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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3.01 19:40: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3월은 조국광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선열들의 구국 정신이 달력을 가득 채운 달이다. 3·1 운동이 발생한지 91년이 지났건만 금수강산을 애국충절로 수놓았던 구국열사의 함성은 아직도 3월 하늘을 시퍼렇게 물들이고 있다. 예로부터 충북은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어 왔다. 행동이 굼뜨고 느린 것 같지만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국난극복과 구국 대열에 앞장서 왔다.

경술국치 후 금산군수를 지낸 괴산 사람 홍범식은 이를 통탄하여 뒷산에 올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을 했으며 청원 낭성에 사는 김제환은 일제치하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하여 단식절사(斷食節死)하였다. 을미사변 후 의병전쟁이 발생하였을 때도 충북은 의병 궐기의 중심에 있었다. 제천에서는 유인석이, 청주에서는 한봉수가 분연히 일어나 유격전을 벌이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 당시 전투를 취재한 영국 데일리 메일의 메켄지 가지는 그 참상을 '조선의 비극'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제천에 이르렀을 때는 햇살이 뜨거운 초여름이었다. 제천시내 한 가운데인 아사봉(관아 뒤쪽에 있는 동산)에는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일본 보초의 총검이 선명했다. 말에서 내려 잿더미로 변한 거리로 들어갔다. 이렇게 완전히 파괴된 것을 이전에 본 일이 없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번화했던 거리였는데 지금은 시커먼 잿더미와 타다 남은 것들만이 쌓여있을 따름이었다. 완전한 벽 하나, 기둥 하나, 된장 항아리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제천은 지도 위에서 싹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3·1운동 당시에도 구국의 횃불은 충북 산하를 벌겋게 물들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여섯 분이 충북 사람이고 대표의 수위(首位)인 의암 손병희 선생도 충북 인이다. 경제적으로 충북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 안팎인데 당시 민족대표 구성에는 무려 18%나 차지했다. 일제로부터 조국강산을 되찾자는데 너와 내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충북의 3·1 만세 운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을 이용했고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며 시위를 한 점이 특징이다. 기미년 3월 7일, 의병장 한봉수는 청주 남주동 쇠전에서 마차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괴산에서는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가 주도를 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가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운동을 모의하던 동부리 고가 사랑채는 아직도 남아 있다.

미원에서는 성난 주민이 헌병대를 습격하는 과격 양상을 띠었고 문의, 강내 등지에서는 봉화를 올리며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봉화는 산봉우리로 이어지면서 충남 연기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강내에서는 조동식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그가 중국으로 망명할 당시 데리고 간 아들이 중국 정협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 장군이다. 이에 후예들은 선열의 구국정신을 현창하고 3·1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고 더 나아가 조국통일의 원대한 과업을 수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3·1절이 오면 변변한 사업이나 이렇다 할 행사도 없이 요식적으로 비쭉 기념식만 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다. 3·1절은 그냥 노는 날이 아니라 민족자존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극일의 길을 다짐하는 뜻 깊은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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