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버니'라는 마을이 있는데 자연지명으로 보기에는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떤 말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본대리는 본래 충주군 법왕면의 지역인데 고종 광무 10년(1906)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리(本里), 응대리(鷹岱里), 후평리(後坪里)와 금목면 장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본리와 응대의 이름을 따서 본대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응대리(鷹岱里)는 자연 지명인 '매터골'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며, 후평리(後坪里)는 자연지명 '뒤뜰'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본리(本里)'는 자연 지명 '버니'를 한자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한자어로 '본리(本里)'라 표기한 것을 구전으로 전해지다 보니 발음하기 쉽도록 '버니'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리(本里)'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이름일까?
금왕읍 본대리의 '본리(本里)'는 충주군 법왕면의 면소재지였던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면(面)이라는 행정구역을 정하면서 면의 행정관서가 있는 마을 즉 면소재지인 마을을 가리켜 '면의 근본이 되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본리(本里)'라는 행정명을 만들었다. 따라서 '본리(本里)'라는 지명에는 예로부터 불리어오던 유래가 있을 리 없으며, 고유의 마을 이름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리(本里)'로 불리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유의 이름을 잃어버렸으며, 일제에 의하여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면의 행정 중심지가 바뀌면서 '본리(本里)'라는 이름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니 '본리(本里)'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지역이 많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금왕읍 도청리의 '쇠누골'이라는 마을도 옛 금목면(金目面)의 면소재지로서 한때 '본리(本里)'라 불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음성군 대소면은 1914년 일제에 의한 군면 폐합에 따라 충주군의 대조곡면(大鳥谷面)과 충주군의 소탄면(所呑面)이 합해진 곳인데 소탄면(所呑面)의 면소재지 마을도 '본리(本里)'라 했다고 전해진다.
충주시 대소원면의 '본리'는 본래 충주군 이안면(利安面)의 지역으로서 자연지명이 '이안'이었는데 이안면의 면소재지가 되면서 '본리(本里)'라 하였으며, 1914년 군면폐합시에 독동, 당저리, 노옥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리'라 하면서 '본리'라는 이름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보면 충남 당진시 순성면의 본리, 경북 예천군 호명면의 본리, 대구광역시 달서구의 본동 들이 면소재지로서 '본리(本里)'라는 이름을 명명하였던 지역으로서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예라고 하겠다.
원래 '본(本)'이란 '본인(本人), 본교(本校), 본국(本國)' 등에서처럼 나를 중심으로 하는 무언가를 가라키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지명에서 나타나는 '본리(本里)'는 조선시대에 '면(面)'이라는 행정구역을 획정하면서 '본마을'이라는 의미로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의 행정명을 일률적으로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자연지명으로 전해오는 지명에서는 지명요소로서 '본(本)'의 예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본리(本里)'로서가 아니고 '본(本)'이라는 요소가 다른 말과 함께 지명요소로 쓰이는 예가 있다면 금왕읍의 '본대리(本岱里)'의 예에서처럼 합성지명에 나타나게 되므로 이 때의 '본(本)'은 '본리(本里)'에서 온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금왕읍 본대리의 '버니'가 '본리(本里)'에서 온 말이고 '본리(本里)'는 법왕면의 면소재지의 의미로 지어진 말이라면 이 지역에 신설된 대금고등학교의 교명 작명 과정에 이러한 역사성을 반영하지 못한 데 대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원래 대소면과 금왕읍의 경계지역에 세워진 학교라서 대소금왕고등학교라 했다가 대금고등학교로 변경했지만 바람직한 교명이란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전통, 교육적 의미 등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법왕면 면소재지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서 '대왕고등학교'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