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수시로 변화되는데 어학적으로 본다면 언어의 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언어의 변이는 지명의 변이와는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즉 언어의 변화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휘의 의미가 변하고 상실되면서 저절로 변해가는데 비해서 지명의 변화는 좋은 의미를 가진 말로 변이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의도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고 하겠다.
언어의 변이는 주로 유사한 소리값을 가진 말로 변이해 가기 때문에 일정한 언어학적 법칙이 존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언어의 변화 과정을 거꾸로 재구하기가 비교적 쉬우며, 언어는 자의성(恣意性)과 사회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개인이 의도적으로 바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명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명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바꾸고자 하는 지명의 전설, 유래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면 합리화가 가능하며, 이러한 변이는 지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경우 의도하지 아니한 이름으로 변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명의 변화는 주민이 의도한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민들이 좋아하는 의미를 가진 지명, 즉 보다 나은 지명으로 변이해 가는 특성으로 본다면 지명의 변화는 변이라고 하기 보다는 진화라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적합할 것이다.
예를 들어본다면 산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들판으로 벋어 있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벋은 내'라는 지명은 내(川)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이 지역에 생기는 마을도 '버드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버드내'는 버드나무를 연상하게 되어 한자로 '유천리(柳川里)'로 진화한다.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전북 부안군 보안면, 전남 담양군 창평면, 전남 신안군 자은면, 전남 함평군 신광면, 전남 화순군 동복면, 전남 화순군 화순읍, 경남 사천시 사남면 등지에 '유천리(柳川里)'라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으며, '내'가 아니고 '마을'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천(川)'을 '촌(村)'으로 바꾸어 '유촌리(柳村里)'로 진화한 지역이 충북 금왕읍 유촌리라고 하겠다. 이렇게 보면 유촌리(柳村里)는 유천리(柳川里)보다 좀더 진화된 지명인 것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의 '호계(虎溪)'는 '범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는 '벋내'가 '범'과 연관지어 '범내'로 진화하고 한자로 표기하여 '호계(虎溪), 호천(虎川)'이 되는 것이다. 청주시 흥덕구의 봉명동에는 '봉명'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근거가 되는 '봉계(鳳溪)'라는 지명이 있었고 자연지명으로 '범골'이라 했다고 전해지는데, '벋내'가 '범내, 봉내'로 진화하여 한자로 '봉계(鳳溪)'로 표기하고 '벋골'이 '범골'로 진화하여 한동안 불리어온 것으로 보인다.
지형의 형세를 나타내는 이 '벋(버드)'이라는 지명 요소는 바위와 연결되면 '벋바위'가 되고 '벋바위'는 '범바위'로 진화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충주시의 호암동을 들 수 있겠지만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금지산 정상에 있는 바위도 호암(虎岩)이고 서초구 우면동 뒷산에 있는 바위도 '범바위, 호암(虎岩)'이라 부른다.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동의 호암(虎巖)마을은 호랑이와 연관된 관광 시설물을 만들고 축제를 만들어 유명한 관광지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 지역에는 '범내, 범천, 호계' 등 진화 과정의 흔적들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벋바위'라는 지명의 진화의 압권은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봉황(鳳凰)'으로 진화한 것이라 하겠다.
'벋바위'가 '범바위'로 되는 것은 음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어느 지역에서나 유사한 변화를 하게 된다. 하지만 '범바위'의 음이 '봉바위'에서 '부엉바위'로 진화하면서 전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부엉이바위'가 생겨나고 한자로 '휴암(·岩)'으로 표기하는 지명이 나타나게 되며 '봉바위'는 한자로 '봉암(鳳岩)'으로 표기하면서 결국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새인 상서로운 '봉황(鳳凰)'으로까지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