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청산면은 오늘날 행정구역이 면 단위로 축소되었지만 옛날에는 청산현, 청산군이 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고려사>와 <대동지지>의 기록에 의하면 청산은 신라시대에는 '굴산현(屈山縣), 돌산현'이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기산현(耆山縣)'이라 고치어 삼년군(보은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 태조(왕건) 23년(940년)에 청산현으로 개칭됨으로서 '청산'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는 보은군의 내북면 창리, 주성부곡을 청산현에 편입하여 500여 년간 청산현에 소속되어 있다가 1906년에 보은군에 편입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황간현과 함께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된 후 청산현(靑山縣)과 황간현(黃澗縣)을 합하여 黃靑縣(황청현)이라 하였으나, 후에 다시 분리해서 靑山縣(청산현)으로 복구하였다. 이때 청산현 소재지를 현내면이라 하고 현 보은군 내북면 지역에 있던 주성 부곡 10개 리를 주성면으로 하였으며 나머지 지역은 동면, 북면, 서면, 남면으로 이름 지었다. 이와 같이 조선 건국에 즈음한 새로운 행정구역 개편에서 새로 구획된 행정면의 이름을 지음에 있어 행정 편의에 의해 동서남북 등 방향, 일이삼사 등 단순한 구별을 위한 지명을 만드는 등 좋은 지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이후 1895年(고종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청산군(靑山郡)으로 승격한 후 1914年 군면폐합으로 옥천군에 편입되었다. 이때 청산군청 소재지인 현내면과 동면, 서면을 병합하여 청산면으로, 서면과 남면은 청서면, 청남면이라 하여 병합하여 청산(靑山)과 산성(山城)의 이름을 따서 청성면(靑城面)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청산의 옛 이름인 '굴산(屈山), 돌산'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이었을까·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천리의 '굴산',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의 '굴산머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의 '뒷굴산',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의 '기정굴산' 등의 지명에서 보면 '굴'은 '동굴이나 골짜기'의 의미로 보인다. 또한 옥천군 청산면 신매리의 '독산', 전남 여수시 돌산읍 '돌산도',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충남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등의 지명에서 '돌, 독'은 대부분 '돌(石)'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청산의 옛 이름인 '굴산(屈山), 돌산'이 이두식 한자 표기로 본다면 '굴(屈)'은 '굽다'는 의미이므로 산줄기가 벋어 내려오다가 굽은 지형을 가리키는 의미로 보이며, '돌(堗)'은 한자의 훈을 이용한 이두식 표기로서 굽이 도는 지형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렇다면 괴산군 청천면 갈읍리의 굽이도는 지형을 가리키는 '곱돈, 곱돈고개'라는 지명과 같은 유형이 아닐까· 청주시 상당구 남이면 고은리의 '고분재'는 '굽은재'에서 '고분재'로 변이되고 '고분'이 '아름답고 곱다'는 의미의 '고은'으로 진화하였듯이 길이나 산줄기, 혹은 냇물이 굽은 지형을 가리키는 지명은 아주 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청산면 인정리의 '구티마을', 청성면 고당리의 '고현', 구음리의 '구비마을', 궁촌리의 '활골재' 등의 지명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신라 경덕왕 때의 지명 표기는 이두식 표기가 아닌 한화(漢化) 표기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산의 지형이 굽은 것을 노인의 허리가 굽은 것과 관련지어 '기산현(耆山縣)'이라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면 '굴산현(屈山縣), 돌산현, 기산현(耆山縣)'이라는 지명들의 연관성이 드러나며, 지명들이 생겨난 이유와 어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려 태조(왕건) 23년(940년)에 청산현으로 개칭함으로서 '청산'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나는데 '청(靑)'이라는 지명요소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문헌 기록이나 자연 지명에서도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청주시도 고려 태조(왕건) 23년(940년)에 근거를 알기 어려운 청주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보아 '청'이라는 지명 요소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찾아내야 할 큰 과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