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진(權東鎭, 1861~1947)은 손병희·오세창 등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1882년 군인으로 처음 관직에 발을 들인 이후 천도교와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방 때까지 평생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애국애족의 삶을 살았다. 일본 망명과 천도교 입교 권동진은 1861년 충북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 안심마을에서 아버지 권재형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6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안동에서 세거하다가 아버지 대에 괴산으로 이거했고, 그는 괴산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라서는 포천 출생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가 여덟 살이던 1869년, 집안이 서울 재동으로 이사하였으며, 서울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권동진이 19세 되던 1880년, 사관학교를 개설할 때 제1기생으로 입학하였다. 무관 집안 출생인 권동진은 그곳에서 남다른 열성을 보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는 박영효가 거느리는 전후영 소속으로 다른 무관 출신 5인과 함께 대궐에 번을 들어가 고종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 후 육군참령이 되어 별군직을 맡았고, 함안군수와 거문도 참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895년에 발생한
이인좌 등 반노론 세력은 무신년(1728년)에 정변을 일으켰지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거사에 성공할 경우 밀풍 군 탄(坦·?∼1729)으로 국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굳이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밀풍군의 할아버지는 소현세자(昭顯世子·인조의 장남)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회(檜)다. 광해군(光海君·1575~1641)은 북인의 지원을 받아 보위에 올랐으나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협력한 인조반종에 의해 실각, 제주도로 유배를 간 끝에 사망했다. 당시 서인이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광해군의 폐모살제, 즉 계모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증살(방에 불을 때어 죽임)한 점이었다. 바로 이 부분에 방점이 찍힌다. 인조반정이 일어날 때는 노론과 소론이 분당하기 전으로, 동당(同黨)인 서인이었다. 남인들도 협력자 위치이기는 했으나 신권력 창출에 협력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무신난을 일으킬 당시 반노론 세력들에게는 그런 권력에의 향수가 있었다. 이들은 거사 직전 밀풍군을 찾아가 의사타진을 했던 것으로 실록은 기록했다. 이인좌는 관군에 체포 된 후의 신문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이유익·한세홍
1728년 무신란은 권력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이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해 일으킨 정치적 성격의 반란이다. 청주목 송면(지금의 괴산군 청천면 송면)의 이인좌는 무신란 때 가장 먼저 기병해 국가시설인 청주읍성 감영과 상당산성을 점령했고, 또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다. 따라서 무신란은 이인좌가 주동자가 돼 총괄 기획을 한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꼭지점의 주동자는 박필현(朴弼顯·1680-1728)이라는 인물로 볼 수 있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인좌는 관군에게 생포된 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신이 봄에 동성 5촌인 이홍부(李弘溥)의 집에 올라왔는데, 이홍부가 풍설에 대해 묻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왜 박필현과 사귀어 남의 말을 듣게 하느냐. 근신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박필현은 재작년 상주로 이사할 때 보아 잘 압니다. 모의는 모두 박필현이 지시했으며…."- 죄과를 모두 박필현에게 떠넘기는 진술로도 볼 수 있으나, 《영조실록》 4년 3월 19일자에도 '박필현이 비록 읍재(邑宰)로 나가 있지만, 사실상 괴수(魁帥)이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인용문중 읍재는 태인현감을 일컫고 있다. 박필현은 소론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경종이 급서, 권
'새재'가 아닌 '이화령'을 통과하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새재 자전거길'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재임기간(2008-2013년) 동안 남한강, 새재,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전국 5곳에 대규모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건설했다. 이중 '새재 자전거길'은 충주 탄금대에서 경북 상주 상풍교까지 총연장 1백㎞ 구간으로, 백두대간 남북사면의 남한강과 낙동강 자전거길을 연결하고 있다. 이와 관련 당시 정부팀은 지난 2011년 11월 27일 이화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기념식을 갖고 이대통령 친필휘호가 새겨진 표지석을 설치했다.(사진) 그러나 새재 자전거길은 명칭과 달리 충주-수안보-소조령-연풍-이화령-문경 등을 경유할 뿐 새재 영로(嶺路)나 정상을 전혀 통과하지 않고 있어, 자전거 이용자(라이딩)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 이화령 휴게소에 들른 대다수 자전거 이용자들은 "이화령 정상인데 왜 새재 자전거길이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재 옛길은 비포장인데다 곳곳에 길턱이 있어 자전거 이용이 사실상 어렵다. 또 '새재'는 대중화된 지명이기는 하나 정식 행정지명은 '조령'으로, 주위는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3. 손병희 손병희(孫秉熙, 호는 義菴, 1861. 4. 8 ~ 1922. 5. 19)는 충북출신의 독립유공자 중에서 건국훈장의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가운데 대표였고, 동학농민혁명·개화운동·교육사업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 청주에서 온 상놈 손병희는 1861년 4월 8일 충청도 청주목 산외이면 대주리(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서자에 대한 신분적인 차별로 손병희는 일찍 과거를 단념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생활이 일시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는 있으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병희는 의기로서 신분 차별에 맞서게 되었고,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일화 중에 하나는 1876년 9월 손씨 문중의 제사에서 일어났다. 성인이 된 모든 자손들이 의관을 갖추고 제례에 참여하는 제사에 혼인을 한 손병희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복형들이 그의 제사 참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이에 격분한 그는 '아버지의 뼈만이라도 일부 가지고 따로 산소를 만
