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갱고개와 갱기들

2022.06.22 15:59:08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충주 교현동의 향교말에서 시누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갱고개'라 불렀는데 지금은 교현동에서 연수동으로 이어지는 '갱고개로'라는 도로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어서 어디가 갱고개였는지 찾아보기가 어려울 뿐아니라 갱고개의 의미도 알기가 어렵다. 일부 주민들은 '갱고개'가 아니라 날씨가 갠다는 의미의 '갠고개'이며 해가 잘 비치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 고개라서 '갠고개'라 했으므로 한자로는 '청현(晴峴)'이라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근거는 옛 기록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원통리와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갱고개'라는 지명이 있는데 고개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죽전리의 '갱치'라는 지명은 한자로 개영치(開榮置)로 표기하고 있으며, 보은군 보은읍 노티리와 충남 아산시 초사동의 '갱치'라는 지명도 '갱고개'와 같은 의미로 역시 고개 이름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고개를 수식하고 있는 '갱'의 의미는 무엇일까?

'갱'이 쓰인 지명이 많지 않아서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려우므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고유어 중에서 '갱'자가 쓰인 말을 찾아보니 '갱엿'이 언뜻 생각이 났다.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갱엿'이란 '검붉은 빛깔의 엿'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갱엿이 검고, 딱딱하고 끈끈해 먹기가 어려우므로 길게 늘이는 동작을 반복해 하얗고 먹기 좋은 엿으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갱엿'은 '강엿'에서 온 말이며 '강엿'은 '검은 엿'의 사투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명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는 '크다'는 의미의 '감, 검'과 같은 뿌리를 지닌 말이 아닌가?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가마솥이라는 순우리말에 '크다'라는 의미의 '가마'라는 말이 남아 있다. '가마'는 '크다'는 의미이므로 지명에서 '가마, 감, 곰, 금, 고모, 감우, 개미' 등으로 많은 변이를 거치면서 지형의 형태를 수식하는 지명 요소로 매우 빈번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특히 고개이름에 쓰인 예를 보면 음성읍 소여리의 '감우재'를 비롯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모령,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의 고모치 또는 고모령, 고미재, 경북 청도군 매전면 운산리의 곰티재 등이 모두 '큰고개'의 의미인 것이다.

'검은엿'이 '감엿 → 강엿 → 갱엿'으로 변이하는 과정으로 보아 '감고개→강고개→갱고개'의 변이 과정을 유추해 볼 때 이 변이 과정에 남아 있는 지명을 찾아보면 '감고개'는 부산광역시 가야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개발로 사라졌지만 '감고개공원'으로 그 이름이 살아남았으며, '강고개'는 충남 청양군 정산면 와촌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등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갱고개'의 '갱'을 '크다'는 의미로 본다면 지명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된 지명요소이므로 지명으로서의 유연성이 크고 설득력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런데 '갱'이라는 지명요소가 사용된 지명에 '갱기들'이 있다.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의 '갱기들'을 비롯해 옥천군 청산면 장위리,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능국리,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 충남 아산시 신창면 가내리,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상림리, 경남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등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갱기'란 무슨 의미일까?

보은군 마로면 수문리의 감지고개를 비롯해 보은군 삼승면 천남리 감지둑들,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의 '강지들', 경북 의성군 비안면 화신리의 '가마지' ,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의 '감지들',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와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의 '갱지들'과 같은 지명을 볼 때 '갱'은 '크다'는 의미의 '가마, 감'에서 변이된 것임을 알 수가 있으며 '기, 지'는 '마지기,마직이(한말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땅)', '한섬지기, 한섬직이(한섬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땅)'에서 '농사짓는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가 있으며, 그 의미를 점차 잃어가게 되자 비슷한 의미인 '들(농사 짓는 땅)'과 중복해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갱고개는 '큰고개'의 의미로, '갱기들'은 '감지기들, 가마지기들'로 보아 '농사짓는 큰 들'의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