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배고개와 배다리

2024.06.12 14:49:52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배고개'라는 지명이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보은군 내북면 용수리에 있고,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는 '배티고개'가 있으며 괴산읍 대덕리의 '뱃골'은 한자로 '이곡(梨谷)'이라 표기하는 등 지명에서의 '배'는 주로 '배(梨)'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배'라는 지명 요소는 '배고개, 배티고개, 배여울, 배바우, 뱃골, 뱃들' 등 여러 지명에 존재하는데 '배'의 동음이의어가 '배(舟), 배(腹), 배(梨)'처럼 많다 보니 언어유희에 의한 민간 어원설이 다양하게 만들어져 지명의 뿌리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 지명의 예에서 보면 '배'라는 지명 요소는 '배+명사(지형의 종류)'의 구조로서 지명의 앞부분에 위치하여 어떠한 지형의 형상을 수식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으므로 '배'를 '배(舟, 腹, 梨)'로 보는 것은 언어의 구조나 의미로 보아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배다리'라는 지명은 보은군 보은읍 월송리의 '배다리'를 비롯하여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충남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 충남 부여군 석성면 비당리, 경북 김천시 감천면 광기리 등 전국에 많이 분포하는데 '다리'를 '물길을 건너는 다리(橋)'로 해석하면서 '배'를 자연스럽게 '배(舟)'의 의미로 본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시대(1045년)에 이미 임진강에 배다리를 설치했던 일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연산군이 청계산에 수렵을 가기 위해 민선 800척을 동원하여 한강에 다리를 놓은 적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화성에 옮겨놓고 자주 능행을 다녔는데 왕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지 않는다고 하여 그때마다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했다. 배다리를 설치할 때는 주로 관선이 동원되었지만 상선과 개인 배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부역으로 동원되었다. 배다리를 만드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주교사(舟橋司)라고 하는 관청을 별도로 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배다리를 만드는 일이 나라의 큰 행사로 빈번하게 행해지면서 '배다리'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통용되다 보니 유사한 음을 가진 '배달, 배들'이라는 지명을 '배다리'로 변이시켜 '배다리'의 의미로 해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명에서의 '배'는 본래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일까.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과 인의동에 있었던 '배오개'는 예전에 숲이 울창해 짐승과 도깨비가 많아 '도깨비고개'라고 불렸는데, 이 고개를 대낮에도 넘기 힘들어 백 명은 모여야 넘을 고개라 하여 '배고개, 백고개, 백재'라고 불리다가 음이 변하여 '배오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에서는 '배바우(舟岩)' 인근의 골짜기를 '배골, 백골'이라고 부른다. 또한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梨坪里)의 '뱃골'은 '백골(梨洞, 梨谷), 백골재, 배티재, 배티고개'로 불리는 등 '배'가 '백'과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이 쓰인 지명을 찾아보니 '백고개'라는 지명이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충남 부여군 장암면 지토리, 경북 의성군 구천면 소호리, 광주시 도척면 궁평리,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외사리, 경북 안동시 남선면 신흥리 등 셀 수 없이 많으며, '백골(白谷, 栢谷)'이라는 지명이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보은군 내북면 화전리,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괴산군 괴산읍 대덕리, 괴산군 칠성면 사평리 등 충북에만도 다수 분포되어 있고 전국의 지명에서는 셀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이처럼 지명에서 '배'와 '백'이 혼용되는데 '배'보다 '백'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배'를 '백'에서 변이된 말로 본다면 '크다, 높다'는 의미의 고어인 '백, 박'이 지형의 형상을 묘사하는 수식어로서 '배고개, 배티고개'는 '높은 고개', '배골, 뱃골, 백골'은 '큰 골짜기 또는 큰 마을', '배여울'은 '큰 여울', '뱃들, 배다리'는 '크고 넓은 들'의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의 배여울을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여울이라 하여 함티여울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배'가 '크다'의 의미에서 온 말임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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