1728년 무신란 1년 전의 《영조실록》에는 다소 의아한 내용이 실려 있다. '형혹성(熒惑星)이 태미원(太微垣)으로 들어가니, 이는 병상(兵象)인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무신의 변란(變亂)이 있었다.'- 인용문중 △형혹성은 화성 △태미원은 북쪽하늘 삼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하나로 천자가 다스린다는 공간 △병상은 반란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현재와 미래의 상황이 동시에 기록돼 있는 등 모순된 문장구조를 하고 있다. 사관은 국왕이 승하하면 평소 기록해 놓았던 사초(史草)를 기초로 실록 작성에 들어간다. 따라서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사관 주관이 한 문장에 표현될 수 있다. 위 모순은 이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튼 이 인용문은 멀지 않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이 꽤나 퍼져있었음을 반증한다. 이인좌의 신문 내용을 기록한 공초(供草)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신이 봄에 동성 5촌인 이홍부(李弘溥)의 집에 올라왔는데, 이홍부가 풍설에 대해 묻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왜 박필현과 사귀어 남의 말을 듣게 하느냐? 근신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후술하겠지만 박필현은 1728년 무신란의 또 다른 주동자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인좌보다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영조가 보위에 오르면서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소론과 남인세력이 막후에서 연합, 정변을 일으킨 것으로 설명된다. 이들은 반란의 명분으로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이 있고 △그런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 노론 김춘택(金春澤·1670∼1717)의 아들이라는 이른바 '영조 김씨설'을 퍼트렸다. 영조 어머니 숙빈최씨는 본래 김춘택의 묘지기인 최씨의 딸로 무수리로 입궁, 숙종의 눈에 들어 영조를 낳았다. 이처럼 '소론+남인' 연합의 非노론 세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영조의 정통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것은 당시 정국 전반의 지형이고 이인좌(李麟佐·?∼1728)가 반란을 도모한 데는 가족사가 먼저 작용했고, 그 열쇠말(키워드)은 경신환국과 외조부 윤휴(1617-1680) 그리고 갑술환국과 조부 이운징(李雲徵·?∼1717)이다. 이인좌의 외조부 윤휴는 한때 송시열과 친분이 두터웠다. 특히 19살 때 10년 연장자이던 송시열을 속리산 복천암에서 만나 3일간의 토론 끝에 우암이 "30년 간의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다"고 자탄할 정도로 일찌기 높은 학문적 경지를 이뤘다. 그러나 예송논쟁
지명으로 봤을 때 청주 역사의 첫 행정 치소(治所)가 있었던 지역은 지금의 청주시내 일원이 아닌, 상당구 미원면 일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치소는 전통시대 고을(邑)과 연관된 개념으로, 관료가 거주하고 관청이 위치하는 등 일대를 다스리던 행정적 중심지를 의미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이기봉 고서전문원은 얼마전 출간한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1)'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고려사 지(誌)와 세종실록 지리지는 청주목에 대해 '본래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으로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다가, 경덕왕 때에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시켰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고 거의 같게 서술하고 있다. 반면 조선 중종 때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청주의 백제시대 지명과 관련, 이같은 표현 외에 '일명 낭비성(娘臂城)이라고도 하고 혹은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낭비성'과 '낭자곡'은 이 표현으로 인해 지금도 청주의 이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낭비성'의 축약된 표현이 지금의 '낭성'(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이라는데 별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지명인 '낭성산성'은 낭성면이 아닌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2. 충북의 3.1 운동과 충북 출신 민족대표 3.1운동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으로 평가되는 거족적 항일투쟁이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요원의 불길처럼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갔고, 해외에서도 한민족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만세함성이 메아리쳤다. 충북에서는 3월 19일 괴산 장터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19일 제천 송학면 만세시위까지 만 1개월 동안 도내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본 호에서는 96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충북에서 전개된 3·1운동의 통계와 성격, 충북 출신 민족대표의 독립사상을 정리하기로 한다. ◇ 충북의 3.1운동 통계96년 전, 충북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의 3·1운동이 전개되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주는 자료가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이 3.1운동 통계를 정리한 이다. 여기에 나타난 충북의 3.1운동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그런데 이 자료는 국내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을 토대로 상하이에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진다. 충북 3.1운동의 통계 작성에 좀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는, 일제 경찰이 그날그날의 만세운동 상황을 상부에 보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1. 충북의 독립운동가 올해는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매우 뜻 깊은 해이다.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의병 발발 120주년이 되며, 일제에게 자주권을 강탈당한 을사조약이 강제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올 한해는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명암을 조명하고 평가하는 논의의 장이 활기를 띨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몇몇 중앙지는 광복 70주년 기획 연재를 시작하여 담론을 생산하고 그 역사적 공과와 시비를 따지고 있다. 다행히 충북지역에서는 충북일보가 그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연재를 기획하였다. 충북의 지역 일간지에서 이처럼 거대한 주제로 장기 연재를 기획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충북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다루기로 하였다. 역사를 읽는 방법 중 인물사를 읽는 것은 무척이나 역동적이고 흥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현대사를 살다간 인물의 궤적을 더듬는 것은, 격동의 순간을 현장처럼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사상, 고뇌와 사색은 우리들에게 미래의 삶의 좌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이
