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자연 지명과 행정 지명

2023.02.08 15:12:35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지명의 생성은 주로 지형의 형태에 따라 만들어지는 자연 지명으로 시작이 되는데 역사적인 큰 사건의 현장인 경우 그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지명들은 듣기만 해도 그 이미지와 의미가 떠오르지만 세월이 흘러 언어가 변화하면서 그 의미를 알 수가 없게 되고 담겨 있는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변이가 시작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변하다 보면 그 지명의 의미와 이미지가 전혀 엉뚱하게 변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두식 표기를 활용해 자연지명의 음과 훈이 전해지는 일도 있지만 자연 지명의 음을 버리고 의미만을 가지고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에는 원래의 음을 잃게 되고, 변이된 자연지명을 가지고 한자로 표기하게 되면 그 지명의 유래와 어원을 찾는데 커다란 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자연지명의 경우에는 고어와 지역 사투리 등을 기반으로 그 지역의 지형과 주변의 자연지명들을 살펴보거나, 비슷한 지형을 지닌 다른 지역의 지명과, 다른 지역의 비슷한 지명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 어원을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행정지명들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글자를 붙이거나, 행정 편의에 따라 관리들이 임의로 지명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지역의 고유한 의미나 이미지가 사라지거나 다른 이미지가 생겨나서 부르기에 어색한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삼국통일 이후에 신라는 통일 후 넓혀진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수도인 서라벌을 모방하여 만든 5소경(小京, 국원소경, 북원소경, 금관소경, 서원소경, 남원소경)과 전국을 9주(양주, 강주, 상주, 명주, 무주, 전주, 웅주, 한주, 삭주)로 나누었다. 문무왕은 중앙정치 체제 확립에 관심이 많았으며 경덕왕은 새로운 관직을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래서 경덕왕은 주·군·현의 명칭과 관호를 모두 중국식으로 개명하는데 있어 순수한 우리말로 이루어진 자연 지명을 속되다 생각하여 아무 기준도 없이 무분별하게 한자로 바꾸면서 많은 우리 고유의 지명들이 사라지게 됐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행정편의에 의한 만들어진 청주지역의 행정지명을 예로 들어본다면 '남일면(南一面), 남이면(南二面), 북일면(北一面), 북이면(北二面), 동주내면(東州內面), 서주내면(西州內面), 남주내면(南州內面), 북주내면(北州內面), 산외일면(山外一面), 산외이면(山外二面), 산내일면(山內一面),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 서강내일면(西江內一面), 서강내이면(西江內二面), 서강외일면(西江外一面), 서강외이면(西江外二面)' 등을 보면 청주 읍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東西南北), 상하(上下)의 방향과, 숫자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지명은 더욱 심하여 '본정1, 2, 3, 4, 5, 6정목(本町 1, 2, 3, 4, 5, 6丁目), 욱정 1, 2, 3 정목(旭町 1, 2, 3 丁目)'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지명들은 마치 지리적 위치를 경도와 위도로 표기하거나, 교도소에서 죄수를 죄수 번호로 부르는 것처럼 구분하는 역할만 할 뿐 지역적 특성이나 지형적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못한다.

또한 합성지명의 방법은 통합한 두 지역의 지명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드는 방법으로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일부 지역에 한해서 마땅히 통합지명을 만들기가 어려운 경우에 한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은 전국을 한꺼번에 대규모로 통폐합하면서 일률적으로 합성지명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지명들의 우리말 음이나 또는 한자 훈(訓)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이미지나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은 외래어를 받아들여 중국어로 만들 때 '코카콜라 → 可口可樂, 펩시콜라 → 百事可樂, 햄버거 → 漢堡 , 초콜릿 → 巧克力, 맥도날드→ 麥當勞' 등의 예에서처럼 그 음과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만든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다.

지명의 어원과 뿌리를 찾다가 벽에 부딪히면 우리의 조상님들이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음과 의미를 보존하기 위하여 좀더 고민하고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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