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 함우석 주필의 청주천리(3)

청주의 산 따라 물 따라

  • 웹출고시간2023.08.13 16:26:10
  • 최종수정2023.08.13 16:26:10

<글 싣는 순서>

1,우암산
2,상당산
3,구녀산
4,낙가산·것대산
5,선도산·선두산
6,양성산·작두산
7,부모산
8,미동산
9,목령산
10,동림산
11,은적산
12,옥화구곡
ⓒ 함우석주필
온 세상이 기지개를 켜는 이른 아침이다. 계절은 고왔던 꽃잎 대신 진한 초록이다. 숲길을 오르다 보면 구녀산성을 만난다. 햇살이 내린 초정 들녘이 푸르스름하다. 확연히 눈에 띄는 아름다운 산은 아니다. 산책에 가까운 걷기가 가능한 숲길이다. 훅 덮쳐오는 풀 냄새와 나무 향기가 좋다. 편한 행복감이 뇌와 근육을 타고 번진다.
[충북일보] 잠시나마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쉼표를 찍고 싶다. 어느 나무 그늘 아래서 졸고 싶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떠돌고 싶다. 길을 만든 역사의 군상들과도 만나고 싶다. 길은 산속의 인대다. 봉우리와 능선을 잇는다. 청주의 산길과 물길 12곳을 선정해 둘러보기로 한다. 청주의 산길 물길 나들이다. 그곳에는 훌륭한 문화가치가 산재해 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길 앞에 무엇이 돌출할지 모른다. 산과 숲, 물에 숨은 속살을 글과 사진으로 엿보려 한다.

구녀산성 이정표

ⓒ 함우석주필
3,구녀산(九女山 502m)

상당산성 밖으로 나오자 야생의 산이다. 대신 걸음이 아주 편안해 지는 숲길이다. 호흡이 편안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다. 낮이 고요하니 그늘진 숲이 더 적막하다. 점점 더 넓어진 그늘이 온 산에 스며든다. 서늘한 나무 아래까지 살포시 스며든다. 상당산성 옛길을 따라 고즈넉이 예쁘다.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이티봉 가는 길에 이정표가 여러 개 있다. 빽빽한 숲에선 물박달나무가 이정표다. 안둥뱅이의 번개 맞은 느티나무도 있다. 산신령마냥 지키고 서서 고개를 지킨다. 거대한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뒷면은 번개를 맞아 속이 타서 비어 있다. 그럼에도 남은 줄기로 초록 잎을 틔운다. 자연의 이정표를 따라 이티재에 닿는다.

햇살이 내린 초정 들녘이 푸르스름하다. 온 세상이 기지개를 켜는 이른 아침이다. 초정행궁에선 특산물 판매를 시작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활발발이 묻어난다. 이티재에서 구녀산을 높이 올려다본다. 그 옛날 웅장하던 산성은 오간 데가 없다. 돌탑 몇 개만이 마을 뒷산 길목을 지킨다. 계절은 고왔던 꽃잎 대신 진한 초록이다.

구녀산은 옛날부터 음기가 강한 산이다. 무속인들이 찾는 굿판장소로 유명하다. 구녀산 가는 산길의 시작은 정해져 있다. 이티재에서 구녀산으로 가는 길이 쉽다. 이티재는 옛길로 미원과 초정을 잇는다. 한남금북정맥에서 아주 중요한 고개다. 시원한 샘물로 갈증을 달래는 휴식처다. 숲길을 오르다 보면 구녀산성을 만난다.

초정영천(원탕) 누각

ⓒ 함우석주필
이티재라는 말의 유래가 너무 재미있다. 고개를 넘을 때 이틀에 걸쳐 넘는 재다. 이틀재가 다시 이티재로 변음된 거란다. 유래를 뒤고 하고 구년산길로 올라선다. 길은 잘 정비돼 편안하고 푹신하고 넓다. 길의 오름과 내림도 그리 심하지 않다. 30여분 만에 구녀산 정상에 다다른다. 다소 으스스한 전설이 귓가로 전해진다.

