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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엔 '銅佛'로 실내 위치, 법주사 미륵불

  • 웹출고시간2014.05.06 15:10:42
  • 최종수정2014.05.06 15:09:45

조혁연대기자

속리산 법주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은 팔상전(국보 제 55호)과 미륵대불이다. 팔상전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목탑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사명대사의 요청으로 1624년(인조 2)에 재건됐다.

조선은 유교가 국시였기 때문에 불교를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탄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란기의 승려들은 호국사상으로 무장, 전국 곳곳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따라서 임진 직후의 조선 조정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불교계의 요청을 일시적으로 수용,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불사(佛事)가 많이 일어났다. 법주사 팔상전도 그런 배경하에 건립됐다.

이에 비해 법주사의 또다른 상징물인 미륵대불은 시간적으로 전통과 현대에 걸쳐 있는 묘한 조형물이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때 진표율사에 의해 동불(銅佛)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흥선대원군 때 경복궁을 건립과는 과정에서 일주문 밖으로 반출, 당백전을 주조하는데 사용됐다.

법주사 미륵대불이 동불이자 실내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17세기 선비 정시한(丁時翰·1625-1707)이 지은 '산중일기'에 잘 드러난다.

"말을 달려올라 가보니, 법주사가 수정봉 아래에 있었다. 지대가 평평하였다. 제3문으로 들어가니 높이가 7,8장쯤 되는 동주가 있었다. 여러 비어 있는 청사를 지나면서 보니 5층 각에는 8상의 부처가 있고 2층각에는 미륵불상이 있는데 높고 우장한 것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바였다.-<산중일기 중에서>

정시한의 기록이 맞다면 조선시대의 법주사 미륵대불은 야외가 아닌 2층 건물 내에 봉안돼 있던 것이 된다. 그리고 인용문에 등장한 '동주'는 사찰입구에 세워지는 '당간'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이후 일제강점기인 1393년 청원출신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시멘트불'이 조성됐으나, 지나친 하중에 따른 균열 등의 위험을 고려해 1987~1990년 청동미륵대불로 교체됐다.

그러나 청동미륵대불은 용접부위가 부식되면서 불상에 얼룩현상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심각했다. 따라서 2000~2002년 총 공사비 12억원의 예산으로 청동 표면에 금박을 입히는 이른바 개금불사가 진행됐다.

이때 순금 80㎏을 총 9백㎡의 겉면적에 0.003㎜ 두께로 금박을 입혔고, 재료가 달라졌기기 때문에 명칭도 청동미륵대불에서 금동미륵대불로 바뀌었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불교사나 건축사가 아닌 경향신문 1964년 6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이 날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동제미륵대불'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반출된 후 1939년까지 약 70년 동안 일대 자리는 허허벌판으로 잡초만 우거졌다. 이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재를 들여 많은 사찰을 건립하던 전북태인 출신의 김수곤 씨가 법주사에 나타났다. 경향신문은 다음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시의 주지 장석상씨는 대원군의 배불정치로 불상이 뜯겨 역사상 큰 오점을 후세에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에 일치, 바로 그 자리에서 김씨의 사재로 미륵불을 더욱 크게 세우기로 했다. 조각의 제일인자로 알려진 김복진씨에 의해 높이 80자의 콘크리트 불상 건립에 착수했다.'-<경향신문 1964년 6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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