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렬 비겁한 감투 전쟁 그만

2020.03.25 16:19:23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필자는 가끔 과거 높은 직위에 있었던 인사들과 자리를 같이 하곤 한다. 전직 총리도 있고 국회의원 장관을 몇 차례 씩 지낸 인사들도 있다.

아무리 높은 직위를 역임했던 인사들도 퇴임하여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그는 평범한 노인일 뿐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과거 높은 직위에 있던 분을 만났다. 재력도 대단했고 대통령 인척으로 잘나가갔던 인사였다. 필자하고는 친분이 두터워 반갑게 인사했으며 종종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세무 삼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그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었다. 승용차도 없던 그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국회의원을 수차례 역임했던 과거의 영화가 한낮 물거품처럼 여겨졌다.

전직 장관을 역임하고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L씨. 현역이었을 때 지역사회 일이라면 필자하고는 허심탄회하게 상의하는 사이였다. 은퇴하고는 일체 연락을 끊더니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났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총총히 헤어졌는데 얼마 후 부고가 날아왔다.

빈소에 조문을 갔을 때 L씨 유가족들은 부의금을 일체 사절한다고 했다. 고인의 유언이었던 것이다. 13평 아파트가 전 재산인 그는 그래도 멋지게 살다 간 풍운아 중의 한 분이었다. 생전에 가끔 만나 가슴에 숨겨 둔 얘길 들었으면 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5공 때 4성 장군으로 예편하여 차기 지도자감으로도 지목되었던 분이 있었다. 그가 몇 해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상가 집에는 그에게 엄청나게 신세를 지었던 인사들이 하나 없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하고 정승이 죽으면 적막이 감돈다는 말이 실감났다. 참으로 허망한 것이 인간사가 아닌가 싶었다.

여러 장관 직을 역임했던 한 분은 만년이 불우했다. IMF 이후 측근들이 모두 부도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재력 있는 고향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끝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 왔다. 상가 빈소에는 과거 비서관들과 고향 지인들의 얼굴이 보였으나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는 영원한 권력이 없고 지나가면 한낱 꿈만 갔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켜 준다.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은 이렇게 다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정치권을 보면 감투싸움에만 모든 것을 건 듯 한 인상이다. 양보가 없고 불리하면 저주하고 싸우며 욕하는 일이 홍수를 이룬다. 국회의원을 지망한 모 인사는 지난날 과오를 잊은 채 두꺼운 얼굴로 나와 무엇을 개혁한다고 목에 힘을 주고 있다. 그릇이 아닌 이들이 교언영색하며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애걸한다.

세상이 다 이런 욕심과 탐관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에 모 지역 군수를 지낸 한 분은 딱 2선만을 하고 용퇴하여 농사꾼으로 돌아갔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방불 하는 그는 벽지에서 이름 없는 농사꾼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 의원들도 현직을 떠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기가 탁한 서울에 있으면서 권력과 선을 대고 이권에 기웃거리며 정치판 브러커가 되는 것은 노욕이다. 누가 존경을 하겠으며 후배들에게도 모범은 아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비례 대표당들이 예비후보를 둘러싼 이전투구가 도를 넘은 것 같다. 국민들이 혀를 차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코로나 19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감투전쟁은 졸렬하고 비겁한 짓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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