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고습재와 가곡(佳谷)

2023.06.28 17:17:46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단양읍에서 신단양의 상징인 고수대교를 건너 고수재를 굽이굽이 넘어가면 가곡에 이르게 된다. 예전에는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절벽 위의 고갯길이었지만 오늘날은 59번 지방도가 개통되어 삼봉대교를 건너 도담터널을 지나 하덕천대교를 건너면 바로 가곡에 이르게 된다.

고수대교를 건너서 고수재를 올라가지 말고 직진하면 바로 고수동굴이 나오는데 이 지역의 행정구역이 대강면 고수리에서 단양읍 고수리로 바뀌었다. 그러면 '고수리, 고수재, 고수동굴'이라는 지명에 나타나는 '고수'는 한자로 '고수(古藪)'로 표기하는데 어떤 의미로 만들어진 말일까?

고수동굴은 원래 '금마굴, 까치굴, 박쥐굴, 고습굴'이라 불리어 왔는데 '고수동굴'이라는 명칭은 아마도 '고습굴'에서 유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수재'를 주민들은 '고습재'라 부르고 있는데 '고수'라는 말은 '고습'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습'을 '숲'으로 보아 '수(藪)'라 했을 것이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도 '고수리(高樹里)'가 있는데 고수부지(高水敷地)를 행정 명칭으로 표기하면서 숲을 형성하였다는 뜻으로 아름답게 쓰기 위해서 고수(高樹)라고 한자를 바꾸었다고 전해지지만 숲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예전에 '고습'이라는 음이 지역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습'이란 무슨 의미일까?

두 지역의 지형과 이러한 지형을 묘사하기 위하여 지명에 쓰이는 고어를 살펴볼 때 '고습'은 '곶솝(곶의 안쪽)'이 '고솝, 고습'으로 변이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솝'은 '속(안쪽)'의 고어로서 이 지역의 자연지명에 '안고습(내고습)'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솝'이 '습'으로 변이되어 그 의미를 잃자 같은 의미인 '안(內)'를 중첩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더욱이 고수동굴은 '산의 속에 뚫린 굴'이기에 당연히 '곶솝굴(산줄기의 속에 있는 굴)'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수재(고습재)는 '솔고개, 송현(松峴)'이라고도 부르는데 소나무가 많은 고개라는 의미와는 전혀 연관이 없고 다만 '솔'이 '작다, 가늘다'라는 의미의 고어이기에 '오솔길'처럼 '좁고 험한 고갯길'이라는 의미로 여러 지역의 지명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수동굴(고습굴) 위에 있는 고수재(고습재)를 넘어 가곡(佳谷)으로 가 보자.

가곡(佳谷)은 본래 영춘군의 지역으로서 가야골의 이름을 따서 가야면(佳野面, 加也面)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곡면(大谷面)의 사평(沙坪), 대대(大大), 어의곡(於衣谷)의 3개 리와 군내면(郡內面)의 보발리(寶發里)를 병합하여 가야(佳野)와 대곡(大谷)의 이름을 따서 가곡면(佳谷面)이라 하였는데 1931년 차의곡면(車衣谷面)의 향산리(香山里)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가곡(佳谷)도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의미와 이미지이므로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옛 기록에 보면 '가야'라는 나라 이름을 '가라, 가량, 가락'이라고도 표기했으며, 고어의 '갈라진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하듯이 '가래산, 가래실, 가래들' 등 지명에서 많이 쓰이는 '가래'가 여러 지역에서 한자로 '가야'로 표기된 지역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가야골'이라는 자연지명도 인근에 '가래산, 고내골, 가야나루' 등의 자연지명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갈라진 지형으로 인하여 생긴 이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곡에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옛 우리말을 간직하고 있는 자연지명들이 많다.

예전에 행정명으로 쓰이던 '차의곡면(車衣谷面)'이라는 지명은 '수릿골'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며 '어의곡(於衣谷)'은 '엉어실'을 표기한 것이다. '엉어'라는 고어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웃덩어실'에서 '덩어'로 소리나는 것은 아마도 '웃(ŸL)'에서 연음된 소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소백산 등산의 시발점으로 유명한 '새밭'은 언뜻 듣기에 '새가 날아다니는 밭'의 의미로 들리지만 '새로 된 마을'이란 의미라고 하며 이두식 한자로 '을전(乙田)'이라 표기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 여천(麗川)라는 마을도 한자로는 '곱고 아름다운 냇물'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원래의 지명은 물이 말라서 늘 말라 있으므로 '여우내(여윈 내)' 또는 '건천(乾川)'이라 했는데 교활한 이미지의 '여우'가 연상되고, 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물이 항상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천(麗川)'으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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