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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1.01 15:40:15
  • 최종수정2020.01.01 15:40:15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이옥봉(李玉峯)은 조선 선조 때 여류시인으로 옥천 출신이다. 허난설헌 황진이와 더불어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녀의 '몽혼(夢魂)'은 남편을 그리는 간절함을 담은 최고의 명시다.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떻게 지내셨나요 / 달빛이 내려앉은 창가엔 그리움이 가득 합니다 /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될 것입니다.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한 한시 연구가는 이 시를 최고의 명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왜 옥봉은 이처럼 슬프고 간절한 시를 썼을까. 그녀는 허난설헌이나 황진이 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옥천군수 이봉(李逢)의 서녀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송나라 시인 소동파를 공부했다. 그녀는 당대의 촉망되는 사대부 조원(호 雲江. 趙瑗)의 첩이 되었는데 모함을 받은 백성들의 신원을 위해 씨를 쓴 것이 화근이 되어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남편의 집근처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남편의 마음이 돌아설 것을 바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임진전쟁의 와중에서 죽었다는 설과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 조난되어 죽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실학자였던 이수광의 문집에 그녀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승지 조희일(조원의 아들)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물음에 조희일이 부친이라 대답하니, 원로대신은 서가에서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 한 권을 꺼내보였다. 조희일은 깜짝 놀랐다. 이옥봉은 아버지 조원의 소실로 생사를 모른 지 40여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40년 전쯤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벗겨 냈더니 바깥쪽 종이는 백지였으나 안쪽의 종이에는 빽빽이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읽어 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자신이 거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시는 당대에도 칭송을 받았다. 인조 때 명신 신흠(申欽)은 '청창연담'에서 '근래 규수의 작품으로는 옥봉 이씨의 것이 제일이다. 고금의 시인 가운데 이렇게 표현한 이는 아직 없었다'고 했다. 허균은 '맑고 장엄하여 아녀자의 연약한 분위기가 없다'고 평했다.

그녀의 시는 중국에서 더 유명했다. '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 등 중국의 시집에 그녀의 시가 수록되어 전해진다. 부군이었던 조원의 문집인 가림세고(嘉林世稿)에는 옥봉의 시가 32수 실려 있다.

국문학계에서 옥봉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도 정작 그녀의 고향인 옥천에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강원도 삼척군은 그녀가 놀던 곳을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으며 영월군은 그녀가 장릉((莊陵.단종)을 지나며 쓴 '영월도중(寧越道中)' 시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최근 민간에서 찾아진 옥봉 육필시 제2의 '몽혼(夢魂)'은 그녀가 공부했던 소동파 시집의 맨 끝장에 있으며 결혼 초 괴산현감으로 부임한 남편을 그리며 쓴 시다. 처음 발견 된 옥봉의 친필이다.

옥천은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 아닌가. 다른 곳에 조선최고의 여류시인 옥봉을 빼앗기지 말고 새해는 그녀가 태어난 옥천에서 문학관 건립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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