는 1~3부로 나눠져 저녁 시간대까지 진행됐다. 먼저 홍일교 독립기념관 학예사는 '장위영 영관 이두황과 장내리의 파괴' 발표에서 "이두황은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점차 일본에 매료된다"며 "체포된 동학농민군 94명 중 73명을 일본군 진지 앞에서 사살한 것도 바로 그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도소가 있었던 보은 장내리는 동학교도에게 본부로 상징되던 곳이었다"며 "그러나 장내리에 진군한 이두황 군대는 일대를 샅샅히 수색한 후 수백 채의 집과 4백여채의 움막을 모두 불살랐다"고 밝혔다. 이어 등단한 왕현종 연세대 교수는 '보은 장내리 집회의 연구와 전망' 발표에서 "1893년 보은 동학집회는 1894년 농민전쟁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중요한 공간이 됐다"며 "장내리라는 그 장소성에서 전국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네
속보= 해공 신익희 선생의 묘역에 세워진 '4.19혁명 연표' 碑에도 4.19와 관련된 충북의 첫 시위는 '충주고'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19 공로로 국민훈정 건국포장을 받은 유한상(74·당시 충주고 총학회장) 옹은 이같은 사실을 사진과 함께 28일 본보에 제보했다. 검은 돌에 새겨진 신익희 선생 묘역의 4.19혁명 연표비는 '1960 2.8 공명선거 추진 전국학생 추쟁위원회 발기대회'를 시작으로 4.19와 관련된 당시 사건 흐름을 차례대로 기록해 내려갔다. 이와 관련, 2월 28일은 '대구 경북고 대구고 경북여고 사대부고 데모라고 적었다. 그리고 3월 10일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원농고 충주고 대전상고 데모'라고 기록했다. 이밖에 이틀이 지난 3월 12일 상황에 대해서는 '청주고 부산 해동고 데모'라고 명문화해, 충주고가 청주지역보다 이틀 앞서 4.19와 관련된 시위를 했다고 명문화했다. 4.19혁명 연표비의 이같은 내용은 본보가 지난 4월 17일자로 보도한 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연표를 새긴 비는 서울 수유동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본보는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내용을 인용해 '3월 12일 청주에서 150명 학생 시위'라고 했으나,
조카 단종(본명 李弘暐)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는 얼마 안가 후환을 없애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에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宋玹壽·?~1457)도 포함돼 있었다. 단종은 14살 때 한 살 연상인 송현수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그녀가 바로 정순(定順)왕후 송씨다. 수양대군과 송현수는 일찍부터 친한 사이였다. 이 때문인지 송현수는 바로 처형되지는 않는다. 일부 대신들이 "송현수를 빨리 처형해야 한다"고 상소하나 세조는 처음에는 이를 물리친다. '"권완과 송현수는 모두 율(律)이 능지 처사하고 재산을 적몰하는 데 해당하며, 연좌된 사람들도 모두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하니, 명하여 권완은 아뢴 바에 의거하고, 송현수는 다시 추국하게 하였다.'- 추국 결과, 송현수는 장(杖) 일백에 영원히 원방의 관노(官奴)에 속하게 되고, 처자 역시 관노비에 충당되게 됐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정창손(鄭昌孫) 등의 주장으로 교사(絞死)되고 말았다. 이때 송현수만 희생당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인용문에 권완(權完 ·?~1457)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는 송현수와 가깝다는 이유로 먼저 능지처참당을 당하고 전재산이 몰수됐다. 또 연좌율이 적용되어 전가족이 화
26.히로시마의 우지나군항(宇品軍港) ■ 교과서에 실린 항구노래 우지나(宇品)군항을 노래한 창가가 있다. 1896년에 나온 '미나토(港)'란 곡이다. 일본 소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 동요는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오래된 초등학교 음악책의 동요가 이런 곡조였기 때문이다. 우지나중앙공원에 이 노래비가 있다. 육군선박사령부 터에 세운 이 비는 군함 연통에서 본 딴 원통 형태이다. 글씨는 우지나의 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한자씩 가사를 써서 새겼다. 작곡자는 히로시마고등사범 음악교사인 요시다 신타(吉田信太, 1870~1953)로서 3박자 노래를 처음 작곡한 일본인이라고 한다. 부산항이란 노래도 지었고, 유명한 연작 노래인 철도창가 작곡에도 참여했다. '미나토'는 우지나항의 활기를 노래한 것이다. 이 활기는 1894년 6월 9일 혼성 9여단의 선발대인 11연대 소속 1개대대 1,024명이 우지나항에 도착해서 시작되었다. 오시마 요시마사 여단장과 11연대 주력은 6월 11일 인천으로 출발하였다. 우지나는 핵심 군항으로 부각되었다. 이해 8월 긴급작업으로 히로시마역에서 오는 도로를 놓았고, 군용철도도 완공시켰다. 전쟁터로 보낼 군량과 말먹이 창고는 1897년에 세워졌고, 19
조선 전기를 산 인물로 김한로(金漢老·1367~?)가 있다. 그는 태종과 과거합격 동기생인 동방(同榜)이었다. 이것을 믿었기 때문인지 그의 행동은 항상 좌충우돌이었다. 그는 태상왕(이성계)이 중국사신을 위해 주최한 궁궐 잔치에 지각할 것처럼 보이자 역리(驛吏)의 말을 빼앗아 탓다가 파직을 당했다. '판봉상시사 김한로가 파직되었다. 한로는 이때에 의순고 별좌로 있었는데, 태상왕이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 때에, 사람을 시켜 길에서 역리의 말을 빼앗아 잡으려고 하니…'- 조선 최고의 난봉꾼 중의 한 명은 아무래도 세종대왕의 친형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일 것이다. 그의 여러 기행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이른바 기첩 '어리'의 사건으로, 그는 남자가 있던 기첩 어리를 궁궐로 몰래 데려오고 급기야 아기까지 갖게 했다. 이후 성밖에서 아기를 낳게 하고 다시 궁궐로 몰래 들여와 살다 아버지 태종(이방원)에게 발각돼 결국 세자 자리에서 폐위됐다. 이 부분은 좀더 살펴볼 대목이 있다. 일국의 세자는 신분이 노출 때문에 기생이라는 천민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때 말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도움을
