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은 공공녹지로서 자연지(自然地)나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로 정의된다.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원이 역사적으로 언제 출현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근대공원은 중세 이후 영국의 왕후·귀족이 소유·독점 사용하던 수렵장이나 대규모 정원을 19세기 중반에 일반에게 공개한 것에서 비롯됐다.청주의 근대적 의미의 공원은 일제 강점기 때 등장했다. 일본인 오쿠마온보(大雄春峰)가 1923년에 쓴『청주연혁지』에는 '서공원'(현 사직동 충혼탑 자리·사직산)과 '동공원'(현 당산 일대·명장사 뒷산))에 대한 설명이 동시에 등장한다. 따라서 최소한 1920년대 초반부터청주에도 공원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공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먼저 『청주연혁지』는 서공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무렵에는 청주에 공원이 없었기 때문에 鈴木 장관은 부하에게 명령하여 땅을 깍아 도로를 개척하고, 여러 종류의 수목을 재배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돌을 운반하여 벤치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오처옥(吳妻屋)을 설계하여 휴식장소로 삼도록 하였는데, 동공원과 함께 성대하게 설비되어 있었다. 櫻井 장군도 이에 동조하여 재향군인들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과 청주백제유물전시관이 공동으로 지난 14일부터 '가마에서 무덤으로 - 청주의 백제가마, 오산리 유적' 특별전을 신봉동 백제유물전시관에서 갖고 있다. 도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청주 옥산면 오산리 가마터에서 백제시대 토기류 등 다량의 유물을 발굴한 바 있다. 특히 일대 가마터는 청주지역에서는 처음 발굴된 백제시대 생활유적이어서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관심을 끈 바 있다. 이중 토기로 만든 파배(把盃·손잡이잔)와 장군은 사료적 가치가 클뿐 아니라 아직도 유물 해석에 대한 정리가 종결되지 않아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파배는 5세기를 전후해 생산된 토기로, 옛 마한과 백제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는 등 영역성이 강한 유물이다. 특히 청주지역에서 출토된 파배의 경우 토기표면 상단에 가로 음각선이 그어진 것이 많아, 그 기능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해 왔다. 이와 관련 10년 전에는 음각선이 눈금자 역학을 했고, 따라서 파배는 액체나 곡식의 용적량을 재는 '양기'(量器)의 일종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이 논리는 "백제는 600㎖(소형 바리)를 1되로 해서 4되, 즉 2400㎖(파배)를 1말로 계산하는 용적체계를 가진 것 같다"는 논리로 발전했다
단양은 산이 많고 들이 적기 때문에 쌀 생산량이 매우 적었다. 이런 환경에서 전세(田稅)를 쌀 등 현물로 내는 것은 고욕이 아닐 수 없다. 쌀 생산량이 적다보니 타지에서 쌀을 사다가 전세를 내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를 해결한 인물이 당시 관찰사 이석규(李錫奎)다. '단양군의 전세(田稅)·대동미와 군포(軍布) 등을 영원히 전량 돈으로 대납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는 도백 이석규가, 산간 고을에서는 쌀과 베가 매우 귀하여 멀리 타도에서 사와야 하고 수송의 길도 험하여 매양 전복된 배가 많다는 이유로 돈으로 대납하기를 청하니, 묘당에서 복계(覆啓)하여 시행하도록 허락한 것이었다.'- 그의 충청도 관찰사 재임시절에 연풍현에서 이희윤(李喜允)이라는 인물에 의해 전패(殿牌)훼손 사건이 일어났다. 전패사건이 빈발한 탓인지 순조실록은 이 사건을 소략으로 기록했다. '공청감사 이석규가 연풍현의 전패를 가지고 변을 일으킨 죄인 이희윤을 처형할 것을 아뢰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것으로 종결되지 않았다. 순조실록은 20여일 뒤 또 하나의 관련 기사를 기록해 놓았다. 이희윤의 아들도 연좌제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풍현에 전패를 가지고 변을 일으켰던 죄인 이희윤의 아들
조선시대 우리고장의 전패훼손 사건은 충주, 황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빈번히 발생했다. 조선후기가 되면 전정, 군정, 환정 등 이른바 삼정의 문란으로 서민생활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 전패 훼손사건은 음성, 단양, 연풍, 괴산 등에서도 일어났다. 그러나 이때의 훼손 사건은 다른 지역과 달리 정치적,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이는 사건이 나름대로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먼저 음성현 객사의 전패훼손 사건이다. 현종실록 3년(1662) 2월 4일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음성현에서 전패를 도난당했다고 감사가 계문하였는데 예조가 회계하기를, "그 읍만 혁파하고 수령에게는 죄를 묻지 말아서 간악한 백성이 계획적으로 수령을 몰아내는 일을 막도록 하소서." 하니 (…) 이에 상이 따랐다." '수령을 골탕 먹이려는 전패훼손 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니 고을만 강등시키고 수령을 파직하지 말아달라'는 건의 내용이다. 현종은 이를 수용, 당시 수령은 파직하지 않았으나 음성현은 10년 동안 그 이름이 사라졌다. '호서의 음성현(陰城縣)을 혁파하였는데, 전패(殿牌)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성현 전패훼손 사건을 기점으로 전패에 대
