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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8.25 21:52: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태실이란 왕, 왕자, 공주의 태(胎)를 묻어 둔 곳이다. 임금이 왕자나 공주를 낳으면 길지를 골라 태항아리를 묻고 석물로 치장하였다. 태실의 주인공이 왕으로 즉위하면 주위를 돌난간으로 치장하고 태실비를 세워 격식을 높였다. 태실은 태항아리가 들어가는 태함과 뚜껑인 덮개돌로 구성되는데 서로 이(齒)가 잘 맞도록 설계되었다.

태실은 거의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다. 충북에는 3명의 임금 태실과 2~3기 정도의 왕자 태실이 있다.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에는 영조 태실이 있다. 원래는 태봉산 정상에 있었는데 일제 때 많이 파괴된 데다 도굴범의 소행으로 수난을 겪었다. 태실석은 마을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돌난간도 흩어졌으며 태실비는 전국 곳곳을 돌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가까스로 복원됐다. 보은군 속리면 사내리에 있는 태실도 조선총독부에 의해 훼손되었고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경종 태실도 그런 아픔을 겪었다.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 있는 인성군 태실은 왕으로 등극하지 못한 왕자의 태실이다. 이 태실은 이미 도굴당한 상태로 태함과 덮개돌이 논 밭 뚝에 흩어져있던 것을 1992년 학계에서 찾아내 복원하였다. 태실이 있는 산은 거의가 ‘태봉’으로 불린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 뒷산은 ‘태령산’으로 전해진다.

태실은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이 수난을 당했다. 1928년, 일제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태실을 창경궁으로 옮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제에 의해 태실이 훼손된 것도 분노를 살 만한 일인데 이제는 도굴범까지 가세하여 민족유산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전국에 있는 태실이 거의가 상처를 입었다. 제 모습을 유지하고 태실이 극소수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진천의 한 태실 태함이 도굴범에 의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태봉산 정상에 있는 태실의 태함이 도굴당했다. 마을 주민이 자신의 논에서 태함으로 보이는 석물을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으나 이 태함은 그날 밤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행중 다행으로 주민이 사진을 찍어놓아 태함을 다시 찾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주민이최근 태실 전시회를 개최한 춘천박물관에 의뢰한 결과 이 석물은 “조선시대 태함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이 석물이 태함으로 추정되는 첫째 이유는 우선 마을 뒷산 이름이 ‘태봉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데 있다. ‘태봉산’이란 이름은 태실과 직결되는 것으로 민간에서는 이런 이름을 쓰지 않았다.

두 번째, 석물의 사진으로 보아 단단한 화강암 석질에다 태항아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원형의 구멍을 파놓은 점이다. 외관상으로 태함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여기에다 춘천박물관의 감정도 일치하니 태실의 흔적임이 분명하다. 이 태실이 왕의 태실인지, 왕자나 공주의 태실인지는 외견상 알 수 없으나 난간 석물 등이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왕의 태실은 아닌것 같다.

경찰은 처음에 태실의 도난사건을 논을 훼손시킨 재물손괴로 보았으나 그것으로 끝날 사항이 아니다.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지정문화재이긴 하나 향토사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문화재보호법 차원에서 수사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모름지기 이 태함을 찾아야 어느 왕, 또는 어느 왕자의 태함인지 연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개인의 작은 욕심이 향토사를 얼룩지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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