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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8.15 15:50: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올해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 병합한 경술국치 100년과 광복 65주년을 맞았다. 35년 동안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배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겨주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일제는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말살하는 만행과 더불어 2차 대전 당시에는 무려 100만 여명에 달하는 한국인을 징집하여 전장과 탄광 등지에 투입하였고 조선의 꽃다운 처녀를 전장의 강제위안부로 삼는 악행을 저질렀다.

우리고장도 그 악행의 대상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내에는 일제가 남긴 수탈의 흔적들이 널려있고 그 상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좀체로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일제는 청주에서 우리고장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청주읍성을 송두리째 없앴다. 1911년~1914년 사이, 소위 '시가지 개정'이라는 미명아래 청주읍성을 모두 헐어 그 성돌로 하수도를 쌓았다. 읍성을 헐을 당시, 4대문조차도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철거했다. 그래서 읍성을 헐은 자리에는 청남문(남문), 벽인문(동문) 청추문(서문), 현무문(북문) 등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청주문화사랑에서 해 세운 4대문 표석만이 그 무심한 세월과 일제의 만행을 말해주고 있다. 청주읍성 안에 있던 청주목 동헌과 충청병영의 수많은 관아건물, 객사도 대부분 헐렸다. 읍성 안의 공북루, 통군루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딴 곳에서 떠돌던 고려시대의 목조 건축물인 망선루도 제자리에 가까운 중앙공원 북쪽으로 이건하는데 거의 1세기가 걸렸다. 청주목 동헌의 청녕각 현판도 떼어다 충청병마절도사영문의 뒤쪽에 달아 향토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처럼 청주읍성을 흔적도 없이 없앤 것은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전투에서 왜군이 조선의 의병과 승병 등에 의해 패퇴한데 대한 보복적 조치가 아니었나 추정된다.

그것도 모자라 일제는 이천년의 돌다리인 남석교마저 땅 속에 묻었다. 신라 박혁거세 원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고, 최장의 돌다리가 한 순간에 매몰된 것이다. 다리 네 귀퉁이에 있던 고려견상(高麗犬像)은 현재 청주대 박물관에 한 쌍이 있고 다른 한 쌍 중 하나는 충북대박물관에 있다. 이와 짝을 이루는 1기는 실종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당산(堂山)에 있던 성황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신사(神社)를 지었다. 아직도 당산에는 신사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고을 동쪽에는 성황당(城隍堂)을, 서쪽에는 사직단(社稷壇)을 배치하여 국가 차원에 경영케 했는데 이도 일제에 의해 수난을 겪은 것이다.

일제는 청주의 간선도로를 6등분하여 1정목, 2정목 식으로 불렀다. 중심도로를 본정(本町 :혼 마치)이라 했고 다섯 번째 구간을 오정목이라 했는데 아직도 이 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제의 침탈 피해는 비록 물리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데에도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성안길로 바뀐 중심도로와 시내 곳곳에는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고 하는 일본식 건물이 아직도 많다. 도지사 관사 중 일제 때 지은 한 채는 일본식과 서양식을 겸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청주 읍성 축조와 관련이 있는 석부재가 몇 개 있다. 미운 마음 같아선 이런 일제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지만 아픈 역사도 역사이니 그대로 보전하여 극일의 산 교육장이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역사는 그 자체가 교훈이다. 조상이 물려준 내 강토를 물샐 틈 없이 지켜야 함은 물론 민족의 얼과 혼을 잊지 말도록 저마다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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