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무진장과 장생고

2022.06.08 16:26:59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장승배기라는 지명과 관련해 장승의 어원을 찾다 보니 '장생고'는 '무진장'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것을 표현할 때 '무진장 많다'라는 표현을 한다. 여기서 '무진장'은 '다함이 없다 또는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며 '아주, 대단히, 엄청나게'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무진장이라는 낱말은 '다함이 없다'는 의미의 '무진(無盡)'과 '창고'라는 의미의 '장(藏)'이라는 말로 구성되어 있다. '무진장(無盡藏)'은 원래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서 '끝이 없이 넓은 덕, 또는 닦고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님의 법의(法義)'를 가리키는 말이다. 빈곤한 중생을 돕는 것을 불교에서 '무진장'을 실천한다고 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慈悲)를 베푸는 것이 바로 무진장인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무진장은 자비 사상의 실천적 행위이며 결국 보시(布施)가 되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대승불교의 발달과 함께 불교의 발전과 포교를 위해 신도가 희사한 시주와 보시금을 자본금으로 해 돈을 적립하고 그 적립금을 이용해 이자를 늘려 사용하는 제도가 성행하자 중국 당나라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무진을 실천한다'하고 자본금을 적립한 곳을 '무진장'이라 불렀다. 무진이라는 것은 일정한 전곡(錢穀)을 본으로 해 그것을 대여해주고 거기서 이자를 얻는 경제행위였다. 그 수입은 반드시 불전공의(佛前供義), 가람보수(伽藍補修), 병자와 빈자의 구제사업에 쓰도록 되어 있었지만 점차 사찰의 영리사업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그 자본은 포시(布施)에 의한 자본에다가 사찰 소유의 재산, 그리고 민간기탁의 자본을 더해 합자(合資)에 의한 경영 규모의 확대를 가져와 대규모화되었으며 그 자본품도 곡물이외에 '전(錢), 견, 면, 금, 은 등'으로 확대돼 오늘날의 대규모 금융기관을 방불케 됐다. 더욱이 권력층과 부유층은 물론 서원까지도 가세해 장생고(長生庫)라는 이름으로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장생고는 불법과 함께 고려로 전파됐다.

고려 시대의 불교는 군신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뭉쳐 사회를 통합시키고, 재난과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호국 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으며 고려 초기부터 국가의 정책적 보호를 받으며 크게 발달했다. 왕실에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엄청난 사전(寺田)과 노비를 사찰에 하사했으며 귀족들도 승려의 막강한 힘에 의지하기 위해 많은 보시(布施)를 하는 등 사찰은 왕실과 귀족의 적극적 보호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재화를 모으게 됐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사찰의 남아도는 돈을 자본으로 해 일반 백성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사찰 자체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장생고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장생고에 저장된 자본을 장생전(長生錢)이라 했다. 즉 사전(寺田)에서 수확된 소득을 자본으로 해 이자 발생의 원칙에 의해서 민간경제의 융통을 기하는 동시에 사원 자체의 유지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으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차츰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부(富)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변질돼 갔다. 심지어는 사속(寺屬)의 노비를 생산수단으로 부리는 동시에 자본의 주체인 곡물을 가공하여 판매까지 행하게 됨에 따라 국가에서 여러 번 금지령을 내렸으나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장생고는 처음에는 불법의 전파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받아들였으나 고려 중기 이후부터 불교계 권력이 너무 강해지고 사찰이 세속화하면서 장생고 본래 뜻과는 달리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후에는 사원 외에도 왕실과 귀족이 각각 장생고를 개설하기에 이르렀으며 불교는 점점 부패하게 되고 백성들의 삶은 어려워졌으며 나라 전체의 경제까지 병들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말 유생들이 불교를 배척하게 되면서 결국 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재물이 힘과 권력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재물과 권력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무진장과 장생고를 통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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