[충북일보] 충북지역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정주를 돕기 위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가 31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개최됐다.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충북도가 주최하고 충북대, 한국연구재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한 이번 박람회에는 외국인 유학생 500여 명이 방문했다. 박람회에는 지역특화형 비자(F-2-R), 전문인력 비자(E-7) 발급이 가능한 △전자, 반도체·기계(현대엘리베이터㈜ 등 16개사)△식품·건강(㈜팜토리 등 10개사) △의약·의료장비(㈜휴온스 등 3개사) △화장품·뷰티(㈜뷰티화장품 등 5개사) △서비스업(㈜체인익스빌 등 2개사) △기타 제조업 (㈜금진 등 10개사) 분야 46개 지역 기업이 참가했다. 유학생들의 지역 기업 상담, 취업 면접 등이 이뤄졌다. 충북경찰청, 충북경제자유구역청, 청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은 외국인 유학생의 생활·취업·정주 등에 필요한 정보와 지원 사업을 안내했다. 구직 중인 유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력서 컨설팅 부스, 증명사진 촬영 부스도 운영됐다.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는 교육부와 중기부가 협업해 외국인 유학생들의 지역 내 기업 취업과
[충북일보] 지난해 겨울 청주시가 운영했던 눈썰매장에서 시설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10여명의 시민들이 부상을 입은 가운데 시가 올해도 눈썰매장 운영을 추진하고 있어 시민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는 동계방학 기간 시민들의 신체·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사고 이후 1년만에 곧바로 눈썰매장을 여는 것을 바라보는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당시 눈썰매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외주업체 관계자들과 담당 공무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민선 8기 청주시가 '꿀잼청주'를 기치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이번 사업은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시는 다음달 대행사 선정을 진행한 뒤 용역을 거쳐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눈썰매장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장소는 생명누리공원으로 정해졌고, 이곳에는 눈썰매장과 눈놀이동산, 편의시설 등이 조성된다. 이 사업에는 모두 2억9천8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무리한 사업 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시는 올해에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둬 아무런 사고가 없도록 만전을
[충북일보] 충북도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중부고속도로 확장 등 도내 내륙지역 교통 인프라 구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과 확장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낙후됐거나 인구감소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30일 도에 따르면 중부내륙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교통망 완성을 위해 중부고속도로 확장, 충북 동부축 고속도로 건설, 제천~영월 고속도로 건설 등을 추진한다. 먼저 '중부고속도로 전구간 확장'은 청주 남이와 경기도 이천 호법을 잇는 구간(78.5㎞)의 4차로를 6차로로 넓히는 사업이다. 구간별로는 남이~서청주, 서청주~증평, 증평~호법이다. 이 중 서청주와 증평 구간은 실시설계 중이다. 나머지 구간은 2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2021~2025년)에 반영된 만큼 추진 가능성이 크다. 증평~호법 구간은 사전타당성조사 시행, 남이~서청주 구간은 반영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도는 이 도로의 교통량이 계속 늘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물동량과 대형 화물차 증가로 차량 지·정체 등 교통 혼잡비용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도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저발전 지역이자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충북일보] "충북에 자리잡은 지 27년입니다. 이젠 충북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오스바이오㈜는 2018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돼 지난 7월 오스바이오 주식회사로 법인 상호명을 변경했다. 농업과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과 특허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기업이다. 오스바이오㈜는 '의미(醫美 : Health & Beauty)'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건강한 먹거리와 메디컬 푸드 식품, 뷰티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일호(50) 오스바이오㈜ 대표이사는 "그간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의 브랜드 컨설팅이나 기획에 많은 참여를 해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오로지 우리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스바이오'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오스바이오㈜는 미나리, 개똥쑥, 싸리나무, 미선나무 등 다양한 천연물 소재를 활용한 화장품, 식품, 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독자 연구소를 갖고 있고, 회사 투자의 중심은 연구쪽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최근 오스바이오가 주력하고 있는 품목은 '비린내를 제거한 생선'과 '대나무 쌀을 활용한 효소 숙성으로 만든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