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분젓치

2021.05.12 17:34:46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백두대간 정맥인 한남금북정맥에 있는 분젓치는 증평군과 청주시의 경계인 증평읍 율리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이곳에 생태 터널을 만들어 생태축을 복원함으로써 '율티'라고 알고 있던 고개가 '분젓치'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생태터널은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거나 훼손 또는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동식물의 이동을 돕기 위하여 만드는 것으로 분젓치에 길이 68.13m 폭 9.5m의 생태터널을 만들어 도로개설로 단절된 산림 지형을 되살렸으며 터널 상부로 이어지는 등산로(180m)를 새로 조성하여, 방문객이 전망대까지 편하게 이용하도록 했다.

너무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분젓치라는 지명은 어떠한 의미를 가진 이름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천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옛날에는 증평에서 오다보면 삼기 저수지 상류에 청천과 미원 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었는데 이 갈림길은 옛날에는 당연히 방아다리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방아다리라는 말은 지명이 아니라 방아다리 모양으로 세갈래로 갈라지는 길을 가리키는 말로 흔하게 쓰이던 말이었기에 지명으로 정착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로 사용되었다. 지금 쓰이는 말로 하면 '삼거리'라는 말과 비슷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삼거리'라는 말은 '삼(三)+거리(갈라지다)'로 이루어진 말로서 한자와 고유어가 합쳐진 것이다. 지금도 '삼거리, 사거리, 오거리'라고 할 때 '거리'는 '거리(街)'가 아니라 '갈라지다'라는 의미의 고유어이기에 옛날의 의미가 그대로 이어져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삼거리(세갈래길)일 경우에는 '방아다리'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곳의 지명을 한자로 '삼기리(三岐里)'라 표기하고 '삼거리'라 읽었던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분티 고개 너머에 방앗간이 있어서 솟점말, 밤티, 삼기 등 세 마을 사람들이 방아를 찧으러 넘어 다닌 길이라고 하며 이 갈림길 바로 위의 골짜기를 지금도 방아다리골이라 부르고 있다. 무거운 쌀가마니를 지게로 지고 날라야 하는 험한 고개 위의 산속에 방앗간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이곳의 옛 지명이 방아다리였다는 확실한 증거라 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고개 이름도 예전에는 방아고개(방고개, 밤고개, 밤티)라 불렀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분젓치라는 지명은 다른 지역의 지명에서는 그 예를 찾을 수가 없으나 분티재라고도 불리고 있으므로 분티마을이란 이름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젓'이라는 지명 요소는 일반적으로 '잣(산)'에서 온 것이므로 분티(분고개)가 있는 산을 '분젓'이라 하면서 다시 분젓(분잣)에 있는 고개를 '분젓치'라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와같이 '분티, 분고개'라는 지명이 전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분'은 어떤 의미일까· '고개'를 수식하는 말이므로 고개의 지형적 특성이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경남 밀양군 하남읍 귀명리에 분티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분티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 산능선을 밤팅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밤나무 숲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주위에 고분군이 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분터골, 분티골이라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한자로는 '율림등(栗林嶝)'이라 표기하여 '밤나무 숲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고. 분티골이 있는 산을 '사등산(蛇嶝山)'이라하여 '뱀고개산'의 의미를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밤고개→방고개→분고개'의 변이 과정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밤고개와 방고개의 지명 예는 전국의 지명에서 많이 찾아볼 수가 있는데, 좌구산 천문대가 있는 고개의 이름도 밤고개이며 이 '밤고개' 아래 마을의 이름을 한자로 '율티리(栗峙里)'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분'은 '밤에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두 고개가 모두 밤고개(방고개)이므로 미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차별화를 위하여 '젓(잣)'을 덧붙여 '분젓치'가 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지형의 특성과 전해지는 자연지명들로 보아 '방아고개(방아다리고개)→방고개→반고개→분고개'의 변이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분젓치'는 '방아산 고개(세갈래길이 있는 산 고개)'의 의미로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