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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남도(南道)를 방문할 목적으로, 청주상주고속도로를 한 시간 정도 달린 뒤 낙동분기점에서 창원방향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꺾어들어 내처 두 시간 이상을 달리자, 엉덩이가 배기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다음 휴게소에 닿자면 한참을 더 달려야 했으므로 졸음과 지루함을 쫓으려 라디오를 틀었는데 그 시각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한 개그맨이 한창 넉살을 떨고 있었습니다.

"때워요, 때워. 냄비, 숟가락 때웁니다. 밥솥, 때웁니다. 다 때워요. 양은 냄비, 때웁니다. 하지만 못 때우는 게 있어요. 술 먹고 늦게 들어와 마누라가 던진 주걱에 맞아 깨진 앞니는 못 때웁니다. 술 취해 전봇대를 들이박아 깨진 이마는 못 때웁니다. 그 외는 다 때웁니다. 때워요, 때워. 옆집 아줌마끼리 싸워 떨어진 정은 일 분 만에 때웁니다. 양은 냄비, 때웁니다. 칫솔 부러진 것도 때웁니다. 이것도 때우고, 저것도 때우고, 뭐든지 다 때웁니다."

앞부분을 듣지 않아 어떤 연유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이 나라의 방방곡곡에 가난이 깡통처럼 널렸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마을의 골목골목과 고샅고샅을 샅샅이 누비며 고장 난 생활필수품의 재활용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난한 땜장이가 목청 높여 외쳤던 그 소리를, 이 나라의 국민소득이 3만5천 불을 넘긴 이즈음에 라디오를 통해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필경 청자들을 웃기려고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꾸민 이야기가 분명했는데 어쨌거나 땜장이의 광고성 멘트와 삶의 애환을 슬쩍 접목시킨 짤막한 우스갯소리로 인해 졸음과 권태는 한꺼번에 창밖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뒤, 개그맨은 진지함을 찾더니 이번에는 '인생팔미(人生八味)'라는 주제를 가지고 장시간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필자도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인생의 여덟 가지 맛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맛, 즉 일미(一味)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닌, 맛을 느끼기 위해 먹는 '음식의 맛'입니다. 두 번째 맛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직업의 맛'입니다. 세 번째 맛은 남들이 노니까 노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풍류의 맛'입니다. 네 번째 맛은 어쩔 수 없어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관계의 맛'입니다. 다섯 번째 맛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 봉사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봉사의 맛'입니다. 여섯 번째 맛은 하루하루 때우며 사는 인생이 아닌, 늘 무언가를 배우며 자신이 성장해감을 느끼는 '배움의 맛'입니다. 일곱 번째 맛은 육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느끼는 '건강의 맛'입니다. 여덟 번째 맛은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고 완성해 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간의 맛'입니다.

개그맨의 익살을 듣는 사이, 어느 새 휴게소가 모습을 나타내더군요.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거의 모습을 감춰 많은 개그맨이 생계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모양인데 라디오를 통해 접한 그 사람은 끊임없이 소재를 찾으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그처럼 의젓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대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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