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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한글사랑…소리를 이겨내다

청주 이영미 작가, 어린 나이에 청력 잃은 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평생 한글서에 전념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내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

  • 웹출고시간2014.10.07 20:14:00
  • 최종수정2014.10.08 11:39:38
"한글을 쓰다보면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이 손끝에 절로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천지인의 철학으로 만들어진 자음과 모음의 어울림은 배려와 포용을 드러낸다. 내 붓끝에서 나오는 한글 음운의 획 하나하나가 내게는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로 흐른다."
 

40년 동안 소리의 무無와 싸워온 이영미 한글서예가는 아직도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대신 아름다운 문자 향香에 에워싸인 기쁨을 누리고 있다.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서 평생 한글서예의 길을 걸어온 이영미 작가(55)는 1급 청각장애인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며, 다만 눈으로 상대방의 입모양을 읽어 자신도 듣지 못하는 스스로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영미 작가는 어린 나이에 항생제 과용으로 청력을 잃었다. 글쓰기를 즐겨했던 그녀의 꿈은 국어교사였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었던 한 교사지망생이 임용 최종면접에서 실패하고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한 그녀는 꿈을 접었다. 이어 찾아온 좌절을 극복하게 만든 것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었다.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를 이겨내고 최고의 화가로 우뚝 선 김기창 화백은 그대로 그녀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은 비용이 많이 들어 망설이던 차에 서예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작품 '길'

"서예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16살 때 처음 지도받은 스승의 말이었다. 재능과 좋은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긴 그녀는 돈 안 드는 노력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후, 20년 동안 모든 서체를 섭렵했다.
 

"한문은 관람객들이 뜻을 쉽게 알지 못한다. 그냥 그림처럼 형태만 본다. 하지만 한글은 내 나라 글이니 쉽게 소통된다. 의미도 이해하면서 아름다운 글자의 형태도 즐기는 것이다."
 

작가가 한글서예에 전념하는 이유는 500여 년 전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으니 이에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든다.'는 세종대왕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즉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비록 듣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소리인지 울음인지도 모르면서 강가나 들판에서 무조건 괴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그렇게 발성을 터득하여 이제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실제 작가와 대화를 나누어보니 일반 사람들과 거의 똑같은 속도로 내용을 인지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해 왔을까 하는 것이 이해되었다.
 

그러한 소리 못지않게 한편으로 절실한 마음을 담아냈던 것이 바로 한글서예다. 20년 동안 한글만 써온 작가의 서체는 사람의 얼굴처럼 표정이 생생히 살아 있다. 모음의 획은 나무 기둥으로 굳건히 선 채 팔을 벌려 자음을 잡고 있거나 자음의 획은 지붕이 되어 다른 자음을 포근히 감싸 준다. 글자의 획들은 자연과 사람의 모습으로 움직이며 바라보는 이에게 살갑게 말을 건다. 슬퍼하지 말라고, 여기 내가 너를 든든히 받치고 있다고…….
 

"한글은 '아'라는 글씨 하나에도 남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o'는 자식처럼, 'ㅏ'는 부모처럼 서로 자애롭게 포용하는 관계다. 그러면서도 음운간의 적당한 거리는 공간의 예술적 조형미를 발휘한다."
 

오랫동안 한글을 몸으로 써온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이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박노해 시인의 글이다. 시인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작가가 청주여성장애인상담소를 설립할 비용이 없어 고심할 때, 시인이 작가의 작품 10점을 판매하여 2천5백만 원을 보내줬다. 그 이후, 박노해 시인과 친 남매처럼 지낸다.
 

작가의 한글 사랑은 지적인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고 삶의 실천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주성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성폭력 상담소,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창립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오마이뉴스 객원기자로 시민기자상도 받았다.
 

얼마 전, 작가는 자식 같은 40년 서예작품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자연과 물상들은 만물의 합이 되었다, 다시 만물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처음과 끝이 하나라는 것을 느낀다. 다시 시작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내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작가의 각오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한글 서체에 어떤 변화가 온다 해도 결핍된 사람들을 위무하는 따스한 에너지는 변함없이 흐를 것이라는 점이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이영미 작가는 원광대대학원 서예문화학과를 수료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작품 선정 작가다. 96년 충북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97년 CJB직지세계문자서예대전 대상 수상했다. 현재 대한민국 서예부분 초대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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