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인 옛 단양의 풍수를 보면 뒤로(북쪽) 남한강이 흐르고 앞으로(남쪽) 큰 산인 두악산이 가로 막고 있어 배산임수의 지형이 아니므로 도시 형성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다만 삼국이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이 잦은 국경 지역으로서 적성산은 천혜의 요새이기에 일찍부터 적성산성을 중심으로 나라를 지키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산성 마을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적성산에 남아있는 신라 적성비는 단양의 이러한 역할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군사 도시인 단양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로 봉화대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봉산' 또는 '봉화대'라 부르는 산은 단성면 중방리에 있는 해발 443.9m의 산으로 강변에 우뚝 솟아서 '높은 산'이라는 의미의 '수리산'이라 불리어 왔으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라 하여 동쪽으로 경상도 풍기군 죽령, 서쪽으로 청풍군 오현봉수(吾峴烽燧)에 응하였다고 한다.
단양의 진산 역할을 한 것은 아무래도 두악산(斗岳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악산은 단양의 남쪽에 있어서 '남산(南山)'이라 불리어 왔으며, 산의 지형이 불의 형상이어서 단양 읍내에 불이 많이 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하여 읍내 북쪽에 큰 못을 파고 두악산 봉우리에 소금 항아리를 묻었다 하여 '소금무지산'으로도 불린다.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이 목욕 재계를 한 후 한강물과 소금을 이 항아리에 넣고 지성껏 빌면 아이를 낳는다 하여 매년 정월에는 수많은 부인들이 다투어가며 이 산을 올라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두악산 줄기가 남한강으로 뻗어가면서 적성산을 이루는데 그 안부를 넘는 고개를 놋재라 부른다. 놋재는 옛 단양(단성면)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험한 고개이므로 예전에 늙은 호랑이가 출몰한다고 하여 '노호재(老虎재)'라 불렸다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지만 이것은 유사한 음을 가지고 유추하여 만들어낸 민간어원설로 추정이 되며 한자로는 '노티(路峙), 노현(路峴)'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의미를 잃게 되자 민간 어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놋재'는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일까?
놋재는 단양에서 올라갈 때는 경사가 급하지만 북하리 방향으로 내려갈 때는 경사가 완만하여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고개를 나타내는 지명은 '말티고개, 박달재, 감우재, 갱고개, 고모령' 등에서처럼 고개의 크기를 묘사하거나 '늘재, 느릅재, 노루목' 등에서처럼 고개의 험한 정도나 경사 정도를 묘사하게 되므로 놋재는 '느르재, 느릿재, 늘재'가 '놋재'로 변이된 것으로 그 어원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단양에서 놋재를 넘어가면 북하리라는 마을에 이르게 된다. 북하리는 본래 단양군 읍내면의 지역으로서 뒷들의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뒷뜰, 하북평(下北坪)'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북하리라 해서 봉화면(단양면)에 편입되었다.
북하리는 옛 단양에서 바라보면 두악산과 함께 남쪽이요 앞쪽이 되지만 지형상 단양에서 고개 넘어에 있기에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감당해야 했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죽령천을 '뒷내, 북천(北川)'이라 불러온 것을 보면 단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명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명은 '뒷들(北坪)'이지만 죽령을 넘어서 한양으로 가는 길손들이 굳이 놋재를 넘어 단양을 들렀다가 되돌아올 필요가 없으므로 이곳이 단양을 대신하는 길목 역할을 하였다. 옛 단양 기차역도 북하리 들판에 있었으니 어쩌면 교통으로 보면 단양의 중심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옛 단양읍은 두악산 아래 산줄기의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가 적은데 비하여 이곳 북하리에는 '마들(앞들), 뒷들, 샛들(사이들)' 등과 같은 자연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넓은 들판이 있어 단양의 곡창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단양역'이라는 이름의 기차역이 신단양으로 이전하고 마을 위의 하늘을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었으니 세월이 무상하기만 하다. 불이 잘 나던 마을이 이제 호수가 되어 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져 소금무지산(두악산)의 항아리에는 이제 더 이상 소금이 필요없게 되었으니 우리 조상들의 천년의 숨결이 머물던 아름다운 기억들과 흔적을 차곡차곡 모아서 소금 대신 묻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