일제가 강점기 동안 한반도 통치차원에서 발간한 '조선지지자료'라는 지리지가 순우리말 지명의 보고(寶庫)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를 활용할 경우 새주소 사업 등 이런저런 이유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순우리말 지명을 효과적으로 복원·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원대 김순배 강사가 얼마전 한국지역지리학회에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충청북도편 지명 자료의 시론적 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조선지지자료는 일제가 1910년대에 제작·발간한 지리지로, 전국 각 면의 산, 골짜기, 들, 리(里), 주막, 둑, 보(洑), 시장 이름 등이 수록돼 있다. 특히 한자화된 이름과 함께 당시 문법으로 한글이름도 병기, 1910년대 이전의 순우리말 이름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정보가 담겨져 있다. 사례를 살펴보면, 조선지지자료는 보은군의 경우 총 13개 면에 6백34개의 지명을 수록해 놓았고, 이중 84%인 5백30개의 지명을 한자+한글로 병기했다. 조선지지자료를 보면 보은읍 '장몽평'(長夢坪)이라는 지명은 순우리말로는 '장ㅅㄱ+ㅜ+ㅁ이들'(현대어 장꿈이들)로 불렸다. 이것을 일제는 △장에서 長(음차) △ㅅㄱ+ㅜ+ㅁ이에서 夢(훈차) △들에서 坪(훈차) 등의 한자를 빌려 '장
국왕을 상징하던 전패(殿牌)는 조선후기 들어 각종 사건에 휘말렸다. 그 사연은 정치적인 동기, 개인 비리에 의한 훼손 등 매우 다양했다. 조선시대 최초의 전패 훼손사건은 효종 6년(1655)에 전라도 나주에서 일어났다. 당시 나주에는 경현서원이 존재했고, 그 운영권이 전패 훼손사건의 발단이 됐다. 비(非) 서인계가 서원(書院)의 원장이 되자 당시 나무목사 정기풍(鄭基豊·1594~?)은 이를 옹호했다. 그는 본관이 초계로 1642년 신계(新溪·지금의 황해도 신계군) 현령으로 재직하던 중, 암행어사 정치화를 통해 그의 선정이 보고되어 임금으로부터 의복을 하사받을 정도로 유능한 관료였다. 또 우리 고장과도 인연이 있어 1650년(효종 1) 옥천군수(沃川郡守)로 재직하던 중 문학(文學·정5품)에 임명되기도 했다. 아무튼 당시 나주의 서인 집단은 이를 빌미로 목사 정기풍을 축출하려 했다. 전패가 훼손되면 그 책임의 일부가 목사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미리 계산한 사건이었다. 전패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지능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일성록 헌종 11년(1845)에 관련 기록이 적혀 있다. 이 때는 우리 고장 청주와 관련된 인물이 등장한다. 청주사람 박용수는 유한원이
조선 조정은 국가차원에서 두 개의 위패를 관리했다. 하나는 궐패(闕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패(殿牌)이다. 제후국을 자처했던 조선 조정은 황제국인 명나라를 향해 정초, 황제생일, 동짓날 등에 절올리는 의식은 망궐례를 행했다. 이때의 위패는 '궐패'(闕牌)라고 불렀다. 궐패가 국외용이라면, 전패는 국내용이었다. 조선 조정은 또 전국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殿(전)'자를 새긴 나무 패를 봉안했다. 바로 전패이다. 고려 시기까지의 객사는 말 그대로 공무로 출장온 관료들의 숙박 장소로 사용됐다. 조선 조정은 지방에서도 국왕 권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15세기 후반 무렵부터 이 객사 내부에 전패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사극을 보면 '전하'(殿下)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원래 이 전하는 신하가 임금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신하가 자신의 방문을 알리는 이른바 '인기척 표현'이다. 감히 신하가 임금을 부를 수는 없었다. 아무튼 전패나 전하의 '전'은 일국의 최고 통치권자를 상징했다. 전패는 국왕의 상징물이었으므로 그 보관 및 관리가 매우 엄격하였다. 이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자는 대역죄에 해당되어 본인은 물론 일가족까지 처형되었고 그 고을은 10년간 혁파되어 이웃 고을
