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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의미란 생각이 든다. 시력은 침침해지고 노래방에서는 고음 부분 처리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진다. 호기롭게 대여섯 잔을 사양 않던 폭탄주는 한두 잔에 손사래를 치게 된다. 세월은 헛헛하게 흐르고,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가 되었다가, 그마저도 옛 이야기로 남게 된다.'

서강대학교 김동률 교수의 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한때는 직장동료들과 몰려다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거의 매일 끼리끼리 모여 대수롭지도 않은 화제를 가지고 술병이 탁자를 가득 메우도록 늦은 밤까지 갑론을박을 펼쳤지만, 이제는 그때의 그들과 만나게 되면 폭탄주는 고사하고 소주 몇 잔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런 것인가 봅니다. 김동률 교수의 지적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가 되었다가, 더 나이가 들면 그마저도 옛 이야기'로 남기게 되니까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다비드 그로스만'이라는 작가의 동화에 '모든 주름에는 스토리가 있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동화는 할아버지와 귀여운 손자의 대화로 시작해 할아버지의 웃음으로 끝이 납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주름은 어쩌다 생긴 거예요?"

할아버지는 '너도 크면 다 알게 될 거'라는 뻔한 대답 대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주름을 하나씩 꼼꼼히 들여다보며 설명을 합니다.

"어떤 주름은 나이가 들어 생기지. 또 어떤 주름은 사는 동안 일어나는 온갖 행복한 일과 슬픈 일 때문에 생긴단다."

"슬픈 일이라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요?"

"그래, 그때 주름이 참 많이 생겼지. 사랑하는 개 파파야가 죽었을 때도 이 주름이 생겼어."

파파야의 꼬리를 꼭 빼닮은 자신의 턱 주름을 가리키며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기쁠 때도 주름이 생긴단다. 나의 첫 손자,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땐 걷다가도, 자다가도 웃음이 나왔지. 그 웃음이 보조개처럼 입가에 주름으로 바뀐 거란다."

그렇습니다. 주름에도 스토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 필자는 삶터에서 조금 비켜 서 있긴 하지만 자손의 근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으며 주름을 보탭니다. 한창 직장에 매달리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과, 그러한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시간을 쪼개며 바삐 뛰는 손주들에게 아낌없는 성원과 기구, 걱정, 근심을 한 조각씩 보태며 꾸준히 주름을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음주에 고개 숙이고 주름을 얼굴 전체에 친친 감는 것은 숙명입니다. 하지만 부지런히 활동하면 노인의 건강한 뇌는 젊은이의 뇌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각종 제약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죠. 가수 노사연의 노랫말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손에 잡은 것이 많고,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 때문에 온 몸이 아프지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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