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벌의 전성기는 연초제조창으로 인하여 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안덕벌에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새벽부터 소달구지와 경운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잎담배를 수매하기 위하여 충북 각지에서 이곳 안덕벌로 모여 들었던 것이다. 순대국집에서 모여 앉아 걸쭉한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농부들이 수매가 끝나면 묵직한 돈다발을 품에 안고 방아다리 근처의 고급 주점을 찾아 젓가락 두들겨 가며 힘겨운 한해 농사일의 피로를 풀곤 했다.
잎담배는 그야말로 충북인의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담배 농사는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계속된다. 비닐하우스에 씨앗을 뿌린 뒤 애지중지 싹을 키우고, 쟁기질로 밭을 간 뒤 어린 묘를 심었다. 자라는 동안 여러 차례 밭을 매고, 풀을 뽑고, 담배잎을 갉아먹는 굼벵이처럼 생긴 벌레를 손가락으로 비벼서 죽이는 작업도 수시로 해주어야 한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담배잎을 따다가 새끼줄에 꼬여 건조실로 들어가고 밤을 새우며 며칠 동안 석탄불을 지펴 가마 안을 가열시켜야 하는데 여기에서 담뱃잎의 등급이 달라지게 된다. 마치 어느 도공이 장작가마에 도자기를 넣고 자신의 모든 혼과 열정을 다해 불을 때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가마에 불을 지피는 동안은 꼼짝달싹할 수 없다. 한눈 팔다가 불꽃이라도 꺼지는 날이면 일 년 농사가 말짱 헛것이 된다. 이 잎을 서너 달 동안 적당한 습도에 숙성시킨 뒤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밤을 지새가며 정겨운 수다와 따뜻한 손길로 다듬어져야 비로소 수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저녁나절의 안덕벌은 골목마다 연탄불에 삼겹살 구워 먹고 순대국을 안주삼아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던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은 연초제조창의 노동자들이었는데 한 때는 이곳의 노동자가 3천여 명에 달했으니 안덕벌 일대 식당가는 연일 문전성시였으며, 인근에 선술집이 100여개나 될 정도로 흥겨운 동네였다. 공장 굴뚝에서는 연일 담배연기를 내뿜어 날이 궂은 날이면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으나 이것 때문에 먹고 살기에 불평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연초제조창은 1946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 연초제조창 건물을 지어 청주 지역 근대화 산업의 상징 역할을 해 왔는데 산업 환경의 변화로 58년만인 2004년에 생산을 중단하게 되면서 안덕벌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생기가 넘치고 삶의 희망이었던 청주 시민의 추억을 간직한 장소인데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채 몇 년이 흘러가자 건물이 파손되고 시설물이 망가져 흉물처럼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폐시설을 철거하지 말고 그대로 재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추진하게 되었다. 1999년도에 시작된 청주공예비엔날레가 2011년 제7회 행사를 옛 연초제조창에서 개최하게 되면서부터 문화제조창으로의 변모가 시작되었으며 이곳에 청주문화산업단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서게 되니 그야말로 안덕벌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안덕벌 삶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안덕벌의 설화와 역사적 사건들을 국악, 미술, 연극, 문학의 장르로 표현함으로써 안덕벌의 과거와 6·25전쟁으로 인하여 겪은 안덕벌의 아픈 역사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안덕벌 떼과부'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보도연맹 사건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다. 당시 군경은 좌익분자들을 처분한다며 내덕동에서 민간인 153명을 학살했는데 이 가운데 안덕벌 주민이 50여명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졸지에 과부가 된 여인들이 콩나물과 두부를 만들어 내다 팔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고 해서 '안덕벌 떼과부'라는 속담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러한 슬픈 역사를 지닌 안덕벌이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나 이제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2018년 시작된 '안덕벌 삶 이야기'는 '안덕벌의 탄생'을 시작으로 '안덕벌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음악극으로 공연하였고, 2019년에는 '엄마와 콩나물'을, 2020년에는 세 번째 무대인 '남겨진 이들의 노래'가 안덕벌 동네예술가들이 참여하여 국악극으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충북의 산업화를 선도하던 안덕벌은 산업 환경과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이후 이들 기업들이 하나씩 사라지게 되면서 안덕벌도 한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졌었는데 이제는 충북의 문화 중심지로서 힘찬 부활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