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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8.16 20:24: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광복 64주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활 주변에는 일제의 잔혹한 상처가 주홍글씨처럼 선명히 남아 있다. 암울한 역사는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기가 힘든 모양이다.

천년고도 청주를 상징하는 길이 1천680m의 청주읍성은 1911년~1914년 사이에 일제에 의해 헐린 이래 복원의 꿈조차 꾸지 못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서원경성(西原京城)의 치소(治所)로 추정되는 청주읍성은 1천년 이상 청주의 수문장으로 자리를 지켜왔건만 일제시대, 시가지 개정이라는 미명아래 헐려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됐다. 최소한 4대문인 청남문(淸南門:남문), 벽인문(闢寅門:동문), 청추문(淸秋門:서문), 현무문(玄武門:북문)만이라도 남아있더라면 천년고도의 역사적 향기를 어렴풋이나마 맡을 수 있을 텐데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의 모습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청주목의 수많은 객사는 다 어디로 가고 청주목 동헌인 청녕각(淸寧閣)만이 외롭게 제 터를 지키고 있다. 충청병영이 있던 중앙공원에는 통군루(統軍樓)를 비롯하여 여러 객사가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충청병마절도사영문(忠淸兵馬節度使營門)과 망선루(望仙樓)만이 남아 있다. 망선루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파천하던 고려 공민왕이 잠시 청주에 머물며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합격자의 방을 써 붙이던 곳이다. 망선루는 원래 구 청주경찰서옆 무덕전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헐어 조선면옥 자리에 건축자재를 쌓아둔 것을 애국지사 김태희가 자재를 거두어 제일교회 안으로 옮겼고 부식이 심해지자 청주시가 원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중앙공원 북쪽으로 이건(移建)한 것이다.

어디 읍성과 관아뿐이랴. 신라 박혁거세 즉위 원년인 BC57년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고, 최장의 돌다리인 남석교(南石橋)는 1930년께 일제에 의해 매몰되어 지금도 육거리 재래시장 지하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남석교 네 귀퉁이에 있던 장식물인 고려견상(高麗犬像)은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그중 한 쌍은 청주대 경내에 있는 용암사에 있는데 천년세월이 흘렀음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다른 한 쌍 중 1기(一基)는 충북대박물관에 있으나 얼굴부위가 많이 파손되어 있고 다른 1기는 행방불명되었다.

고을 동쪽에 있던 성황당도 일제가 없애고 그 자리에 신사를 지었다. 조선시대 고을의 배치에는 동쪽에 성황당과 문묘(향교)를, 서쪽에는 사직단(社稷壇)을 배치하여 국가 차원에서 경영하였는데 일제가 청주의 성황당을 헐고 신사를 지었으니 통탄할 일이다. 지금도 당산(堂山) 동공원엘 가면 신사의 주춧돌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일제는 청주의 중심가를 6구간으로 구분하여 남쪽부터 일정목, 이정목 순으로 불렀는데 다섯 번째가 되는 구간이 오정목이고 중심가는 본정(혼 마치)이다. 광복 후 그 길은 남문로, 북문로 등으로 개명하였으나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오정목이니, 본정통이니 하는 일본식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문화사랑 모임에서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성안길, 방아다리로 개명하여 이제는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일제치하 당시 문화재가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정신세계도 상당히 침탈당하였다. 기실 물리적인 지배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정신세계의 지배에 있다. 광복 64주년을 보내면서 문화재의 복원과 함께 잠시 침탈당했던 우리민족의 정신세계를 다시 곧추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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