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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4.13 19:38: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나석주(1892~1926) 의사는 항해도 개령 출신으로 1926년 인천을 통해 서울에 잠입, 그해 12월 28일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는 등 맹확약을 한다. 나 의사는 이때가 서울 초행으로 서울지리에 어두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큰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단재 신채호의 부인 박자혜(1895∼1943)의 도움이 컸다고 국가보훈처 자료는 밝히고 있다.

신채호는 그의 나이 16살 때 청원 가덕 고드미 마을에서 풍양조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풍양조씨가 이른바 구식 사고를 갖고 있는 반면, 단재는 성균관에 입학하는 등 이미 신학문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첫 아들 '관일'이 우유에 체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단재는 부인 풍양조씨에게 논 5마지기를 주며 "친정에 가 있으라"고 당부한 후 두번 다시 만나지 않고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그후 만난 여인이 박자혜다. 자료를 보면 그녀는 4살 때 입궁한 아기나인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인이었지만 집안이 궁핍하자 호구지책으로 박자혜를 일찍히 궁궐로 들여보냈다.

그런 박자혜는 1910년 한일병합으로 궁내부 소속 고용원, 즉 나인에서 해고 됐고 이후 호구지책으로 조산부 양성소를 다니게 된다. 그녀는 이때부터 조산사의 길을 걷는다. 그녀의 마음에 운동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1운동이었다. 그녀는 병원 옥상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할 목적으로 '간후회'를 조직하려다 일경에 체포·구금됐다.
구금기간을 길지 않았다.그러나 국내에서 활동에 어려움을 느낀 박자혜는 그 길로 중국으로 건너간다. 게서 만난 것이 신채호다. 둘은 15살의 나이를 극복하고 1920년 4월 이회영 부인 이은숙의 중매로 가정을 꾸리게 된다. 당시 단재가 39살, 박자혜는 24살이었다.
1921년에 첫 아들 수범이 태어났다. '독립투쟁'이 직업이었던 단재는 경제적으로는 무능했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자 단재는 부인 박자혜에게 아들을 데리고 국내로 들어갈 것을 권하게 된다. 이때 박자혜는 다시 임신한 상태였으나 경제적 빈곤 때문에 둘째를 잃었다.

국내로 돌아온 박자혜는 전공을 살려 산파소를 차리게 된다. 그러나 생계가 걱정될 정도로 영업이 되지 않았다. 열 달이 가도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오지를 않았다. 자연히 아궁이에 불 때는 날이 한 달 중 사오일에 지나지 않았다.
박자혜는 대련감옥의 단재에게 끼니를 하소연하는 편지를 쓰게 되고, 단재는 이런 내용의 답장을 보내온다. '내 걱정 마시고 부디 수범 형제데리고 잘 지내시며, 정 할 수 없거든 고아원에 보내시오'

그래도 박자혜는 역사책을 보내주며 남편의 석방을 학수고대했다. 1936년 2월 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신채호 뇌일혈로 의식불명, 생명위독'. 신채호는 그해 2월 21일 4시에 운명했다. 3일 후 그의 유해가 서울에 도착하자 홍명희, 신석우 등 충북출신 인사를 포함해 많은 지인들이 경성역에 모였다. 이중 원세훈은 청원 낭성까지 동행했다. 이로부터 6년 후 박자혜는 홀로 셋방에서 살다가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9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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