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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3.02 17:16: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3 · 1 운동당시에도 충북은 구국의 대열 앞줄에 있었다. 민족대표 33인중 의암 손병희 선생을 비롯하여 6명이 충북출신이다. 전국대비 2%의 경제력에 머물고 있는 충북이 3 · 1 운동 민족대표에 있어서는 무려 18%를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가 충북을 충절의 고장으로 만든 것이다.

민족대표는 아니었지만 청원출신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의 사표(師表)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으며 진천출신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 밀사의 정사(正使)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세계만방에 고발하였다. 제천출신 유인석은 영남의 신돌석과 더불어 의병운동을 주도했다. 낭성출신 소당(素堂) 김제환은 일제치하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하여 단식절사(斷食節死)하였고 번개장군 한봉수는 신출귀몰하면서 일경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외에도 이름 모를 수많은 민초들이 구국을 외치다 죽어갔고 잡혀갔다. 언뜻 보면 굼뜨고 느린 것 같아도 국난이 닥치면 목숨조차 초개같이 던지며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 온 것이 충북 인이다.

충북의 3 · 1운동은 서울에 비해 한 박자 더디게 찾아왔다. 그러나 충북의 3 · 1운동은 4월 초순까지 계속되었고 그 형태는 대개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과 마을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는 형태였다. 청주에서는 기미년 3월7일 쇠전에서 많은 장꾼들이 만세를 불렀다. 전통의 5일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 의병장 출신 한봉수는 서문장터 쇠전입구에서 마차에 올라 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22일에는 천도교인 민원식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펼쳤고 4월1일에는 청주시가에서 40여리 떨어진 산 위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횃불을 올렸다. 4월2일 청주장날에는 독립을 촉구하는 벽보가 수없이 나붙었고 저녁때부터 횃불시위로 번졌다. 청주학생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4월14일 청주지청에서 공판을 받았다. 주동자인 신영호는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0개월을, 오석영은 출판물 위반죄로 징역 5개월을 언도받았고 그 밖의 학생 8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강내면 태성리 산마루에서 점화된 횃불은 강외, 옥산, 남이면으로 번져나갔다. 청주와 조치원에서 출동한 경찰, 현병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횃불은 계속되었고 27일에는 충남 연기군 동면과 경기도까지 파급되었다. 4월1일 밤, 청주의 서쪽하늘이 불바다가 되었는데 이 횃불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조동식이다.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그 아들이 중국 정협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 장군이다.

미원면 등 일부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을 벌이던 군중이 경찰서, 헌병대를 습격하기도 했다. 3월 20일 미원장터에는 1천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였다. 이에 놀란 일 헌병은 태극기를 빼앗고 신경구를 구금하였다. 괴산의 만세운동은 홍명희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동부리 홍명희 고가 사랑채는 당시 태극기를 만들던 곳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옥천에는 마을 주민들이 산 위에 모여 만세를 부르던 속칭 ‘만세당’이 있다.

이처럼 소백 산하에는 3 · 1운동의 흔적이 역력한데도 불구하고 역사의 현장에 기념비 하나 없는 곳이 수두룩하며 구국선열에 대한 현창사업도 상당히 미진한 편이다. 청주 3 · 1 공원에는 민족대표 6인의 동상이 세워졌으나 정춘수의 동상은 친일행적이 불거지며 지난 1996년 시민단체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좌대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충북의 3 · 1운동 재조명 작업과 더불어 현창사업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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