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지명은 기록에 의해서 전해지기에 한자로 표기되며, 국가 정책의 변화나 왕조의 교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지명은 주민의 구전(口傳)에 의하여 전해지기에 세월의 흐름에 따르는 언어의 변화와 와전 등으로 많은 변이를 겪게 마련이다. 옷을 자주 입으면 닳고 헤지듯이 지명은 주민들이 생활에서 늘 사용하기에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뀔 수 밖에 없다. 특히 한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귀에 들리는 음에 따라 제각기 연상되는 이미지를 언어유희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말로써 전해가기 때문에 원래의 의미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와같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민간어원설에 따른 지명 유래는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유희의 방법으로 유사한 음을 가진 다른 말로 교체하거나 꿈과 소망, 선호하는 내용과 억지로 결부짓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명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언어학적인 언어 변이, 그리고 유사한 지형에 나타나는 유사한 지명의 변화 과정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요구된다.
그런데 민간어원이나 언어유희에 의한 지명 유래가 너무나 그럴듯하게 꾸며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확고하게 뿌리 박혀서 이를 깨기가 어려운 때도 많다. 우리말에서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민간어원설에 의한 유래를 예로 들어 볼 수가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과 평양이 함락되고 선조 임금도 의주로 피난을 가자 온 백성들은 나라를 잃는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권율장군의 군사가 행주산성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과 싸울 때 주민들도 모두 합세하였다. 이 때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허리에 두르고 돌멩이를 담아 날라서 석전을 함으로써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하여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참으로 감격적인 일화이므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으니 어느 누가 사실로 믿지 않겠는가? 하지만 행주대첩이 있었던 1593년보다 66년이나 이전인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문헌에 '행ᄌᆞ쵸마'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쓰이던 말인데 '행주산성'이라는 지명과 '행ᄌᆞ쵸마'의 음의 유사성과 역사적인 사건, 국가에 대한 충성심, 애국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실로 인식하게끔 성화(聖化)시킨 것이다.
또한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황새말'은 지금은 황새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우리 땅에 황새가 많았으므로 '이 마을에 황새가 많이 날아와 앉아서 황새가 많은 마을이라는 의미로 황새말이라 이름지었다'는 민간어원설에 의한 지명 유래를 의심의 여지도 없이 받아들여 왔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황새'는 '황(黃)새'가 아니라 우리말 고어에 '크다'는 의미의 '하다'가 쓰인 '큰 새'의 의미이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나 와서 앉았다가 날아가는 황새를 우리 마을에만 많이 있다고 하여 지명으로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지형적 특성이나 지명 명명의 유연성을 살펴볼 때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는 의미의 '새말'이 먼저 생겨나고. 이 마을이 점차 큰 마을이 되매 '한(크다)+새말'이 되었다가 음의 유사성과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이미지를 지닌 '황새'와 연관지음으로써 의미는 달라졌지만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 지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 것이다.
지명에서 언어유희에 의해 변이가 많이 이루어지는 지명 요소 중의 하나는 '다리'일 것이다. 원래 고어에서 '산(山)'이라는 의미의 '달'과 '들(野, 坪)'이라는 의미의 '들. 드르, 다리'가 지명에서 '달동네, 다락골, 달기머리, 달기봉, 계족산, 계명산, 달맞이고개, 달래강, 배다리, 널다리, 광교(廣橋), 판교(板橋), 다릿재, 박달재' 등으로 변이되는 것을 보면 언어 유희에 의한 지명 변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와같이 언어의 의미적 근거가 없이 단순한 음의 유사성에 따른 언어 유희에 의하여 변이되는 지명들의 민간 어원설에 의한 지명 유래를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여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주치마의 어원에 대한 유래는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나라를 지키려는 굳센 의지는 우리 조상들이 남겨주는 귀한 유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