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말이 소보다 헤엄을 두 배나 잘 치지만 홍수에 떠밀리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의미이다. 말은 자신이 헤엄을 잘 치는 것을 믿고 강한 물살을 이기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다가 지쳐서 죽지만 소는 절대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그냥 물살에 몸을 맡기고 같이 떠내려가다가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게 되면 마침내 엉금엉금 살아 걸어 나오는 것이다. 거스르지 말고 순리(順理)를 따르는 것이 삶의 지혜임을 알려주는 말인 것이다.
우리말 '소'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계림유사》(12세기)에 기록된 "牛曰燒(去聲)"이다. 한글로는 훈민정음해례(1446)에 '쇼爲牛'란 기록이 있다. 이것이 19세기 음운 변화로 인해 '소'가 되어 지금에 이른다.
소는 오랜 옛날부터 짐을 나르거나 밭을 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가축이었다. 아니 가축이라기 보다는 사람과 같이 한 가족이요, 집안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그 이미지도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리 조상들이 언제나 소와 함께 살아왔기에 우리 주변의 지형지물을 가리키는 지명에도 소와 연관된 이름들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청주 지역에서만 보더라도 청주의 우암산(와우산)을 비롯하여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의 쇠태고개, 상당구 가덕면 국전리의 소목골(牛項),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의 우산과 쇠머리, 청원구 오창읍 각리,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의 '소죽골',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의 소매밭골(소가 앉아 있는 모양의 골짜기), 상당구 미원면 어암리의 '쇠바우(小岩)', 상당구 미원면 용곡리의 '소눈골(소가 누운 형국)', 상당구 남일면 두산리의 '소터골, 소징이', 서원구 남이면 양촌리의 '소바위', 상당구 문의면 구룡리의 '소토골(소의 형국)', 상당구 문의면 남계리의 쇠죽골(소가 죽었던 곳), 상당구 문의면 마구리의 '황소밭때기', 상당구 문의면 산덕리의 '황소배', 상당구 문의면 상장리의 '소목골(牛項谷)',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의 '소먹이고개' 등 소와 관련된 지명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지명에서 '소(牛)'는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서울시 성북구의 우이동(牛耳洞)은 도봉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 소의 귀같이 보이는 봉우리인 쇠귀봉(牛耳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에 가면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하는 소섬 즉 우도(牛島)가 있으며, ·애월읍에 소길리(牛路里)가 있는데 옛 이름은 '쉐질(소길)'이며, 소가 걸었던 길을 의미하고 현재 올레길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쉐질을 걷는 코스를 선호하고 있다.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에는 '쇠머리(牛頭)'라는 마을이 있는데 전국에 같은 이름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전남 고흥군 영남면의 '우두마을(쇠머리)'을 비롯하여 충남 부여군 은산면 내지리,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전남 영암군 시종면 금지리의 '쇠머리',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의 '쇠머리산',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장흥리의 '쇠머리음달골', 전남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의 '쇠머리들',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의 '쇠머리들'을 들 수가 있다.
그런데 '쇠머리'라는 이름을 한자로 '우두(牛頭)'라 표기하지만 '소의 머리'의 의미가 아니라 '솟아있는 마루'라는 의미로서 낮은 언덕처럼 솟아있는 지형에 있는 마을을 '쇠머리'라고 불렀다. 이와같이 지명에서 '소'나 '우(牛)'는 솟아있는 지형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에 '쇠머리오름'이라는 산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우도'라는 지명은 소가 누워있는 모양에서 온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지역에서도 일반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쇠머리' 라는 지명이 이곳에 먼저 생기면서 이를 바탕으로 섬의 이름도 우도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주시 애월읍의 '쉐질(소길)'이 '소가 걸었던 길'이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짐을 운반하거나 밭을 갈기 위해 소가 늘 길을 가기 때문에 소가 걸어갔다고 하여 '소길'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은 글자에 따라 지어낸 말일 것으로 생각되며, '소길' 역시 '다른 길보다 솟아 있는 지형에 있는 길'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