'신대, 신촌, 신평, 신곡, 신기, 신풍, 신원'. 행정지명에 '신'(新) 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이중 '신대리'라는 지명은 두산백과를 기준으로 할 경우 지금도 전국적으로 25개나 존재하는 등 높은 분포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지명은 어떤 이유로, 언제 많이 생겨난 것일까. 인하대 임학성 교수가 호서사학회에 발표한 '18세기 후반 洞里의 증가와 新里 생성'(부제 충청도를 기준으로) 논문이 시간이 좀 지났지만 주목을 받고 있다. 임 교수에 따르면 '新'자 지명을 가진 행정마을 이름은 18세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新자 마을의 출현 배경과 그후의 변화상을 살피기 위해 18세기에 발간된 여지도서(1759년)와 호구총수(1789년)를 집중 분석했다. 두 사료는 당시 인구 기록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고, 또 시간차가 30년 정도로 적당하게 차이나고 있다. 분석 결과, 18세기 무렵이 '新' 자 마을이 집중적으로 출현한 것은 △인구증가 △동리(洞里)의 분동 △사회 계층의 변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전자에 대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양란에 대한 피해상이 어느정도 극복되자 다시 인구가 증가하기 시
속보= '충북 4.19학생혁명 기념탑' 건립추진 위원장을 맡았던 김현수 전 청주시장은 탑 내용에 '충주고' 이름이 빠진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그러니 지금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말해, 기념탑 명칭을 바꾸거나 문장을 수정하는 데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본보는 지난 19일 청주 상당공원에서 제 53회 4.19혁명 기념행사가 끝난 후 김위원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청주 상당공원에 있는 '충북 4.18학생혁명 기념탑' 내용과 탑이름에 대해 충주시민들이 매우 서운해 하고 있다. 충북에서 최초로 시위를 한 '충주고'가 기념탑에 명문화되지 않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기념탑 건립을 논의할 때 추진 회원들의 대부분은 청주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당시 회의를 할 때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사실을 확인해주는 회원이 한 명도 없었다. 나 자신도 최근까지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사실을 전혀 몰랐다." - 당시 동아일보는 충주고 학생 3백명이 1060년 3월 10일 시내로 진출해 시위를 했다고 기사화했다. 당시 신문을 보지 못했나 "당시 동아일보를 보지 못했다. 신문을 봤다면 당연히 기념탑 내용에 충주고도 집어넣었을 것이다. 충주고가 빠
전회에 김태희 등 내국인이 주축이 된 '청주 청년회'가 1920년 6월 19일 '앵좌(櫻座)극장'에서 출범식을 가졌다고 밝힌 바 있다. 1920년대면 말 그대로 '문명의 열차'가 막 고동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다. 그런 문명의 여명기에 청주에 여가문화의 일종인 극장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현상이다. 그러나 '앵좌극장'이 청주의 제 1호는 아니다.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가 1923년에 발간한 '청주연혁지'를 보면 앵좌극장 직전에 '덕영좌'(德永座)라는 극장이 존재했다. 청주연혁지는 신축 동기부터 밝히고 있다. '청주에 일본인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서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는데 견디기 어려웠었다. 이곳에는 하등이 오락설비가 없는 것은 배속의 기생충도 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德永座라는 극장이 생기게 되어 오래된 일본취미의 흥행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극장 덕영좌는 그 시설 정도가 형편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오꾸마 쇼지는 '설비는 처음부터 강능하지도 않았었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덕영좌는 덕영증병위(德永增兵衛) 개인이 경영하는 이름뿐인 극장이었지만 극장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본 관계는 시대의 추이에