능선 위에 길게 누운 소가 눈에 들어온다. 순한 소의 등허리처럼 완만하게 보인다. 이티재 아래서 위로 바라보면 쉽게 안다. 구녀산의 높이는 무려 484m에 이른다. 청주에는 500m가 넘는 산이 거의 없다. 청주 진산으로 불리는 우암산은 343m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아주 높은 산이다. 절대로 만만하게 볼 낮은 동산이 아니다.

이티재가 예전과 달리 한가한 모습이다. 하지만 주차장 뒤로 풀 빌라가 즐비하다. 산행은 건물 우측으로 돌아가 시작한다. 구녀산이 보이는데 너무 가까이 보인다. 산길은 여전히 넓고 보기 좋게 열려 있다. 산길로 접어드니 운동시설들이 놓여있다. 구녀성 가는 길 이정표도 곳곳에 서 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녀산성 내 쉼터

ⓒ 함우석주필
입추를 거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햇살과 구름은 여전히 여름이다. 더위를 실어와 산객들에게 살짝 나눈다. 구녀산 녹음 속 순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은 언덕까지 순하고 순하게 이어진다. 시원한 숲속의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한다. 진녹색의 잎 넓은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길과 산, 숲이 평범한 삶을 아름답게 한다.

초입부터 산정까지 산길이 참 유순하다. 중간 중간 좀 가파른 오르막 구간이 있다. 힘들지는 않아 다리쉼할 정도는 아니다.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걷기에 적당하다. 바위가 거의 없는 육산으로 숲이 예쁘다. 나무가 울창해 산길 분위기가 편안하다. 찾는 이도 많지 않아 깨끗하고 조용하다. 덩굴 무성한 숲 사이로 걷는 재미가 크다.

구녀성 가는 길에 짙은 녹음이 피어난다. 장마 뒤의 높은 습도에도 청량한 숲이다. 아직 덜 붐비고 덜 유명해 아주 더 좋다. 한적한 비 접촉 걷기 길로 최고 공간이다. 산책하듯 가볍게 발을 내딛으며 걷는다. 적요한 숲에서 뒷짐 지고 홀로 걷는다. 최고의 자연에서 누리는 자연의 호사다. 여여한 스님의 포행을 흉내 내어 본다.

능선 따라 마루금이 유장한 녹색을 띤다. 푸르른 솔숲이 그늘로 뒤덮여 아늑하다. 나무마다 온통 짙어져 스스로 눈에 띈다. 시든 것 없이 모두 싱싱해 한동안 즐겁다. 이른 아침 홀로 걷기 딱 좋은 숲속길이다. 수많은 역사적 시간을 품고 길게 흐른다. 구녀성 가는 길이 삶의 목적성을 가르친다. 한순간 일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게 한다.

구녀산성 성돌

ⓒ 함우석주필
구녀산 숲속 경관이 가끔씩 신령스럽다. 지나는 여름 색이 수묵담채화처럼 곱다. 눈부신 하늘에 파란 꿈이 저절로 빛난다. 언제 봐도 시원한 녹색의 산수풍경이다. 활력 넘치는 숲속의 생명이 느껴져 좋다. 푸르디푸른 청춘을 닮은 새들이 예쁘다. 몰려온 허기를 물리치고 다시 일어선다. 털고 일어나 스틱을 챙겨 길을 이어간다.

가까운 구녀성이 멀리 구름 속에 숨는다.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산중턱 신선한 공기에 코끝이 상쾌하다. 다시 땅에 배낭을 내려놓고 몸을 식힌다. 땀범벅 불덩이가 그늘에 식어 시원하다. 오래 머물지 않고 구녀산 정상으로 간다. 눈부신 진녹색 그림자가 물결로 퍼진다. 색 농도가 하도 짙어 옷을 물들이려한다.