일제는 왜 조선 백성들의 흰옷(白衣) 착용을 막고, 대신 색깔옷(色衣)을 입도록 전국적인 운동을 펼친 것일까. 일본 제국주의는 192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1930년대 초반까지 색깔옷 입기 운동의 일환인 '염색강습회' 행사를 전국 각군을 순회하며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본보가 확인한 결과, 이와 관련되 충북의 첫 기사는 1928년 8월 28일자(사진1)에 실려 있다. 가급적 원문을 살린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충북 염색강습회는 예정인원 60명에서 20명이 초과되야 80명의 출석으로 지난 20일부터 3일간 청주공립보교 여자부 강당에서 중앙시험소 기수 瀧川昇씨 지도하에 개최하엿더라.' 인용문의 '瀧川昇' 씨는 조선인이 아닌, 염색 기술을 지닌 일본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립보교'는 현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일제시대의 초등교육기관을 일컫는다. 다음 기사는 충북도내의 염색강습회를 주관한 곳은 충북도청 사회과이고, 당시 총독부는 공무원-일반주민 순으로 색의 착용운동을 전파시키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도 사회과 서기 李重甲씨 임석하게 염색강습회를 개최하엿다는데(…). 일반지도의 제 일선에 처하여 잇는 면직원 보교원에 충분히 염색에 대하야 지식을 보급식혀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처음 들어온 담배는 특유의 중독성을 발했다. 17세기 후반의 하멜은 표류기의 일부를 이렇게 기록했다. '현재 조선인들은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5세 때에 이미 이를 배우기 시작하여 그래서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국왕 중에서도 '골초 임금'이 등장했다. 정조가 지은 문헌 중에 '남령초 책문'이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오로지 이 남령초에서만 도움을 얻었다. 화기(火氣)로 차가운 담(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를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뒤에는 '갑이냐 을이냐를 교정하여 붓방아를 찧을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고뇌를 편안하게 누그러뜨리는 것도 그 힘이다'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가 번역한 글이다. 그런 정조는 '백성들에게 담배의 혜택을 주겠다'는 사명감에 불탓다. 말 그대로 전국민의 흡연화로, 역시 '책문'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풀이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따라서 남령초를 월령에 싣고 의
담배는 포르투갈어 '토바코'(TOBACCO)가 일본에서 '다바코', 그리고 이 '다바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담바구'로 불리다가 '담배'로 정착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토바코'에 대해서는 △서인도제도의 섬이름이라는 설 △그곳 원주민이 사용하던 담뱃대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정설화된 것은 없다. 이밖에 담배는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 연초(煙草), 다연(茶煙) 등으로도 불렸다. '남령초'는 남쪽의 신령스러운 풀, '연초'는 연기나는 풀, '연다'는 연기나는 차라는 뜻이다. 담배의 원산지는 어디이고, 또 우리나라에는 언제·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담배의 원산지는 중아메리카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담배에 약효능이 있다고 생각해 유럽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유럽에서 한반도로 유입 경로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포르투칼-필리핀-일본-조선 순으로의 전래설, 둘째는 비단길-청나라-조선 유입설, 셋째는 두 가지 모두, 즉 한반도 남북으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첫 번째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경우 담배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설이 보다 유력해 진다. 조
[충북일보] 충북지역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정주를 돕기 위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가 31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개최됐다.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충북도가 주최하고 충북대, 한국연구재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한 이번 박람회에는 외국인 유학생 500여 명이 방문했다. 박람회에는 지역특화형 비자(F-2-R), 전문인력 비자(E-7) 발급이 가능한 △전자, 반도체·기계(현대엘리베이터㈜ 등 16개사)△식품·건강(㈜팜토리 등 10개사) △의약·의료장비(㈜휴온스 등 3개사) △화장품·뷰티(㈜뷰티화장품 등 5개사) △서비스업(㈜체인익스빌 등 2개사) △기타 제조업 (㈜금진 등 10개사) 분야 46개 지역 기업이 참가했다. 유학생들의 지역 기업 상담, 취업 면접 등이 이뤄졌다. 충북경찰청, 충북경제자유구역청, 청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은 외국인 유학생의 생활·취업·정주 등에 필요한 정보와 지원 사업을 안내했다. 구직 중인 유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력서 컨설팅 부스, 증명사진 촬영 부스도 운영됐다.