[충북일보] 충북지역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정주를 돕기 위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가 31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개최됐다.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충북도가 주최하고 충북대, 한국연구재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한 이번 박람회에는 외국인 유학생 500여 명이 방문했다. 박람회에는 지역특화형 비자(F-2-R), 전문인력 비자(E-7) 발급이 가능한 △전자, 반도체·기계(현대엘리베이터㈜ 등 16개사)△식품·건강(㈜팜토리 등 10개사) △의약·의료장비(㈜휴온스 등 3개사) △화장품·뷰티(㈜뷰티화장품 등 5개사) △서비스업(㈜체인익스빌 등 2개사) △기타 제조업 (㈜금진 등 10개사) 분야 46개 지역 기업이 참가했다. 유학생들의 지역 기업 상담, 취업 면접 등이 이뤄졌다. 충북경찰청, 충북경제자유구역청, 청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은 외국인 유학생의 생활·취업·정주 등에 필요한 정보와 지원 사업을 안내했다. 구직 중인 유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력서 컨설팅 부스, 증명사진 촬영 부스도 운영됐다.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는 교육부와 중기부가 협업해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충북일보] 지난해 겨울 청주시가 운영했던 눈썰매장에서 시설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10여명의 시민들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시가 올해도 눈썰매장 운영을 추진하고 있어 시민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는 동계방학 기간 시민들의 신체·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사고 이후 1년만에 곧바로 눈썰매장을 여는 것을 바라보는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당시 눈썰매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외주업체 관계자들과 담당 공무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민선 8기 청주시가 '꿀잼청주'를 기치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이번 사업은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시는 다음달 대행사 선정을 진행한 뒤 용역을 거쳐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장소는 생명누리공원으로 정해졌고, 이곳에는 눈썰매장과 눈놀이동산, 편의시설 등이 조성된다. 이 사업에는 모두 2억9천8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시는 올해에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둬 아무런 사고가 없도록 만전을
[충북일보] 충북도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중부고속도로 확장 등 도내 내륙지역 교통 인프라 구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과 확장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낙후됐거나 인구감소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30일 도에 따르면 중부내륙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교통망 완성을 위해 중부고속도로 확장, 충북 동부축 고속도로 건설, 제천~영월 고속도로 건설 등을 추진한다. 먼저 '중부고속도로 전구간 확장'은 청주 남이와 경기도 이천 호법을 잇는 구간(78.5㎞)의 4차로를 6차로로 넓히는 사업이다. 구간별로는 남이~서청주, 서청주~증평, 증평~호법이다. 이 중 서청주와 증평 구간은 실시설계 중이다. 나머지 구간은 2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2021~2025년)에 반영된 만큼 추진 가능성이 크다. 증평~호법 구간은 사전타당성조사 시행, 남이~서청주 구간은 반영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도는 이 도로의 교통량이 계속 늘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물동량과 대형 화물차 증가로 차량 지·정체 등 교통 혼잡비용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도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저발전 지역이자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충북일보] "충북에 자리잡은 지 27년입니다. 이젠 충북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오스바이오㈜는 2018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돼 지난 7월 오스바이오 주식회사로 법인 상호명을 변경했다. 농업과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과 특허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기업이다. 오스바이오㈜는 '의미(醫美 : Health & Beauty)'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건강한 먹거리와 메디컬 푸드 식품, 뷰티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일호(50) 오스바이오㈜ 대표이사는 "그간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의 브랜드 컨설팅이나 기획에 많은 참여를 해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오로지 우리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스바이오'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오스바이오㈜는 미나리, 개똥쑥, 싸리나무, 미선나무 등 다양한 천연물 소재를 활용한 화장품, 식품, 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독자 연구소를 갖고 있고, 회사 투자의 중심은 연구쪽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최근 오스바이오가 주력하고 있는 품목은 '비린내를 제거한 생선'과 '대나무 쌀을 활용한 효소 숙성으로 만든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