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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충주를 '국원성'으로 지칭했을까

국중 이기봉 학예사 분석 시도
통치城 의미…실제 통치자는 안전위해 장미山城 거주
이후 대당항쟁 때는 대림산성, 그 다음 충주산성 축조
대몽항전 거치며 산성 무력함 경험 이후 평지 城 건축

  • 웹출고시간2015.02.02 16:11:48
  • 최종수정2015.02.02 15:13:07

충주 중앙탑면의 장미산성 모습.

고구려가 충주를 점령한 후 지명을 '국원성'(國原城)으로 정한 것에서는 이른바 '통치城'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이때 성(城)은 평지성이 아닌, 산성(山城)이라는 주장이 함께 제기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지난 2012년의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 연구1'에 이어 최근 같은 이름의 제 2권을 고문헌연구총서 일환으로 발간했다.

이번 2권은 1권에서 다루지 못한 청주, 충주, 제천, 옥천, 음성, 진천, 회인, 청산, 청안, 청풍, 황간 등 충북 지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기봉 학예연구사는 이번 총서에서 "통치자가 거주했던 통치성은 안전을 위해 산에 축조했고, 나머지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시설은 산성 아래 위치했다"며 "통치성은 공통적으로 옥수수알 모양의 성돌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학예사는 "고구려가 충주를 점령한 후 정한 국원성이라는 이름은 당시 통치자가 거주했던 공간을 지칭한다"며 "국원성은 지금의 중앙탑면 가흥리의 장미산성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국원성의 또 다른 이름인 미을성(未乙省), 탁장성(託長城), 완장성(·長城) 등에 '城' 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점을 우선 꼽았다.


그는 미을성은 성을 의미하는 '홀'(忽)에서 소리를 취한 경우, 나머지 국원, 완장성 등은 뜻을 취한 것으로 봤다. 그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같은 논리라면 장미산성은 성을 의미하는 '잣'과 산을 뜻하는 '뫼', 즉 '잣뫼'가 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일본 에도시대의 번주성도 평지가 아닌 방어와 조망하기 좋은 장소에 위치한 점도 또다른 방증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고구려에 이어 신라도 상당기간 장미산성(=국원성)을 통치성으로 사용했으나 대당나라 항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주 남쪽인 살미면 일대에 대림산성을 축조했다.

그러나 대림산성은 단기간 피난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면서 지속적인 경영이 어려웠고, 따라서 통일신라 때는 충주 남산일대에 이의 대체용 통치성으로 충주산성을 축조했다고 이 연구사는 밝혔다.

여기까지는 노병식 씨의 충북대 박사학위 논문인 '신라 국원소경과 서원소경의 방어시설 변천'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만 노씨가 충주지역 산성을 방어시설로 본데 비해 이 학예사는 통치성으로 본 점이 다르다.

그러나 충주지역 통치성을 비롯한 전국의 산성은 고려 중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부정되기 시작하면서 평지성이 축조되기 시작했다.

그는 통치성의 퇴조 이유로 △대몽고전을 거치면서 장기전에는 무력함이 입증됐고 △원나라가 산성의 축조·수축을 금지했으며 △왜구 극성기에도 제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이 학예사는 "따라서 지금의 충주시내 평지(중심가)에 자리잡았던 충주읍성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이 강화된 시점에 초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조선 전기의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부터는 오래 된 성의 의미로 고성(古城)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며 "바로 이것들은 삼국~고려시대 존재했으나 폐허로 변한 산성(통치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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