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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소백산맥은 월악산 속리산에서 충북과 영남을 갈라놓았다. 영동 금산에서는 금강을 안고 호남으로 선을 긋는다. 숙명적으로 소백산을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나뉜 셈이다.

분수령이란 이런 것을 말한 것인가. 속리산 정상에서 흐른 빗물이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 서쪽으로 향하면 금강이 되며 북으로 흐르면 아리수 즉 한강이 된다.

삼국의 강성여하에 따라 소백산 지역의 주인이 바뀌었다. 고구려가 한창 강할 때는 속리산 밑까지 진을 치고 지금의 경상도 땅 문경을 넘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라가 강해지면서 소백산일대의 주인이 바뀌었다. 고구려는 실지회복을 한다고 남진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숙원은 한강유역인 아차성에서 온달장군의 패전이후에는 끝내 시들고 말았다.

속리산에 대가람 법주사가 있다. 기록을 보면 신라 통일 이전에 세웠다고 한다. 진흥왕 14년 553년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다고 했으니 왕이 낭성(지금의 충주)에서 우륵을 불러 가야금 소리에 취했다는 시기(551년)와 비슷하다.

왜 법주사라고 이름 지었을까. 일설에는 의신스님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불가에서 법은 불·법·승 삼보(三寶)를 지칭하는 것. 통일신라 혜공왕 대에는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상주하면서 더 커졌다.

고려, 조선 시기에는 많은 왕들이 법주사를 찾아 향화를 올렸다. 고려 숙종(1101AD)은 아우 대각국사를 의천을 위해 큰 법회를 베풀었는데 당시 3만 명의 승려들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충렬, 충숙왕도 법주사에 와서 산호전(珊瑚殿)에서 복을 빌었다. 공민왕은 통도사에 신하를 보내 부처의 사리를 옮겨와 법주사에 봉안토록 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법주사 암자에 머물면서 기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법주사와 특별히 인연이 있던 임금은 조선 세조였다. 속리산면 상판리에 정이품송 설화도 남았지만 왕은 복천암(福泉庵)에서 3일 동안 특별한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 절에서 법회를 연 것은 바로 스승 신미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와 신미의 인연은 이미 부왕인 세종 때 부터였다. 신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이었으며 이를 지켜 본 세조는 그 인품을 높이 존경했다. 세조는 피부병에 걸려 고통이 크자 신미에 의존하는 마음이 더했다. 속리산에 거둥한 것은 단종과 많은 신하들을 죽인 속죄의 여정이었으며 그런 세조를 신미는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수많은 시인 명사들이 속리산을 노래했지만 신라 말 문장가 고운 최치원의 시가 와 닿는다. 속리산을 보면서 당시 세속 인심이 법주의 정의를 멀리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바르고 참된 도(道)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 사람은 그 도를 멀리하려 들고 / 산은 속과 떨어지지 않는데 속이 산과 떨어졌다-

한 때는 전국 제일의 관광지였지만 최근에는 법주사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사내리 상가지역도 불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동안 보은군이나 충북도가 창의적인 개발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가 비싸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관람료 때문에 속리산을 찾는 탐방객 상당수가 입장료가 없는 상주 화북 쪽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신이 속리산을 택해 부처를 모신 것은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안주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보은군도 내년에는 신미대사의 위업과 영혼을 일깨우는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고 하지 않는가. 세속이 진정한 도를 외면하는 것을 개탄한 고운의 시를 음미해 봤으면 한다. 법주의 문은 활짝 열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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