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지명의 중요성

2023.01.25 16:52:09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충북의 지명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충북 지역의 지명에 대하여 기고해온 것이 이제 10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우리 조상들이 남겨놓은 귀중한 언어 유산이요, 조상들의 삶의 과정과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지명 유산이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지명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한편 조상님들께 대한 죄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안간힘을 써 왔다.

지명의 연구는 우리보다 일본이 먼저 시작했으며 학문적으로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 옴으로써 독립된 학문으로까지 체계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지명으로 인하여 그들의 북방 영토를 러시아에 빼앗긴 쓰라린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오래전부터 영토 귀속문제로 분쟁이 계속되어 온 땅이 바로 사할린이다. '사할린'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사람들이 아무르(Amur)강 동쪽 땅을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원래부터 고유한 러시아어가 아니라 아무르강 하류에 살아가는 소수 원주민들이 아무르강을 일컫던 '마무(mamu)'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르강은 선사시대부터 원주민들이 살아가던 터전이었고 각 민족과 부족마다 강을 부르는 고유한 이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만주족은 아무르강을 '검은 강'이라는 뜻의 '사할리얀 울라(sahaliyan ula)'라고 불렀고 중국에서는 만주어 뜻과 비슷한 흑룡강(黑龍江)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흑룡강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붙인 한자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 몽골인들도 검은 강이라는 뜻의 '카하라 무렌(khara muren)'이라고 부르는 등 검은색이 공통적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 나라의 한강, 압록강, 청천강 등을 가리키던 옛말이 '아리수'인데 '아리'는 '물'의 의미이므로 '물'을 중복하여 씀으로써 '큰 물'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아무르'란 '아(물)+무르(물)'로 볼 수 있다니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지명에 많이 있는 '검다'는 의미는 '크다'는 의미의 '금, 검, 감, 곰'의 의역적 표기로서 '금강, 금산, 감골(감나무골), 가막산(감악산), 거문거리, 곰나루(고마나루), 거문도' 등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사할린을 일본에서는 '북에조' 또는 '가라후토'라 불러왔는데 '북에조'란 에조의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북쪽 지방은 대륙의 문화를 수입하는 통로가 되었으므로 한국이나 중국 또는 외국을 의미하는 발달한 문명을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가라'라고 하였는데 아이누어로 '카무이 카라 푸토 야 모시르'라 하므로 이를 따서 가라후토(からふと)라 불렀으며 한자로는 '樺太(화태)'로 표기하였다.

1875년 러시아와 일본이 사할린-가라후토에 관한 국경 협상을 하였는데 이때 일본 정부의 대표는 '가라후토'가 당연히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러시아는 '사할린'이 러시아 영토라 주장하여 설전이 계속되었다. 이때 러시아 대표가 "일본은 이 섬을 무엇이라 부르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일본 대표가 '가라후토섬'이라 부른다고 답변하였다. 그런데 러시아 대표는 이미 '가라후토'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므로, 일본대표에게 '가라'라는 말은 귀국에서 한국이나 외국을 뜻하는 것이니, 가라후토는 곧 '한국사람의 섬'이나 '외국 사람의 섬'을 뜻하므로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였다. 일본 대표는 이 점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였으나 논리에 밀려 러시아의 압박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지시마(千島)는 일본 말이므로 지시마(쿠릴)열도는 전부 일본 땅이요, 가라후토는 어차피 일본 땅이 아니니 러시아 영토로 하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로 인하여 일본은 사할린(가라후토)을 지명 때문에 러시아에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이 러시아와 영토문제로 담판할 때 처음부터 '북에조'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가라후토'라는 이름을 사용한 탓에 일본 북방 영토의 귀속에 관하여 그 운명이 갈라지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일제는 지명에 대한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겪고 나서, 조선을 영원히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조선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고 지명을 마음대로 개명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니 우리는 훼손된 지명의 시급한 원상 회복과 잊혀진 유래를 찾는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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