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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2.12 13:56:57
  • 최종수정2014.02.12 13:56:57

주영서

괴산군청 예산계장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은 있다. 힘들고 고단할 때 안식과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곳, 우암 송시열 선생에게 화양동이 바로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우암 선생은 조선을 통틀어 정치와 학문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로 알려졌다. 선생께서는 1907년(선조 40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1633년(27세)에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였고 1635년에 봉림대군(후일 효종)의 사부로 임명되었으나,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원나라에 볼모로 가는 것에 실망하여, 벼슬에 뜻을 버리고 10여 년간 학문에 몰두하다가, 1649년 효종이 즉위한 후에야 비로소 조정에 나아가 1659년 5월 효종이 급서할 때까지 북벌계획의 중심에 있었다.

비교적 순탄했던 선생의 운명은 효종의 죽음과 함께 영욕을 반복하게 된다. 1660년에 효종의 장지를 잘못 옮겼다는 탄핵 과정에, 현종에 대한 실망감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게 되는데, 이때 선생이 찾은 곳이 화양동이다. 선생은 1666년 8월부터 1688년까지 이곳에서 학문을 도야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에도 당파의 집권과 패퇴에 따라 복권과 실각을 거듭하다가 1689년(83세)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다.

선생은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 이상 등장하고, 전국 23개 서원에서 제향 하였으며, 사후에도 선생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가 움직여지게 되는 등 조선 후기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대정치가이자 사상가이셨다.

화양동에는 선생과 관련된 유적으로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선생이 직접 이름을 붙였다는 화양구곡, 화양동에 계시는 동안 학문을 도야하고 후학을 가르쳤다는 암서재,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제자 권상하 등이 지었다는 화양동서원과 만동묘가 있다.

화양구곡은 제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를 거쳐 제9곡 파천(파곳 또는 파관이라고도 함)에 이르기까지 구곡구간 3㎞가 빼어난 경관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특히 운영담에서 금사담까지 사이는 화양구곡의 백미이다. 경천벽에서 500m를 가면 주자의 시문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왔다는 '운영담(雲影潭)'이 있고, 300m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화양동서원과 만동묘가 있으며, 왼쪽 계곡에는 선생께서 효종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읍궁암이 있고, 다시 100m를 더 가면 계곡에는 금사담이, 맞은편 언덕 위에는 암서재가 있어 300여 년 전 이곳에서 조선을 호령하던 선생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화양동은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에 반한 시인 목객들이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조선 후기 유학과 정치계의 거두 우암 선생이 이곳에 웅거하면서 더욱 유명해져 온 나라의 주목을 받는 명소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또 다시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빼어난 풍광으로 매년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전 국민의 관광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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