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과상미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름이 상당히 특이하여 전국의 지명에서 찾아보았으나 같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과상미는 과상뫼라고도 하는데 백봉산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며 이 지역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과상미라는 마을은 도시 개발로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백봉산 동남쪽, 현재 봉명초등학교와 봉명주공아파트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의령 남씨의 세거지로서 남씨촌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 마을의 지명 유래로서 백봉 공원에 있는 유래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 시대 중엽에 보부상(봇짐장수)들이 청주를 향하여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어 이곳 백봉산 아래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밤중 삼경에 이르자 활시위 소리가 들려 사방을 둘러보니 백봉산 중턱에서 다섯명의 무사가 달빛 아래 활을 쏘고 있었다. 무사들은 활쏘기를 마치고 나서 몸을 씻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동녘 하늘에 해가 돋을 무렵 안개가 짙게 깔리자 다섯 무사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부상들은 마치 신선을 본 것 같았다. 이때 안개에 휩싸인 백봉산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두들 중국에 있는 명산인 과상산(果商山)과 같다고 감탄하면서 백봉산을 과상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보부상들은 성문으로 들어가 관청에 이 사실을 고하였는데 관에서도 그 다섯 무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후에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그 다섯 무사들은 개국 공신 남은(南誾)의 후예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상미'라는 지명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까?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음이 변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자 한자로 '과상미(果商山, 果桑山, 果産里)'라 표기하면서 이 둘레가 과일밭이라거나, 과일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고 심지어는 위의 전설처럼 중국의 과상산(果商山)을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국의 지명에서 비슷한 음으로 변이된 지명을 찾아보니 '가상골'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었다.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 만정리의 '가상골'을 비롯하여 경북 군위군 소보면 도산리, 충남 청양군 대치면 상갑리,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음현리, 충남 보령시 청라면 소양리 등에 보이는데 가장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가장골이라 하다가 가상골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골'이라는 지명을 찾아보니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의 가장골을 비롯하여 증평군 증평읍 초중리,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옥천군 청산면 의지리, 단양군 단양읍 장현리, 음성군 생극면 생리, 괴산군 문광면 대명리,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등 충북에 20여 곳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전국의 지명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전남 영광군 군서면 가사리의 가사골은 '가장자리' 마을이라는 뜻으로 '가장골, 가작골, 가상골'로 불리다가 '가사골(加沙)'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의 가동(佳洞)마을은 백제시대에 절 어귀에 있는 마을이라서 가장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가상골이라 부른 것이 '가동(佳洞)'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의 '가장미', 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의 '가정산',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의 '가골', 경남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의 '가골' 들이 모두 가장자리에 있는 위치를 가리키는 지명들로 볼 수가 있으므로 '가장자리'라는 지형적 특성은 지명의 명명 요인으로 유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백봉산(白峰山)'은 원래 '백봉산(栢峰山)'으로서 '잣봉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잣'은 '산'의 옛말로서 '잣봉'이란 '산봉우리'라는 의미이므로, 해발 95m의 낮은 봉우리인 '잣봉'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로 쓰였다면 주민들은 그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이 산의 이름을 지어서 부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형으로 보아 인근에 있는, 백제고분군이 있는 명심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에 있는 작은 봉우리로서 '가장자리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가상미'로 부르다가 한자로 과상미로 표기하면서 다른 의미의 유래가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