고갯마루 우측으로 산성 흔적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조그만 돌탑도 하나 있다. 구녀산성은 거의 허물어져 찾기 어렵다. 손질해 깎아 만든 반듯한 바위가 아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포개어 올린 산성이다. 꼼꼼하게 안 보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성의 흔적을 따라 가본 능선은 흐릿하다. 붉은 육질을 한 소나무가 자리를 잡는다.

여전히 햇빛 막아주는 울창한 숲길이다. 성내의 고개 마루 운동기구들이 반긴다. 구녀산성 유래를 적어놓은 간판이 있다. 아들 하나와 아홉 딸에 대한 슬픈 얘기다. 우측 길을 따라 가면 묘지들이 여러 기다. 파헤쳐진 묘지와 이장한 묘지터도 있다. 전설과 관련된 묘지인지는 알 길이 없다. 돌탑 정상을 지나면 시야가 뻥 트인다.

이티봉 약수터

ⓒ 함우석주필
돌탑에서 한남금북정맥 길이 이어진다. 소나무들이 숲길을 이뤄 제법 근사하다. 숲길에 시원해진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고갯마루에 쓰러진 이정표가 어지럽다. 분저치와 좌구산으로 이동로를 알린다. 숲은 금방이라도 산짐승이 나올 듯 깊다. 파헤쳐지고 아직 마르지 않아 촉촉하다. 정상서 1시간 지나자 분저치에 닿는다.

구녀산 특징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낙엽 길을 사부작사부작 걷기 좋다.·등산로는 순한 소등허리처럼 완만하다. 그렇게 순한 오솔길에 낙엽이 쌓여있다. 해마다 쌓이고 쌓여 길이 폭신폭신하다.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초여름 길마다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린다. 사방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유혹한다.

여름날 길에서 만난 산딸기는 영양제다. 지금은 숲속의 시간이 지나 보기 어렵다. 구녀산 숲엔 산딸기 밭이 넉넉하게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들도 즐비하다. 백 년도 넘어 보이는 고목들은 우람하다. 생김새가 신기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이내 산객을 떨게 하는 전설이 들려온다. 아름다운 산에 깃든 골육상쟁 이야기다.

골육상쟁의 전설보다 무서운 게 또 있다.·산길 도처에 멧돼지의 흔적이 선명하다. 금방 머물다간 온기가 느껴질 때도 있다. 꿀꿀거리는 소리가 멀리 들리기도 한다.·멧돼지의 공격 공포가 상존하는 산이다. 멧돼지 발자국이 여기저기 흔하게 있다. 낙엽위의 까만 똥은 아마도 영역표시다. 헛기침과 종소리로 존재를 알리며 간다.

구녀산 정상 표지석

ⓒ 함우석주필
구녀산은 한남금북정맥의 주능선이다. 초정약수지역이 산 아래에 가까이 있다. 하지만 구녀성과 산길 연결이 좋지 않다. 정상 표지석은 돌무더기에 가려져 있다. 안전한 산행 축원으로 쌓은 서낭당 같다. 노송군락이 멋진데 잡목들이 방해한다. 가시덩굴과 잡목도 많아 걷기 불편하다. 깎고 옮겨 전체를 정비해야 할 것 같다.

확연히 눈에 띄는 아름다운 산은 아니다. 산책에 가까운 걷기가 가능한 숲길이다. 훅 덮쳐오는 풀 냄새와 나무 향기가 좋다. 편한 행복감이 뇌와 근육을 타고 번진다. 슬픈 스토리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 같다. 1남9녀의 슬픈 성 쌓기 경쟁이 스쳐간다. 피눈물 나는 어머니의 사랑이 배어있다.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를 감동시킨다.

여름 한날 아홉 딸이 죽은 산은 차분하다. 솔숲은 슬픔보다는 위로의 기운이 짙다. 잘생긴 소나무가 지난 아픔을 잊게 한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무더위를 식혀 준다. 상큼한 솔향기가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산 속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갑다. 편한 흙길과 완만한 오르막이 편안하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다시 얼굴을 만진다.

정자에서 숨을 돌리며 주변을 살펴본다. 삶을 반추하며 오늘 해를 가슴에 품는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