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는 교육부와 중기부가 협업해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충북일보] 지난해 겨울 청주시가 운영했던 눈썰매장에서 시설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10여명의 시민들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시가 올해도 눈썰매장 운영을 추진하고 있어 시민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는 동계방학 기간 시민들의 신체·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사고 이후 1년만에 곧바로 눈썰매장을 여는 것을 바라보는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당시 눈썰매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외주업체 관계자들과 담당 공무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민선 8기 청주시가 '꿀잼청주'를 기치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이번 사업은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시는 다음달 대행사 선정을 진행한 뒤 용역을 거쳐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장소는 생명누리공원으로 정해졌고, 이곳에는 눈썰매장과 눈놀이동산, 편의시설 등이 조성된다. 이 사업에는 모두 2억9천8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시는 올해에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둬 아무런 사고가 없도록 만전을
[충북일보] 충북도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중부고속도로 확장 등 도내 내륙지역 교통 인프라 구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과 확장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낙후됐거나 인구감소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30일 도에 따르면 중부내륙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교통망 완성을 위해 중부고속도로 확장, 충북 동부축 고속도로 건설, 제천~영월 고속도로 건설 등을 추진한다. 먼저 '중부고속도로 전구간 확장'은 청주 남이와 경기도 이천 호법을 잇는 구간(78.5㎞)의 4차로를 6차로로 넓히는 사업이다. 구간별로는 남이~서청주, 서청주~증평, 증평~호법이다. 이 중 서청주와 증평 구간은 실시설계 중이다. 나머지 구간은 2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2021~2025년)에 반영된 만큼 추진 가능성이 크다. 증평~호법 구간은 사전타당성조사 시행, 남이~서청주 구간은 반영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도는 이 도로의 교통량이 계속 늘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물동량과 대형 화물차 증가로 차량 지·정체 등 교통 혼잡비용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도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저발전 지역이자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충북일보] "충북에 자리잡은 지 27년입니다. 이젠 충북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오스바이오㈜는 2018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돼 지난 7월 오스바이오 주식회사로 법인 상호명을 변경했다. 농업과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과 특허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기업이다. 오스바이오㈜는 '의미(醫美 : Health & Beauty)'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건강한 먹거리와 메디컬 푸드 식품, 뷰티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일호(50) 오스바이오㈜ 대표이사는 "그간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의 브랜드 컨설팅이나 기획에 많은 참여를 해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오로지 우리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스바이오'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오스바이오㈜는 미나리, 개똥쑥, 싸리나무, 미선나무 등 다양한 천연물 소재를 활용한 화장품, 식품, 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독자 연구소를 갖고 있고, 회사 투자의 중심은 연구쪽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최근 오스바이오가 주력하고 있는 품목은 '비린내를 제거한 생선'과 '대나무 쌀을 활용한 효소 숙성으로 만든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