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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7.19 20:05: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초기 남지(南智·?~1453)라는 인물이 명나라로부터 '음주자치통감'(音註資治通)이라는 역사책을 갖고 왔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을 주석(註釋), 즉 낱말이나 문장을 쉽게 풀어 쓴 것을 말한다. 4군6진을 개척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남달랐던 세종은 이 책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역사책 한권을 얻고서 사신을 보내어 중국에게 큰 사례를 한다.

'중추원 부사 남궁계(南宮啓)를 보내어 호삼성(胡三省)의 음주자치통감을 내려 준 것을 사례하게 하고,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표문(表文)에 배례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세종실록> 그리고 이때 각종 옷감과 인삼 그리고 오미자 등을 준 것으로 실록은 쓰고 있다.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短命)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그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한다. 이때 당부받은 인물을 이른바 고명대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지는 병을 이유로 사직을 요청한다. 따라서 그의 후임인 정분(?~1454)이 고명대신에 대신 들어간다. 남지의 행동은 칭병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는 풍질(風疾)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좌의정 남지가 사직하면서 아뢰기를, "신은 본시 게으르고 소루하며, 재주 또한 천박하고 쓸모가 없으니, 진실로 의정부에 있기는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 가을부터는 풍질을 앓기 시작하여 정신이 혼모(昏耗)하고 손발이 마비 되었으므로,(…) 한가히 있으면서 병을 치료하여 남은 세월을 보전하게 하소서. 감내할 수 없는 지극한 소원입니다" 하였다'.-<문종실록>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질이 남지의 목숨을 연장해준다. 수양대군 일파는 김종서 부자를 살해한 뒤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을 소집, 사전에 준비한 생살부에 따라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등을 궁궐문에서 죽였다. 이때 생살부를 쥐고 있던 사람이 한명회라고 전회에서 밝힌 바 있다.

또 남지 뒤를 이은 정분을 귀양보냈다가 죽였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친동생인 안평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과 한 패가 되어 왕위를 빼앗으려 하였다'고 거짓으로 단종에게 알려 강화도로 귀양보냈다가 역시 바로 사사했다. 이때 안평대군 아들 우직(友直)도 함께 살해됐다.

우직이 바로 남지의 사위다. 따라서 안평대군은 남지와 사돈간이 된다. 따라서 고명대신 전력까지 있었던 남지는 누구보다도 제거 대상 1순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병 증세를 보이던 풍질이었다. 그러나 문종의 사람이었던 남지는 역시 쓸쓸한 임종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관은 그의 졸기를 쓰지 않았고 시호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의 시호 충간(忠簡)은 40여년 뒤 손자 남흔의 상소로 성사됐다.

'좌의정 남지를 추시(追謚) 하여 충간(忠簡)으로 하였는데, 청렴 방정하고 공정한 것이 충(忠)이고, 평이(平易)하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 간(簡)이다'.-<성종실록> 그의 묘가 우리고장 진천 문백 양천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8대 손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유명한 남구만(南九萬·1629~1711)으로, 지금의 신도비문은 그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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