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호무골, 호미골

2022.02.23 15:51:34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호무골이라 부르는 자연지명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풍수지리에 밝은 술사가 청주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3㎞ 거리에 있는 곳에 낙엽송과 참나무로 울창하게 둘러싸인 깊은 산골짜기에 명당 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이 장차 번창할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집을 짓기로 결심했는데 주변에 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술사는 집짓기를 포기하고 떠났다.

술사가 떠난 지 얼마 후에 이명도라는 분이 지나가다가 이곳 지형의 오묘함을 발견하고 정착할 것을 결심했다. 집터를 닦는 한편 물을 얻기 위해 집 주변의 땅을 파기 시작했으나 아무리 파보아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계곡은 깊으나 석벽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 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세가 아무리 좋다 한들 물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에 술사와 마찬가지로 정착할 뜻을 포기했다. 이명도는 평탄하게 닦아놓은 집터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에 길을 떠나기 위해 쉬고 있는데 계곡 한쪽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춤을 추면서 우거진 숲속에 머리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장면을 보았다. 날이 밝은 후 이명도는 호랑이가 춤을 추면서 머리를 넣었던 숲속을 살펴보니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호랑이는 물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도는 집터를 포기하지 않고 집을 짓고 정착했으며 그 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 한 마을을 이루었다. 그 후로부터 호랑이가 달빛에 춤을 추면서 샘물 자리를 일러준 곳이라 하여 호무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호무골'이라는 지명의 원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의 호무골을 주민들은 호미골로 많이 부르고 있으며 전국의 지명에서도 호무골의 예는 찾기 어렵고 호미골이 많이 보인다. 단양군 매포읍 삼곡리의 호미골을 비롯하여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충남 천안시 동남구 구룡동, 경북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 전북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안덕리 등에서 호미골을 찾아 볼 수가 있다.

'호무골, 호미골'은 '홈골'에서 변이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지명에서 '홈'은 '홈처럼 길고 깊은 골짜기의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홈'자가 붙어 쓰이는 지명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에 홈터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홈처럼 길고 깊은 골짜기의 지형'을 가리키는 말임을 금세 알 수가 있다. 경남 거제시 연초면 이목리에는 '홈택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홈통 모양의 길고 깊은 골짜기라서 홈택골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홈터골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삼동리의 '홈재'는 옛날 이곳에 오랑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호산(胡山)이라 불리었다는 설이 있으나 오랑캐들이 이곳에 살고 있을 리는 없고 단순히 글자와 연관 지은 유래일 것이며 산길이 홈같이 좁고 길어서 홈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홈골'이란 '홈처럼 깊게 파인 지형에 있는 마을, 산골짜기 계곡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홈골'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그런데 '홈골'은 여러 지역에서 '홍골'로 변이된 곳이 많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문박리의 '홍골'을 비롯하여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괴산군 청안면 운곡리, 괴산군 문광면 흑석리, 보은군 마로면 한중리 등의 '홍골'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에서 두모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홍고개(赤峴)'라 부르는데 조선조 중엽에 중국의 학자가 이 산을 그대로 두면 명장이 생긴다 하여 칼로 산을 친 결과 붉은 피가 흘렀다고 전해지지만 지금도 '홈너머고개, 홈너머'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원래의 이름은 '홈너미(홈처럼 길게 이어진 골짜기를 넘는 고개)'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따라서 '호무골, 호미골'이라는 이름은 '홈골'에서 온 말이지만 마을의 위치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며 살기 좋은 마을, 그리고 영험한 기운을 지닌 호랑이가 점지해 준 마을이라는 의미를 마을의 이름과 연결지으려 노력한 조상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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