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구룡리에 '여우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여우골'이라는 지명은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를 비롯하여, 단양군 적성면 파랑리, 단양군 가곡면 사평리,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 괴산군 청천면 대전리,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영동군 양강면 남전리 등 헤아릴 없이 많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 4리는 여우골이라고도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사냥을 좋아하는 김 진사가 어느 날 닭을 물고 가는 여우를 보고 활을 쏘아 잡았다. 그 얼마 후부터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다섯 살이 되자 뱀과 개구리를 잡아먹어 걱정이 많았으나 스무 살이 되자 그 버릇은 싹 사라졌다.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장가보내기로 했다. 혼례날, 신부의 가마가 도착했는데 똑같이 생긴 신부 둘이 내렸다. 스님의 도움으로 가짜 신부를 가려내어 죽였더니 여우로 변했다. 그때부터 이 마을을 여우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지명들은 한결같이 '여우가 많이 나타난다'는 등 여우와 관련된 유래를 들고 있으며 '여우'의 고어 또는 사투리로서 '여수, 여시'라는 말이 있는데 충주시 안림동의 '여수골'을 비롯하여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화하리,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보은군 산외면 구티리,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환희리의 '여수골' 등 전국의 지명에서 '여수골, 여시골, 여수고개, 여시고개' 등도 많이 쓰이고 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에 천주교 여사울 성지가 있는데 여사울이라는 이름은 '서울과 같은 곳', '여슬(물이 빨리 흐르는 개울)', '여수골(예수 고을)' 등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지만 한자로는 '호동(狐洞)'이라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여우골'과 같은 뿌리를 가진 이름으로 보인다.
또한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여우골'은 조선시대 양녕대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뜻대로 되는 마을' 이라는 뜻의 '여의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전해지며 경북 칠곡군 왜관읍(倭館邑) 석전(石田) 4리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여우골' 또는 '여의리(女意里)'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여의'도 '여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볼 때 여우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여 '여우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므로 '여우'란 다른 말에서 변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우'는 어떤 말에서 변이된 것일까?
박목월 시인의 '여우비'라는 동시가 있다.
뙤약볕 나는데도/ 오는 비,/ 여우비.
시집 가는 꽃가마에,/ 한 방울 오고,
뒤에 가는 당나귀에,/ 두 방울 오고.
오는 비,/ 여우비./ 쨍쨍 개었다.
여우비는 햇볕이 나 있는데 잠깐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를 말한다. 옛 이야기에서는 여우를 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시집가자 너무 슬퍼 우는 비를 여우비라고 했다고 하며, 구미호가 울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대기 높은 곳에서 강한 돌풍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비구름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나 강한 바람으로 인해 빗방울이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곳까지 오는 것이다. 이렇게 여우비가 생기게 되는 기상 상황으로 보아 여우비란 굵고 살찐 비가 아닌 '여윈비'가 '여우비'로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우비가 올 때마다 여우는 팔자에도 없는 시집을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이 '여우골'이란 '여윈비'가 '여우비'로 변이되었듯이 '넓지 않고 좁은 골짜기, 가늘고 여읜 골짜기'의 의미로 '여읜골'이라 하다가 '여의골, 여우골'로 변이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또한 '산길이 넓지 않고 좁은, 가늘고 여윈(살찌지 않은) 길이 나 있는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여윈고개'라 부르다가 '여우고개'가 생겨났다면 '여우고개' 인근의 마을은 자연스럽게 '여우골'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