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지산리에 '태봉산'이 있고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에는 '태봉말'이라는 마을이 있다. '태봉'이라는 지명이 의외로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모두가 '태봉(胎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지명이 생겨나게 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의 '태봉'을 비롯하여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경북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경북 상주시 함창읍 태봉리, 충남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충남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경기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전북 정읍시 상평동 등에 '태봉'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태봉산'이라는 지명도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경기도 화성시 송동,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태봉산'이란 지명이 있다.
이와같이 '태봉'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나 '태봉산'은 주로 경기도에 있고 충청권에 일부 있는 것으로 보아 '태봉(胎封)'과 '태봉(胎峯)', '태봉산(胎峰山)'은 의미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태봉의 성격을 알아야 구분이 될 것이다.
왕실에서는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그 태를 소중하게 취급해 전국에서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안태한다. 처음 태실을 정해 태를 봉안할 때는 태실에 대한 장식이 호화롭지 않으나, 왕으로 즉위하는 해에 태봉으로 봉해지게 되는데 태봉은 태실 내부와 외부의 장식이 달라진다. 태실을 태봉으로 가봉하면 태실의 내부와 주위에 석물(石物)을 추가로 시설하는데, 그 절차가 매우 장엄하였다고 한다. 특히 태봉의 부근에 있는 관할 관서에서는 매년 춘추로 태봉을 순행해 도벌, 태실의 손괴, 천재지변 등 태봉에 영향이 미치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해야 하며 태봉에는 태실을 중심으로 사방 300보(540m) 안에는 경지를 개간하는 행위를 금하며, 만약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국법에 의해 엄벌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역대 왕의 태봉이 있는 고을에는 그 자격이 승격되고 필역 후에는 유공자에게 상사가 행해졌으므로 이러한 고을을 '태봉'이라 부르게 되고 '태봉'이 있는 산을 '태봉산'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꼭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충북에는 3개의 국왕 태실이 존재하고 있다.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경종대왕태실이 있어 1975년 8월 20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1688년(경종 14) 10월 22일에 후궁인 희빈장씨(禧嬪張氏)의 몸에서 숙종의 첫 왕자로 태어나 왕실의 예에 따라 이곳에 태항아리를 묻었다. 후에 왕으로 즉위한 경종은 관례에 따라 그의 태실을 석물로 가봉(加封)하여야 하나 재위 4년 중에 이를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였으므로 다음의 왕인 1756년(영조 2)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석물로 장식된 태실로서 격식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있는 순조 태실은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순조의 태실도 그가 왕위에 오른 후 1806년(순조 6)에 왕의 태실로서 석물을 가봉하고 태실비를 세웠으며 이를 기념하여 보은현(報恩縣)을 군(郡)으로 승격시켰던 것이다.
청주시 낭성면 지산리에 있는 영조 태실은 영조의 출생 이듬해인 숙종 21년(1695년)에 조성됐다. 보통의 경우 왕자가 보위에 오르면 태실을 태봉(胎封)으로 격상시키고 주위 석물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영조의 태실은 즉위 후 5년이 지난 1729년에야 가봉됐다. 이유는 1728년의 무신란과 극심한 가뭄 때문이었으며 영조는 자신의 태봉을 매우 검소하게 조성할 것을 지시하여 규모가 다른 왕의 태봉보다 규모가 작다. 더우기 1928년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태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 항아리만 꺼내어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되었는데 청원군이 지난 1982년 <태실가봉의궤(胎室加封儀軌)>를 바탕으로 석물을 복원했다.
이와 같이 '태봉(胎封)'의 의례와 관리가 엄중하매 태봉(胎封)이 위치한 산을 '태봉산(胎峰山)', 태봉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태봉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산덕리의 태실(충청북도기념물 제86호)이 선조 임금의 7번째 왕자인 인성군의 태실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곳을 태봉이라 부르는 등 왕으로 즉위하지 않은 왕손들이나 양반의 자손들의 태실이 있는 산도 '태실이 있는 봉우리'라는 의미로 '태봉(胎峰)이라 부르면서 의미의 혼란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