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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상여소리…알고보니 연인 홍랑의 발인"

'정헌영해처감록'에 조정철-홍랑 순애보 생생
29년 유배생활 해배되자 제일 먼저 '홍랑의 묘'
사망에 대해서는 고문사·고문후 자살 두 기록

  • 웹출고시간2016.03.28 18:04:42
  • 최종수정2016.03.28 19:53:37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에 위치하고 있는 홍윤애의 묘.

ⓒ 네이버
[충북일보] 충주시가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철(趙貞喆,1751~1831)과 제주도 홍윤애(홍랑, 洪娘)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관광 자원화하기로 했다.

조정철의 묘는 충주시 수안보면 박설고개 좌측(수안보 방향)에 위치, 도로변에서도 볼 수 있으나 진입로가 개설돼 있지 않아 접근은 용이하지 않다.

조정철은 정조대의 정치적인 격동 때문에 바다건너 제주도에서 무려 27년간 옥중 유배생활을 한 인물로, 이때 제주도 의녀 홍윤애를 만났다.

이에 관련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설적인 과장 아니냐'라고 다소의 의구심을 갖고 있으나 모든 이야기는 그가 말년에 기록한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에 담겨져 있다.

조정철의 자전기록인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

1824년(순조 24)에 제작된 책명 '정헌영해처감록'의 '정헌'은 조정철의 호이고, '영해처감록'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하던 당시에 기록하였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형법은 유배생활 중에는 소리내어 독서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때문에 조정철은 무료한 나날을 독서 대신 시작(詩作)에 몰두, 수록된 시가 6백35수에 이르고 있다. 그는 자전기록 《정헌영해처감록》에서 자신을 위해 죽어간 홍윤애를 이렇게 적었다.

'한 명의 어린 기녀로서 면천되어 집에 기거하던 자를 억지로 끌고 와서 나의 적거에 출입한 죄를 씌워 특별히 서까래로 만든 장으로 내리치니 60∼70여 대에 이르자 뼈가 바수어지고 근육이 끊어져 죽었다. 일이 너무도 놀랍고 참혹하여 급하게 한 수의 절구를 쓴다. 신축 윤5월 15일이었다.'

인용문중 신축년은 정조 5년, 즉 1781년을 의미한다. 그후 조정철은 새벽 상여소리를 듣고 그 주인공이 연인 홍윤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정헌영해처감록》에서 '6월 2일 새벽에 상여 소리 듣고서 물어보니 홍랑의 발인이었다. 나 때문에 죽었으니 나도 모르게 가련하고 참담하여 일어나서 절구 한수를 짓는다'라고 기록했다.

그는 26살에 시작된 옥중 유배생활이 기약없이 계속 되자 <옥중사친>(獄中思親)이라는 시에서 '어제 찬바람 불고 눈비가 내렸는데 /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아직도 감옥이네. / 부모님 생각에 천 줄기 눈물 막기 어려워 / 절반은 형구 적셨고 절반쯤은 옷 적셨네.'라고 적었다.

인용문의 형구는 목에 채우는 칼〔枷〕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날은 아버지 조영순(趙榮順, 1725∼1775)의 기일이었다.

조정철은 제주도 27년, 남해도서 2년 등 전체 29년의 유배생활을 한 끝에 초로의 나이에 해배됐고 관직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그는 1811년 제주목사로 임명되자 제일 먼저 홍윤애의 묘를 찾아 '홍의녀지묘(洪義女之墓)' 비를 세우고 비문의 일부를 이렇게 새겼다.

'신축에 간사한 사람이 나를 얽어대기를 의녀로써 미끼를 삼았으나 죽일 기미를 잃게 되자 혈육을 낭자하게 만들었다. 의녀가 "공이 살게 되는 것은 내가 죽는 것에 달려있다"라고 말하며 이에 불복하였고 또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 윤5월 15일이었다. 그 후 31년 만에 내가 은혜를 입어 방어사로 와서 이 지방을 진무하게 되자 묘도를 상설하고 시로써 쓴다.'

비문의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는 전술한 '뼈가 바수어지고 근육이 끊어져 죽었다'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표현이다.

그러나 《정헌영해처감록》의 또 다른 부분에는 '홍랑[이름은 윤애이다]이 모진 고문을 겪어 기절하면서도 입으로는 오히려 원통하다 말을 했다. 앙화의 기색이 점점 다급해지자 목을 매고 자진했다'라는 표현이 있어,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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