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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6.25 15:56:54
  • 최종수정2017.06.25 15:56:54

이재준

역사연구가 칼럼니스트

백사(白沙) 이항복은 조선 선조 때 청백리로 녹선 된 분이다. '오성과 한음'이란 해학 설화로 화자 돼 온 백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임진전쟁 당시 수도 한양이 위험에 빠지자 백사는 앞장서서 선조의 몽진을 인도한다. 궁을 시위하던 군사와 근신들이 도망가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였다.

비가 억수 같은 쏟아지는 밤. 백사는 등을 밝혀 우선 중전과 비빈들을 탈출시킨다. 중전이 등을 든 신하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때 궁녀들은 그가 도승지 이항복이라고 말했다. 중전은 죽을 때 까지 백사의 충성스러움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백사는 선조 옆에서 한 시를 떠나지 않으면서 명나라에 원군 요청과 나중에는 병조판서가 되어 전후 복구에 온 힘을 쏟았다. 역사는 임진전쟁 당시 충무공 이순신, 서애 유성룡 그리고 백사 이항복 세 분을 난국극복의 명신으로 기록 했다.

충무공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 직전에 있을 때 목숨을 내놓고 적극 변호한 장본인이 백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의 애국심과 공정함을 그 누구도 꺾지 못했다. 아! 지금 우리 주변에 백사와 같은 강직한 명재상은 왜 없는 것일까.

임진전쟁 후에도 붕당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알력은 심화되고 권력 투쟁 양상은 치열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조정은 그를 지지했던 세력에 의해 일순간 장악되었다.

이때 광해의 비호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이첨(李爾瞻)이다. 그는 오만하여 타협을 몰랐다. 4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이첨은 간신이란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이첨은 막강한 권력으로 영남 유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과 회재 이언적 까지 문묘에서 출향(黜享)할 것을 강력 주장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광해군의 왕권확립에 저해 요인이 되는 영창대군의 지지 세력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이첨은 인목대비를 폐출하자는 공론을 제기 했다. 권력유지에 대한 집착은 눈이 멀기 마련이다.

이때 백사는 임금이 어머니를 폐위하는 것은 효(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변하며 반대 입장에 섰다. 백사는 이이첨의 미움을 받아 혹독한 겨울날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귀양을 가게 됐다.

광해는 공신에 대한 처벌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측근세력의 전횡을 제어하지 못했다. 백사는 귀양지에서 중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백사의 죽음은 백성들과 선비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데 백사가 그토록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폐모론은 인조반정의 구실을 준 것이다. 반정세력은 광해를 패륜군주로 치부하고 축출했다. 그가 이이첨을 멀리하고 백사 같은 올 곧은 원로의 말을 들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게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인조반정의 주도세력이 바로 백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양심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이첨과 도(道)를 잃은 군왕에 분노한 것이다. 도망을 가던 이이첨은 붙잡혀 참형을 당하고 광해군은 그의 황포를 막지 못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권력은 무상하고 세상인심도 뜬 구름처럼 변하는 것. 지금 문대통령의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측근들의 행태에 우려의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현안에 대한 서툰 대응력, 원칙 없는 논공행상 식 인사, 협치를 외면한 일방통행 처리 등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돌출 되고 있다.

측근들은 문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청백리 이항복 같은 충언과 간언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은 혼란해 빠지며 국민들의 신망을 잃게 된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내년이 바로 백사가 세상을 떠난 지 400주기가 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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