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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공방 '천미선 작가'를 만나다

찻상과 퇴수기 합쳐진 '천미선표 茶具' 유명세
매년 훌쩍 떠나는 여행 깨달음이 작품에 스며

  • 웹출고시간2012.04.15 18:24:3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얼마 전, 6개월간 북인도에 머물던 천미선 작가가 공방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궁금했다. 일찍이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자유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삼겹살을 조금 사 들고 목련과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공방으로 찾아갔다. 시골의 오래된 집을 훼손하지 않고 붙이고 이어서 멋스럽게 만들어진 공방이었다. 표지판도 흙을 구워 장승처럼 겹겹이 세워 이름을 새겼고, 앞뜰의 과실수도 담 없는 대지에서 평안하게 봄빛을 받고 있었다. 공방 입구 나무줄기에 열매처럼 조랑조랑 매달린 도자기 컵이 정겨웠다. 머리에 터번을 둘러쓴 여인이 텃밭을 갈고 있다가 낯선 방문객의 등잔에 눈이 목련처럼 환히 켜졌다. 천미선(49)작가였다.

운명 같은 도자기, 그리고 인도여행

"서른 즈음, 도자기를 막 굽기 시작했을 때 인도로 떠났다. 왜 하필 인도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그곳이 인도였다."

일행은 아무 말 없이 천 작가가 찻상에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마치 신을 위해 제물(祭物)을 준비하는 제사장의 손길처럼 엄숙하면서도 익숙했다. 그런데 찻잔을 데운 물을 서슴없이 찻상 가운데 부어버린다. 신기하고도 낯선 광경이다. 물을 받아내는 퇴수기가 찻상 안쪽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번다한 과정이 한결 간소화된 편안함이 전해져왔다. '아, 이것이 바로 유명한 <천미선의 찻상>이로구나!'하고 내심 감탄했다.

차를 따라주는 그녀의 손은 여인의 손이 아니라, 흙을 만지고 살아온 투박한 장인의 손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이지만, 눈에는 총기가 돌았으며 말투는 온화했다. 다향이 가득한 실내에 봄빛이 들자, 창 너머로 한들한들 초록의 풀들이 실개울처럼 너울거렸다.

작가의 인도 이야기가 차향과 함께 펼쳐졌다. 생애 처음 2달간 삶의 화두를 안고 떠난 배낭여행이었다. 작가는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 소나 돼지가 아무렇게나 도심을 활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나라가 인도다. 사람들은 윤회의 순리 앞에 순응하면서 '내가 내가 아니고, 네가 네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인도를 만났다."라며 "내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먹으면서도 '어찌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당당히 말하는 인도인에게서 나는 무한한 자유를 보았다."라고 말한다.

천 작가는 처음 생활 공예로 입문해 흙과 도자기가 좋아져 아예 전업 작가로 나섰다. 대한민국 명장인 천한봉 선생 공방과 청주 도림공방에서 도자기 빚는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청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다시 도예를 전공했다. 청자, 백자, 진사, 흑유 등 도자기에서 표현될 수 있는 다양한 색감과 형태를 전통문양과 함께 그녀의 영혼을 담아 찻상으로 빚어내기 시작했다.

발상의 전환, 찻상 중앙을 뚫은 퇴수구

청자 찻상

2008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천미선의 휴(休) 찻상展'은 작가에게 커다란 획을 그은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물레기법으로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국내에 여럿이 있었다. 하지만 물레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두드리고 빚어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파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茶) 애호가들 사이에서 찻상과 퇴수기가 분리되는 것은 보편적 진리였다. 하지만 천 작가는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당연시되는 것도 불편하면 바꿔야 된다는 것이었다. 천 작가는 "각종 다구와 찻상을 만들려다 문득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마음을 두드렸다. 그래서 작정하고 1년 동안 차를 배우러 다녔다. 직접 사용하고 부딪히다보니 눈이 조금씩 열렸다. 그러다보니 '격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결국 다구(茶具)는 사람이 쓰는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며 찻상에 구멍을 뚫어 퇴수기는 찻상 안쪽에 놓아 물을 받는 방법을 착안한 것이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발상이었다. 찻상과 퇴수기가 하나로 합체되는 순간이었다. 다구가 무조건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었다. 둘을 하나로 합치니, 번잡함이 한결 줄어들었다. 덕분에 전시회를 찾은 다인(茶人)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버리는 물에 격조를 입히다


천 작가는 물레가 아닌 판상기법으로 도자 찻상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찻상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한 달은 족히 걸렸다. 점토질이 강한 산청 흙과 중국 경덕진 백자토를 혼합해 도판을 만들어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적당히 건조된 도판과 받침대를 붙이고 찻상 중앙을 뚫어 멋스럽게 문양을 냈다.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통해 완성된 천미선 표 '찻상'은 마침내 그렇게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퇴수기로 통하는 구멍의 형상은 그야말로 찻상의 절창(絶唱)이었다. 한껏 예와 격조를 갖춰 떠나가는 물을 배웅하는 격이다. 퇴수기는 모란꽃 형상의 물을 받기도 하고, 국화나 연꽃문양의 물을 받아내는 것이다. 퇴수기에 물이 떨어질 때마다 각각의 화향(花香)이 은은하게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나비문양을 통과한 물은 퇴수기에 닿기 전, 공중에서 팔랑팔랑 투명나비가 되어 가물가물 김으로 승화되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김동완(동국대, 51)교수는 "한낱 버리는 물에도 격조를 입힌 따뜻한 찻상"이라며 "다구의 품위를 한껏 높였다."라며 감탄했다.

매년 기억되는 한 가지를 만들어라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한 등반가에게 물었다.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오르십니까?" 그러자 등반가는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라고 답했다.

천 작가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살아가면서 매년 한 가지씩 기억에 남는 일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한 가지씩 이루어가다보면, 미래의 종착역은 알 수 없지만 삶의 방향은 잡힐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매년 한 번씩은 여행을 떠난다. 이번 6개월간의 북인도여행은 생각보다는 길었다. 그녀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작품에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한 순례의 길인지 물었다.

"딱히 한순간 어떤 영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나도 모르게 빚어지는 작품 속에 인도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 담아 두었던 풍경과 느낌 그리고 작은 깨달음들이 녹아 작품에 저절로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어둠이 공방에 드리워질 무렵, 일행은 삼겹살을 구웠다. 봄날이 절정인 저녁은 한결 풍요로웠다. 삼겹살을 감싼 것은 뜻밖에 하얀 목련꽃잎이었다. 거기에 민들레잎, 소부쟁이, 냉이꽃, 앵두꽃을 얹어 먹으니 입안에 봄이 활짝 피었다. 식사 후, 천 작가가 직접 우려낸 세계적인 명차인 다즐링 '홍차'로 입안을 헹구니 세상 이보다 행복한 봄의 유희가 따로 없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천미선 작가 수상경력 및 전시

청주대학교 대학원 공예학과 졸업 / 청주공예품경진대회 특선(1999) / 국제 다구(茶具) 디자인공모전 입선(2006) / 충북미술대전 특선(2007) / 제1회 백제문화예술대전 특별상(2007) / 무안관광상품 공모전 동상(2008) / 영남미술대전 특선(2008) /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 기획전(2008) / (現)청원군 오창읍 석우리 '미선공방(043-214-4444)'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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