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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중국의 사상가이자 도가(道家) 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아침, 홀로 소나무 숲길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갔을 때 어디선가 우지직하고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고개를 돌려 소리 난 곳을 바라보니 굵은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땅을 향해 늘어져 있었습니다. 굵고 튼튼한 가지이기에 처음에는 필경 눈의 무게를 이겨내며 꿋꿋하게 버텼을 터이지만 점차 무거워지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종내에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던 것입니다. 반면 그보다 훨씬 가늘고 연약한 가지들은 눈이 쌓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린 후 다시 원래대로 튀어 올라 본래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노자는 읊조렸습니다.

"자신의 몸을 유연하게 구부림으로써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억지로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이치를 보여주는구나."

그렇지요. 때로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기기 마련입니다. 이솝우화에서도 미련하게 바람과 맞서다 부러지는 나뭇가지보다 바람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휘거나 누이며 견뎌내는 갈대들을 더 현명하게 평가합니다.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모델을 찾기 위해 애를 쓰던 그는 교회에서 용모가 수려한 한 성가대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청년이 로마로 떠나 공부하게 되어 모델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으나 예수를 배반한 제자 이스카리옷 유다만은 그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 빈치는 아주 타락한 모습의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다의 모델은 오래전 예수의 모델로 삼으려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유학 시절 오만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탓에 심성이 나빠져 얼굴마저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겸손은 자주 강조됩니다. 대장장이 프로미시우스가 인간을 빚으면서, 각자의 목에 2개의 보따리를 매달아 놓았습니다. 보따리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으로 가득 채워 앞쪽에, 또 다른 보따리는 자신들의 결점으로 가득 채워 등 뒤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앞에 매달린 다른 사람들의 결점은 잘도 보며 시시콜콜 꼬투리를 잡지만, 뒤에 매달린 보따리 속 자신의 결점은 전혀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간에 훌륭하다고 소문난 사람일지라도 비난받을만한 결점을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성품은 양면성을 띠기 마련이어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상반되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겸손해 대중 앞에 나서길 꺼리는 사람은 자칫 개성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다고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고, 반대로 남자답고 용기 있는 사람은 겸손하지 못하고 거만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장영희 교수 저서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일부 인용)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겸손은 가치의 최상위에 두어져야 합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 땅에 묻힐 자리를 되도록 조금 차지하려고 겸손하게 몸을 웅크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게 그것을 웅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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